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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29. 2022

인도의 제조업 강화 정책이 국방력 강화와 충돌할 때

21세기 무기와 1950년대 무기가 공존하는 인도의 군대 이야기

인도는 군 복무 인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중국(현역 218만 명, 예비역 117만 명)에 이어 세계 2위의 군사대국(현역 145만 명, 예비역 115만 명)이다. 스톡홀름 세계평화 연구소가 추산한 방위 예산 규모로 따지면 미국(2021년 기준 8,010억 불), 중국(2,930억 불)에 이어 766억 불로서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약 60만 명의 현역군인을 유지하면서 대략 55조원 가량을 국방비로 사용하는 우리나라보다 병력 규모나 국방비 규모의 측면에서 확실히 앞서는 글로벌 군사 강국인 듯 보인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그러할까? 현대전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공군 전력을 중심으로 인도 군의 모습을 살짝 엿보도록 하자. 이를 통해 인도의 국방력 강화라는 정책목표가 인도의 제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와 어떠한 긴장관계를 일으키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 1] 1950년대 무기와 21세기 무기가 공존하는 인도 공군


2022년 10월 19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구자라트에 새롭게 자리 잡게 될 디사 공군기지(Deesa Air Force Base) 착공식에 참석했다. 인도 공군이 파키스탄과 불과 130km에 떨어지지 않은 접경지역에 부지 매입을 완료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40년 전인 1983년이었다. 하지만 인도 특유의 느린 행정절차, 부족하기만 한 정부 예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알력과 불협화음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인도 중앙정부가 공군기지 설립을 최종 승인한 것은 그로부터 무려 40년 가까이 지난 2020년이었다. 참으로 ‘인도스러운’ 속도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이곳에 공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일까? 당연히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파키스탄에 대한 견제 목적이다. 현재 파키스탄은 인도-파키스탄 접경지역에 공군기지를 3개나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기지의 주력 기종은 파키스탄이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빠르고 강한 F-16 기종이다. 파키스탄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인도는 파키스탄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 싶어서 이곳에 거액을 들여서 공군기지를 신설하는 것일까?


공군기지가 위치한 구자라트는 정유산업과 전력 산업 등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와 아다니 그룹의 본거지이다. 이들 기업이 파키스탄의 코앞이라 할 수 있는 구자라트 주에서 본격적으로 중화학 공업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이미 2000년대 초반이다. (참고로, 구자라트 주의 잠나가르 지역에 위치한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소유의 정유시설은 인도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정유시설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디사 지역에 공군기지가 신규 설치됨에 따라 구자라트 지역에 소재한 약 1조 달러 규모의 중화학 산업 기반시설에 대한 안전이 보장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1년 구자라트 주지사에 당선되어 14년을 재직하는 동안 당시 모디 주지사는 인도의 중화학공업의 심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조속하게 공군기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2000년에 이미 바즈파이 총리가 이끌던 인도인민당(BJP) 정권이 새로운 공군기지 건설을 승인한 터였다. 하지만, 이후에 집권한 인도의회당이 기지 건설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20년 세월이 속절없이 지나가버렸다. 


이날 착공식에 참석한 모디 총리는 ‘공군기지 건설은 인도 산업기반을 수호하는 BJP의 공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2019년 총선에서 대패하여 그렇지 않아도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과거 집권여당인 의회당을 ‘인도의 산업기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정치집단’이라고 깎아내리면서 말이다. 성황리에 끝난 착공식을 앞다투어 보도한 인도 뉴스 매체들은 이 공군기지에는 러시아제 미그 29 또는 인도 자체 개발 전투기인 테자스(Tejas) 등이 배치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인도의 국방력 특히 공군력은 군사강국의 위치에 올라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인도 공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군사강국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2022년 7월 말 인도 서부 라자스탄에서 야간 훈련 중이던 인도 공군기가 추락하여 조종사 2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조종하고 있던 비행기가 다름 아닌 미그 21 기종이었다. 구 소련에서 개발되어 1955년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후 전 세계적으로 약 1만 1천대가 생산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전투기 자리에 올랐으나 1985년에 이미 생산이 중단된 ‘시조새’ 전투기이다. 1965년에 있었던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미그 21 기종이 제법 활약을 펼치자 전투기 성능에 만족한 인도 공군은 약 1,200대를 도입해서 운용했다. 그런데, 인도 공군이 도입한 미그 21의 10 대중 6대 이상이 인도의 국영 군수업체인 힌두스탄 항공산업(Hindustan Aeronautics Limited : HAL)에서 라이센스 생산된 ‘메이드 인 인디아’였다. 인도 공군이 운용하던 대부분의 미그 21은 퇴역하였으나 약 120대 가량은 개량을 거쳐 아직도 운용 중이다.


제 아무리 ‘닦고 조이고 기름칠’한다고 하여도 1980년대 중반에 생산 종료된 비행기가 멀쩡히 잘 날아다닌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매년 적게는 두 세대 많게는 대여섯 대가 꼬박꼬박 추락하면서 끊임없이 인명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 때문에 인도에서는 미그 21을 날아다니는 관(flying coffin) 또는 과부 제조기(widow-maker)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인도 언론에서 추적조사를 해보니 구소련에서 들여온 기종이 아닌 인도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기체에 사고가 집중되었고, 실제로 인도 현지에서 생산한 미그 21의 2 대중 1대인 약 400대 가량이 지난 60년간 꾸준하게 추락하여 총 200명이 넘는 조종사와 6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대중 한 대가 추락했으니 이쯤 되면 동전 던지기를 해서 앞뒷면 고르는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인도 공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노후화된 기종을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겠는가? 당연히 했고 또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힌두스탄 항공산업이 앞장선 국산 초음속 전투기 테자스(Tejas) 개발 사업은 1980년대 중반 시작되었다. 하지만, 인도 방산업계의 기술력 부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진을 포함한 핵심기술을 국산화하려는 인도 정부의 고집스러운 집착, 인도 정부의 예산 부족 등 무기 국산화의 길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악재를 빼놓지 않고 다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테자스의 초도 비행은 2001년에 성공했고 무기체계가 최소한의 기본적 능력을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기초운용능력(Initial Operational Capability)’ 평가는 2010년에, 그리고 최종운용승인(Final Operating Clearance)은 개발이 시작된 지 무려 35년이 지난 2019년 2월에 이루어져서 인도 공군 앞 납품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한편, 테자스 개발이 너무나도 늦어지면서 미그 21을 포함한 노후 기종의 추락이 늘어나자 인도 공군은 결국 2012년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를 구매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국 내 방산업계의 압박에 굴복한 인도 정부가 프랑스산 라팔은 36대만 도입하고 테자스 개발 사업에 다시 예산을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인도 정부가 가진 ‘국산화’에 대한 맹목적 신념과 인도 국내 방위산업계의 로비가 만들어낸 최악의 의사결정이라는 평가와 자주국방과 군수산업 개발에 대한 정부의 정책의지가 구현된 올바른 의사결정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결국 사업 착수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난 2016년이 되어서야 테자스가 인도 공군에 인도되기 시작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 되어버렸다. 조금 더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인도 정부의 ‘메이크 인 인디아’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미그 21 전투기를 적절한 시기에 교체하면서 자국의 군수산업도 발전시키려는 최초 의도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성능이 좋은 전투기의 도입이 늦어지면서 항공전력의 공백은 여전한 가운데 애꿎은 조종사들만 수백 명이 목숨을 잃어버린 것이다.




[# 2] 그들의 무기를 믿어도 될까?


프랑스 다소(Dassault)의 라팔(Rafale)이나 미라주 2000과 같은 유럽제 무기도 상당수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인도 공군의 전투기들은 구소련과 러시아가 원산지인 미그 21, 미그 29, 그리고 수호이 30 등이 주축이다. 1947년 인도의 독립 이후 이어져온 구소련 및 러시아와의 끈끈한 협력관계로 인해 인도의 최초 원전은 구 소련의 기술로 건설되었고, 인도는 구소련을 제외하고는 미그 21을 가장 많이 운용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깃발을 들고 파키스탄에 군사원조를 포함한 각종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파키스탄과 적대적 관계인 인도는 구소련과 더한층 가까워졌다.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인도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인도는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제재하는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유엔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규탄하는 규탄 성명이 채택될 때에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수차례에 걸쳐 기권표를 던졌다. 지난 수십 년간 카슈미르 지역에서의 국경분쟁처럼 인도가 관련된 국제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인도를 지지해준 러시아에 대해 인도가 의리를 지킨 셈이었다. 인도의 외무부 장관인 자이샹카르 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와 밀착된 인도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해왔다. 인도 정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을 바라보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인도 내부 특히 인도 정부와 인도의 군대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오랜 동맹이자 우방인 러시아군이 불리한 전황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안쓰러워서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속내는 좀 더 복잡하다. 천하무적이라고 믿었던 러시아의 각종 무기들이 미국과 유럽이 제공한 비교적 저렴한 무기들에게 번번이 나가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제 공격용 헬기는 ‘스팅어’를 포함한 서방의 지대공 미사일에 맥을 못 추고 있고,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는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의 손쉬운 제물이 된 지 오래이다.


수년간 계속된 테러와의 전쟁 기간 동안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에게 상당한 규모의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제공해왔다. 그 덕분에 파키스탄 공군의 전투기는 약 70대가 넘게 운용 중인 F-16 전투기와 중국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어 약 130대가 운용 중인 JF-17 전투기 등 2개 기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미그 21과 동급 전투기에 비해 무장 탑재능력과 전투반경, 기체 수명에 이르기까지 뭐하나 우월한 것이 없는 국산 테자스를 보유한 인도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파키스탄과의 항공전력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해야 할 텐데, 하루가 멀다 하고 속절없이 패퇴하는 러시아의 모양새를 보아하니 자신들이 가진 무기체계가 미덥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인도 정부가 자국의 전력 공백을 빠르게 채우기 위해서 외국산 무기를 급하게 도입할 계획도 의지도 예산도 없다.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방위산업에도 예외 없이 적용하면서 주요 무기를 국산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결실은 더디기만 하다. 결국 부족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국산화 드라이브로 인해 자국산 무기체계 개발은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있고 전력의 공백은 메꿔지기는커녕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약 80여 발로 추정되는 핵무기는 물론이고 해군 전력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보유한 인도는 누가 뭐라 해도 군사 대국이다. 이들의 기술 수준은 이미 지구를 넘어서 우주를 향하고 있다. 1960년대 말에 우주항공산업 전담기구인 인도우주연구기구(Indian Space Research Organisation)가 만들어졌고 지금 인도는 약 70억 불에 달하는 항공우주 산업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공위성을 안정적으로 궤도에 올려놓는 인도 우주산업의 경쟁력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1950년대에 개발된 전투기가 하늘을 날다가 심심치 않게 떨어지는 나라가 인도이다. 그리고 항공전력을 보강하기 위한 인도 공군의 이러한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도 제조업 강화라는 목표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무기 개발 체계를 다룰 능력과 기술 수준을 갖췄는지 냉정하게 평가하지도 않은 채 국방력 강화와 제조업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인도는 결국 두 개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씁쓸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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