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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Nov 01. 2022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쏴 죽여라

인도가 대기오염에 대처하는 '안타까운' 방식

[# 1] 흠... 메신저가 전해주는 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2015년 5월 말.


약 3년간의 뉴델리 근무를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뉴욕타임스 서남아 담당 기자의 글 한편이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2012년 아내 그리고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뉴델리에 부임한 가디너 해리스는 인도에 도착한 지 몇 달만에 자신의 여덟 살짜리 아들이 호흡곤란을 포함하여 다양한 증상을 겪었으며, 결국 폐의 능력이 절반 가까이 손상되었고 그로 인해 정기적으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야만 했다고 썼다. 그의 아들이 천식발작까지 겪기 시작하자 그는 가족의 건강까지 희생하면서 델리에 계속 거주해야 할지 엄청난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인도에서 조금 더 살아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고생담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끊이지 않고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뎅기열, 길거리에서 끈질기게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거지 떼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널려있는 짐승과 사람의 분뇨, 그리고 집에서 빠져나가는 하수와 집으로 들어오는 수돗물이 뒤섞일 정도로 자신의 집이 엉터리로 지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더 이상 뉴델리에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기사는 그 이후에 가디언, BBC를 포함한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도 언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 내 유력 신문에도 빼놓지 않고 대부분 게재되었다.


물론 그의 글이 다소 선정적이기는 했었다. 3년간의 지긋지긋한 인도 생활을 끝내고 떠나가는 사람에게 무슨 애정이 남아 있었겠는가? 공기오염, 수질오염, 그리고 숨길 수 없이 매일 마주쳐야 하는 빈곤의 현실... 안 좋았던 기억을 몽땅 소환해서 한바탕 한풀이하듯이 키보드 위에 쏟아부은 그의 글을 읽고 그 어떤 인도인도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은 아니었다. 이미 인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고 경험한 사실을 지면에 옮겨 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많은 인도인들은 그의 글에 기분이 상했고, 결국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달려간 인도인들은 비난을 쏟아냈다. 인도의 공기와 수질 오염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뜬금없이 ‘음식과 문화를 포함해서 인도에 훌륭한 게 얼마나 많은데 무슨 불만이 그리 많냐’는 식으로 논점을 흐리는 장황한 비난의 글부터 ‘인종차별주의적 글이다’라는 주장까지 다양했다. 결국 많은 수의 인도 네티즌들이 거의 인격살인에 가까운 수준으로 가디너 해리스의 글을 깎아내리고 나서야 이 사태는 잠잠해졌다.




[# 2] 이런 도시에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인도의 공기 오염 상황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악화된 대기질에 너무나도 무력해진 인도 정부와 인도 시민들은 딱히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미세먼지 지수(AQI)가 815까지 치솟아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던 2017년 11월의 어느 날 인도의 저명한 의사들이 인도의 대통령 관저 앞에 모였다. 그리고는 ‘그 누구도 이러한 공기를 마시며 살아서는 안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기 오염은 델리에 살고 있는 청소년 10명 중 4명에게 폐기능 장애를 유발했다는 조사 결과를 포함하여 수십 건의 과학적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개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인도 정부와 시민사회에게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의학계가 ‘이런 대기질 속에서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는 것은 자살행위이다’라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뉴델리 하프 마라톤 대회는 대기질이 가장 안 좋은 겨울에 꿋꿋하게 열리고 있고, 매년 겨울마다 인도에서 열리는 국가 대항 크리켓 대회에 초대받은 해외 선수들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경기 중에 토하고 있다. 공기오염이 너무 심해 숨이 막혔기 때문인데, 인도 선수들과 관중들은 그저 ‘나쁜 공기는 인도 홈그라운드의 이점이다’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 오염에 대한 인도 일반 대중의 인식은 이렇게 안타까운 수준이다.


인도에서만 전체 사망자 100명 중 18명에 해당하는 167만 명이 매년 공기 오염으로 인해 사망하면서, 공기 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 및 질병으로 발생하는 피해액만 연간 368억 불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정도면 인도 전체 GDP의 약 1.4%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인데, 인도의 최근 30년간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5.8% 수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도의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이리도 인도의 공기는 지독하게 오염되어 있는 것일까?




[# 3] 인도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요인들...


다른 도시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요인들이 인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자동차 배기가스, 각종 경제활동에서 발생되는 오염물질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인도 특유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대기 오염을 악화시킨다. 첫째는 북인도 지역에서 성행하는 화전농업의 영향이다. 인도 북서부의 곡창지대인 펀잡 및 하리아나 지역에서는 여름에는 쌀농사를 겨울에는 밀농사를 짓는다. 10월을 전후하여 벼 추수가 끝나고 11월에 밀을 파종할 때까지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남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쌀 추수 이후 남겨진 볏짚을 빠르고 값싸게 제거하는 방법은 불태워버리는 것이다. 또한, 볏짚을 태워버리면 이를 통해 이모작에 필요한 천연 비료를 공급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3,500만 톤에 달하는 볏짚이 불타오르면서 발생하는 각종 오염물질은 펀잡부터 하리아나 뉴델리와 우타르 프라데시를 포함한 북인도 전체를 시커멓게 뒤덮는 ‘죽음의 카페트’가 되어버린다. 심한 경우 AQI 지수가 네자리수까지 치솟는다. 안타깝게도 북쪽에 높이 솟은 히말라야 산맥은 이러한 오염물질이 확산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 역할을 한다.


둘째는 날씨가 선선해진 겨울에 더욱더 활발해지는 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들이다. 뉴델리를 포함한 인도 대도시는 수년간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고 곳곳에서 건물을 짓고 도로를 포장하는 공사 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무더운 여름을 피해 겨울에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건설 및 토목공사에서 발생하는 비산(飛散) 먼지들은 이제는 인도 대도시의 겨울을 상징하는 현상이 되어버렸다. 각종 건설현장과 산업현장에서 산업 쓰레기 발생량도 커지다 보니 이 또한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는 간접적 요인이 된다.


셋째로는 10월 말 또는 11월에 있는 인도 최대의 명절인 디왈리의 영향이다. 이때 인도인들은 집안 전체를 밝게 빛나는 전구나 촛불로 장식하고 엄청난 양의 폭죽을 터뜨리며 명절을 보낸다. 집안을 밝히면 풍요의 신인 락슈미 신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도시의 경우 대부분 전구가 촛불을 대체했지만, 조금만 시골로 내려가도 온 동네에 그을음이 가득 찰 정도로 촛불이 밝혀져 있게 마련이다.


2017년부터 뉴델리 정부는 폭죽을 금지시켜서 대기 오염 물질 발생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많은 인도 주민들은 이를 무시하고 밤새 폭죽을 터뜨려 댄다. 현재 뉴델리 주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AAP당은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최우선 과제’라며 자신들의 폭죽 금지 조치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AAP당을 공격하기 위해 인도인민당(BJP)은 폭죽 금지 조치가 ‘힌두교를 탄압하는 조치’라는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 힌두 근본주의자들의 표를 모아보자는 심산인데, 자신들의 득표에 유리하다면 시민들의 건강이야 어찌 되든 간에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넷째로는 인도의 경우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의 공기질도 상당히 낮은 편이다. 시골의 경우 제대로 환기시설도 되지 않은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요리나 난방을 위해 말린 소똥과 같은 동물의 배설물과 나뭇가지 등을 태운 연기가 실내에 그대로 머물기 때문이다. 인도 전체 인구의 약 70%가 시골에 거주하고 있어서 어찌 보면 이러한 공기오염의 문제는 인도의 시골에서부터 해결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발표되는 인도 정부의 대기오염 저감 정책은 대부분 대도시를 타겟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백 년 동안 매캐한 연기에 뒤덮여 살던 인도의 시골 주민들은 어제와 변함없이 오염된 실내공기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4] 앞으로도 좋아질 기미가 없는 인도의 대기질...


사람들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인도의 공기질은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나아진다면 언제부터 나아질까? 매우 안타깝지만 짧은 기간 안에 인도의 공기질이 나아지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1인당 GDP가 2,000불에 불과한 인도의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더 부지런히 물건을 만들고 더 좋은 집을 짓고 더 멀리 도로를 깔아서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해야 하고 더 많은 생활 쓰레기와 산업폐기물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인도 전력부 장관은 2022년 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더 늘리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인도는 2070년까지 인도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증가하는 전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싼값에 생산이 가능한 석탄화력발전을 확대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현재에도 이미 세계 제3위의 탄소배출국인 인도가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석탄화력발전을 더 확대할 것이며, 여기서 발생된 값싼 전기를 사용하는 각종 산업활동도 더 활발해질 것이고 그 결과 대기 오염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뉴델리의 운동장과 거리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노는 인도의 청소년들에게는 안타깝고 슬픈 소식인 것이다.




자, 가디너 해리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인도의 공기 오염에 대한 무수한 신문기사와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왜 유독 인도 독자들은 해리스의 기사에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해리스는 자신의 가족이 겪은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생동감 넘치고 인간적인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의 진실성을 높이고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작가들이 쓰는 가장 기본적인 테크닉의 하나이다. 이를 통해 숫자와 통계로만 접해오던 인도의 공기 오염 문제가 개개인의 삶과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점을 '피부에 와닿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인도의 독자 중 상당수는 공기 오염 문제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거나, 생각해봤다 하더라도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했거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자신의 집 안팎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가진 부모일 것이다. 자기 세대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식 세대마저 ‘독가스실’이나 다름없는 끔찍한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소리 내어 지적했을 때 그들은 불편했던 것이다. 애써 눈감고 외면하던 부끄럽고 아픈 부분이 들켰을 때 그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바로 메신저를 쏴 죽이는 것이었다.


///


사족 1 : 사진 설명 : 이 글을 올리던 날 아침 거실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처음 켰을때의 모습이다.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미세먼지 지수가 100을 넘어섰습니다. ㅠㅠ


사족 2 : 이 글은 약간의 편집을 마친 후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5897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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