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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Nov 28. 2022

알쏭달쏭한 인도의 국경일과 휴일 이야기

인도의 공화국의 날, 독립기념일, 간디 탄생일, 그리고 기타 휴일들

[# 1] 같은 듯 다른 듯... 세계의 휴일과 공휴일


전 세계에는 문화와 종교가 다르지만 공유되는 명절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추석이, 중국에는 중추절(仲秋節)이, 일본에는 오봉(お盆)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러시아에는 성 드미트리 토요일(St. Demetrios Saturday)이 있다. 모두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추수의 기쁨을 함께하는 날이다. 기독교 기반의 그레고리력이든, 음력이든, 이슬람력이든, 힌디력이든 새해를 축하하는 날 또한 (비록 날짜는 다르지만) 중요한 명절이다. 양력 1월 1일에 기독교도들이 새해를 축하하고 나면 2월쯤 중국, 동남아 및 한국에서 음력 설날을 지내고, 3월경에는 페르시아력으로 설날인 노루즈(Nowruz)가 이란계 및 터키계 민족에게 찾아온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동남아 사람들이 쏭크란 축제를 즐기며 물에 흠뻑 젖고 나면 8월경에는 이슬람력 새해 첫 달인 ‘무하람’이 시작된다. 유태인들은 9월을 전후하여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를 지내며 새해를 축하하고 인도인들은 통상 11월에 돌아오는 디왈리(Diwali)를 지내며 새해를 축하한다.


물론, 종교와 문화적 영향으로 특정 국가나 특정 문화권에서만 지켜지는 휴일도 많은데, 이러한 휴일을 들여다보면 그 국가나 문화권에 대해서 제법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 나라가 어떤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그 나라가 어떠한 휴일과 국경일을 지키고 있는지를 훑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재미있는 방법이다. 국경일과 휴일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정신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을 이야기하지 않고 미국의 역사와 정신을 논할 수 있겠는가? 혁명기념일(Fête nationale française)을 지키지 않는 프랑스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는 중동 국가나 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 라마단의 종료를 기념하는 축일)를 축하하는 미국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만큼이나 생경하고 어색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의 국경일과 휴일에는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 인도의 휴일과 국경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2] 인도의 3대 국경일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개별적 휴일이 있다.


일단, 28개의 주(state)와 8개의 중앙정부 직할지(union territories)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휴일부터 살펴보자. 중앙정부에서 정하여 인도의 모든 지역에서 지켜지는 이러한 휴일을 Gazetted Holiday라고 부르는데, 2022년의 경우 16일이다. Gazette는 정부의 소식이 실리는 ‘관보(官報)’인데, 관보에서 정한 휴일 즉, 정부에서 정한 휴일이라는 의미이다. (팔이 쭉쭉 늘어나는 형사 가제트가 먼저 떠오르셨다는 당신은 아재 인증 제대로 한 거다.) 이 중에서 나라 전체가 공식적으로 경축하는 ‘국경일(National Holiday)’로 정해진 날은 '공화국의 날'(Republic Day, 1월 26일),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 8월 15일), 간디 생일(10월 2일) 등 세 개에 불과하다. 이 3개의 날은 해가 바뀌어도 날짜가 변하지 않으며 모든 공공 및 민간부문, 그리고 학교도 모두 의무적으로 쉬어야 하는 휴일이다.


‘공화국의 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금방 감이 잡히지 않을 텐데, 사실 이날은 1950년 1월 26일 인도의 최초 헌법이 공포된 날이다. 우리나라의 제헌절인 셈이다. 인도 제헌의회에서 인도 최초의 헌법이 의결된 것은 1949년 11월이었는데, 인도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인도국민의회(Indian National Congress)가 ‘인도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1930년 1월 26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날 헌법이 공포되었고 자연스레 ‘공화국의 날’이 정해졌다. 이날에는 인도의 육해공군의 의장대와 군악대가 대통령궁(Rashtrapati Bhawan)에서 출발하여 인도문(India Gate)을 연결하는 라즈파트(Rajpath, 왕의 길이라는 뜻)를 행진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다.


솔직히 제헌절에 군사 퍼레이드를 한다는 게 좀 생뚱맞기는 하다. 게다가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까지 등장하는 나름 ‘간지나는’ 퍼레이드의 중간에 낙타부대는 물론이고 모터사이클 위에 십여 명의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서커스 공연 같은 모습도 빼먹지 않고 등장하니 우리와 같은 외국인의 눈에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행사는 제헌 헌법이 공포된 1950년부터 시작되어 단 한차례도 빼먹지 않고 실시된 매우 유서 깊은 행사이다. 인도가 헌법을 채택함으로써 독립국가임을 세상에 선포한 날임과 동시에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지킬만한 군사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행사이기에 인도인들과 인도 정부가 갖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인도 Republic Day 군사 퍼레이드




두 번째로 중요한 인도의 국가공휴일은 단연코 독립기념일로서, 이 날은 우리나라 광복절과 같은 날인 8월 15일이다. 다만, 인도의 독립기념일은 우리보다 2년이 늦은 1947년 8월 15일이다. 인도인들에게 독립기념일을 상징하는 장소를 뽑으라고 하면 백이면 백 명 모두 뉴델리 북동쪽에 위치한 레드포트(Red Fort)를 선택할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에게는 세포이 반란, 인도인들에게는 ‘1857년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세포이 항쟁은 벵골 지역에서 최초로 점화되었고 이후 점차 서쪽으로 전진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기세에 눌려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무굴제국의 수도인 델리에까지 반란군의 세력이 도달하게 되었다. 당시 무굴제국의 황제로서 레드포트에 거주하고 있던 82살의 바하두르 샤 2세(Bahadur Shah Zafar)는 반란군의 청에 못 이겨 ‘인도의 황제’에 등극했고, 항쟁의 구심점 노릇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군에 의해 세포이 반란은 진압되었고 그렇게 인도 독립을 위한 최초의 무력 항쟁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 마디로 레드포트에는 인도가 이루고자 했던 독립의 꿈이 담겨 있는 곳이다.


인도 최초 총리였던 자왈할랄 네루의 입장에서는 1947년 독립기념식을 개최하고 독립국가의 초대 총리로서 최초의 대중연설을 할만한 장소로서 세포이 반란군의 뜨거운 피가 묻어 있는 레드포트보다 더 완벽한 곳은 없었을 것이다. 이후 매년 독립기념일에는 레드포트에서 독립기념일 기념식이 열리고 인도 총리는 중요한 국가적 정책을 발표하곤 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광복절이나 개천절에 중요한 대북정책을 발표하거나 정치적 슬로건을 공개하듯이 말이다. 제헌 헌법 공포일을 기념하는 ‘공화국의 날’이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 기념일 둘 다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식민지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생 독립국들이 공통적으로 기념하는 날들이다. 그런 면에서 인도와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상당히 유사하다.


2014년 총리에 취임한 나렌드라 모디는 매년 독립기념일 행사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주황색 계열의 터번만을 착용하고 행사에 참석했다. 인도의 삼색기는 주황색, 흰색 그리고 초록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굳이 주황색 터번만 착용한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인도인들은 다 이해한다. 인도인들은 주황색을 사프란(saffron) 색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 색은 오래전부터 힌두 신앙 속에서 희생과 구원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색깔로 여겨져 왔다. 그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많은 힌두교도 구루들이 주황색 옷을 착용하곤 한다. 반면, 초록색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색이다. 실제로 코란에서는 사후의 천국을 상징하는 색으로 초록색이 등장하며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알제리,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오만과 같은 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는 초록색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쯤 되면 초록색은 곧 이슬람이라는 공식이 ‘빼박캔트’인 셈이다.


주요 아랍국가 국기들.. 온통 초록색 풀밭이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힌두교가 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우세한 서부의 구자라트에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주지사를 역임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2014년 총리에 당선된 이후 2019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나렌드라 모디가 속한 인도인민당(BJP)의 정신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힌두 우월주의(Hindutva)는 어제의 나렌드라 모디 주지사와 오늘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가능케 한 정치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뛰어난 대중 연설가이자 이미지 메이킹의 대가인 그가 자신이 머리에 쓰고 나가는 터번의 색깔이 어떠한 정치적 해석을 불러일으킬지 몰랐다고 생각하면 그건 순진한 생각이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착용한 터번의 색깔을 통해 명확하고 단호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해온 것이다. 고집스럽게 초록색을 거부하고 주황색으로만 뒤덮인 터번을 쓰고 매년 독립기념식 석상에 나타난 이유는 바로 힌두 우월주의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힌두 우월주의 득세에 대한 나라 안팎의 우려가 심해지자 2022년 독립 기념식 행사에서는 하얀 바탕에 주황색과 초록색이 골고루 섞인 터번을 쓰고 등장했다. 8년 동안 존재를 무시당했던 초록색이 드디어 독립기념식 석상에 오른 것이다. 그때까지 모디 총리의 ‘지독한 주황색 사랑’에 대해서 입도 뻥긋 안 하던 인도 언론들은 처음으로 삼색이 모두 들어간 모디의 터번을 보고는 ‘Har Ghar Tiranga(인도 독립 75주년을 기념하여 집집마다 인도 삼색기를 게양하자는 운동)’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글을 실었다. 여태까지 모디 총리의 터번이 가진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 말을 안 하던 언론들이 모디의 터번에 대해서 뒤늦게 ‘쉴드’를 쳐주기 시작한 것이다. (“무식한 것들이 떠들어대는 그런 힌두 우월주의 상징이 아니야... 모든 종교의 국민들을 사랑하는 모디 총리님의 애민정신을 의심하지 말란 말이야”... 뭐 굳이 해석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왼쪽 : 2022년 독립기념일의 모디, 오른쪽 2021년 독립기념일의 모디




세 번째 국경일은 간디 탄생일이다.


간디를 빼고는 현대의 인도를 설명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간디의 탄생일인 10월 2일이 인도의 3대 국경일로 정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력 정치가의 자제로 태어나 유복하게 영국 유학생활을 마친 그는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일신의 안위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수줍음이 많아서 법정에서는 제대로 변론도 펼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MBTI 중에서 I, 그것도 아주 큼지막한 ‘대문자 I’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잠시 남아프리카에 취업하여 일하던 동안 그가 목격하고 경험한 극심한 인종 차별은 샌님 같던 젊은 간디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영국의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그가 빼어 든 비장의 무기는 뜻밖에도 비폭력 무저항주의였다. 가장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강한 그 무기를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인 대영제국을 상대로 겨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1947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식민지배의 철옹성은 무너졌다.


한편 그는 평생 동안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음주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인도 헌법 제47조에는 ‘정부는 금주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음주를 금하는 강제조항은 아니고 권고조항이기는 하나, 한 나라의 헌법에 금주를 권하는 조항이 버젓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간디의 금욕주의적 정신은 헌법뿐만 아니라 인도인들의 달력에도 자취를 남겼다. 10월 2일은 이러한 간디의 금욕주의적 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술을 팔지 않는 dry day로 지정되어 지켜지고 있다. dry라는 말은 비가 안 오는 건조한 날이라는 뜻이 아니고 술을 팔지 않는 날이라는 뜻이다.




[# 3] 온갖 종교의 휴일을 다 지켜요...


3대 국경일을 제외한 나머지 휴일들을 살펴보자, 우선, 힌두교의 나라이니 힌두교 관련 휴일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 매년 2월이나 3월에는 ‘마하 쉬바라트리(Maha Shivaratri, 위대한 시바신의 밤)’이라는 휴일이 있다. 힌두교 신중 하나인 쉬바신이 어둠과 무지를 무찌른 것을 기념하는 날로서 힌두교도들은 밝게 불을 밝힌 힌두교 사원을 찾아 쉬바신에게 경배를 드린다. 통상 3월에 찾아오는 홀리(Holi) 축제는 힌두교 축제중 가장 널리 알려진 축제이다. ‘봄의 축제’, ‘색채의 축제’로 알려진 이 축제는 형형색색의 물감과 물을 뿌리면서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음을 축하하는 축제이다. 잘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에게도 물감과 물을 뿌리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외국인들이 멋모르고 외출했다가 물감 세례를 받기도 한다. 8월을 전후해서는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힌두 신중 하나인 크리슈나 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Janmashtami 축일이 돌아온다. 10월쯤에는 라마신이 머리가 10개 달린 괴물 라바나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두세라(Dussehra 또는 Dasara) 축제가 열린다. 악에 대한 정의의 승리를 기념하는 이 날은 보통 북부 인도 사람들과 네팔 사람들에게 중요한 축제이다. 이로부터 20일째 되는 날은 인도의 새해라 할 수 있는 디왈리가 기다리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이때를 전후하여 새해맞이 대청소를 하고 풍요와 부의 신인 락슈미 신이 자신의 집을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밤새 등불을 밝혀 놓는다.


인도에서 살다 보면 위에서 설명한 5개의 힌두교 명절 이외에도 온갖 종류의 종교 축일을 맞게 된다. 우선 이슬람교와 관련된 휴일이 무려 4개나 된다. 라마단 금식기간이 끝났음을 축하하는 이드알피트르(Eid al-Fitr 또는 Idu'l Fitr)는 물론 예언자 모하메드의 탄신일인 미라드운나비(Milad-Un-Nabi, 일부 지역에서는 마울리드(Mawlid)라고 불리기도 함) 등이 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인도 인구에서 무슬림 인구가 약 15%를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다음부터가 아주 재미있어진다.

 



일단, 크리스마스는 물론 부활절 직전 금요일인 성금요일(Good Friday)이 인도에서는 공식 휴일이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한 인도 내 기독교도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2.3% 불과하지만 인도의 인구가 워낙에 많다 보니 그 수가 대략 3천만 명이나 된다. 그렇다 보니 한집 건너 빨간색 십자가가 밝게 빛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식 휴일이 아닌 성금요일이 생뚱맞게 인도 한복판에서 휴일로 지켜지고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떡하니 안방과 건넌방에 자리 잡고 있는 인도에서 기독교가 기를 못 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인도 남부에는 시리아 정교회(Syrian Orthodox)와 의식과 교리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크리스천이 상당수 거주한다. 케랄라주에만 대략 600만 명, 인접한 타밀나두주에도 약 400만 명이나 거주한다. 이들은 기원후 52년을 전후하여 도마가 인도에 정착했고 그것이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의 시작이 되었다고 믿는다. 


실제로, 이 당시에는 무역풍을 타고 중동에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왕래하는 무역상들이 다수 케랄라의 해변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이중에는 로마제국 치하의 유태인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마디로 성경 속의 도마가 인도의 서부 해안에 정착하여 인도 기독교의 원조가 되었다는 인도인들의 믿음을 근거 없다고 일축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예수의 손과 옆구리에 생긴 구멍에 자기 손가락을 직접 넣어보고서야 부활을 믿게 된 바로 그 ‘의심 많은 도마’이다.) 이후 바스코 다가마를 포함하여 15세기부터 인도를 스쳐 지나간 많은 서유럽인들은 로마 가톨릭 사제들을 인도에 남겨놓았고 이들 또한 꾸준한 생명력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왔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인도의 북동부(미얀마 및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지역)에 본격적으로 개신교가 전파되면서 이 지역의 나갈랜드(전체 인구의 88%가 기독교도), 미조람(87%), 메갈라야(75%), 마니푸르(41%), 아루찰 프라데시(30%)는 개신교가 매우 우세한 지역이다.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 지역에 들어갔다가는 온 동네에 울려퍼지는 찬송가 소리와 소고기를 파는 식당이 즐비한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_^:)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에 이어서 인도의 4대 종교라 할 수 있는 시크교(인도 인구의 약 1.7%)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 조금은 낯선 종교이다. 16세기경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장점을 취해 구루 나낙이라는 교주가 창시한 종교로서 역사가 약 500년 밖에 되지 않는 젊은 종교이다. 힌두교의 고질적인 병폐인 카스트에 의한 차별을 배격하기 위해 남자에게는 공통적으로 사자라는 의미의 ‘싱(Singh)’, 여자에게는 공주라는 의미의 ‘카우르(Kaur)’라는 성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인도인들은 성으로 카스트 계급이 구별된다. 즉, 타인의 성을 듣는 순간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의 카스트 계급을 대부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샤르마(Sharma), 바타차리야(Bhattacharya), 무케르지(Mukherjee), 데사이(Desai), 미슈라(Mishra), 바네르지(Banerjee)는 대표적인 브라만 계급의 성이다. 이름을 듣는 순간 브라만 계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면성실하고 상무(尙武)를 존중하는 전통으로 인해 자수성가한 자산가도 많고 인도 군대와 경찰에서 고위직을 차지한 사람들도 많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인도 총리를 역임한 만모한 싱 역시 시크교도였는데, 항상 머리에 두르고 다니던 청색 터번이 그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종교인데, 이 종교의 창시자가 태어난 날을 휴일로 지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좀 껄끄럽지 않겠는가? 그렇다. 시크교의 창시자인 구루 나낙이 태어난 날 역시 인도의 공휴일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인도스러운 휴일이라 하겠다.


약 800만 명의 신도수를 가진 불교는 인도 인구의 약 0.7%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인 부처님 오신날 (Buddha Purnima) 역시 휴일로 정해져 있다. 다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지키는 ‘부처님 오신날’과는 약 1주일 정도 차이가 있다. 4월경에는 마하비르 자얀티(Mahavir Jayanti)라는 자이나교 축제가 있다. 시크교를 들어본 독자분들이 많겠지만 자이나교가 어떤 종교인지까지 아신다면 그 독자분은 인문지리 지식이 매우 뛰어난 분이다. 자이나교(Jainism)는 형식에 치우친 브라만교(이후 힌두교로 발전함)에 대한 반동으로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종교로서 불교보다 더 엄격한 불살생의 교리를 견지하는 종교이다. 너무나도 엄격한 교리로 인해 불교와는 달리 세계적인 종교로는 발전하지 못했고, 2011년 인구 서베이에 따르면 인도 전체 인구의 약 0.4%인 440만명 가량의 신도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이나교가 견지하고 있는 엄격한 교리는 오히려 이들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엄격한 불살생의 교리로 인해 자이나교도들은 육식은 물론 농사도 지을 수 없었다(왜냐하면, 농사에 방해되는 각종 곤충을 죽일 수 없었으니까...) 결국 이들은 상업과 금융업에 몸담을 수밖에 없었고 근면하고 엄격한 생활방식으로 인해 엄청난 상인 세력을 형성했고, 현대의 인도 사회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되었다. 실제로 인도 최대 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가우탐 아다니(Gautam Adani) 역시 자이나교 신도이다. 0.4%밖에 안 되는 인구들을 위해 휴일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인도는 독립 국가로서의 인도를 만들어낸 제헌절과 독립기념일 그리고 간디의 탄생일을 국경일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어찌 보면 식민지 신세에서 벗어난 신생 독립국으로서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나머지 10여 개의 휴일은 단 한 개도 예외 없이 인도의 다양한 종교에서 파생된 기념일들이다. 종교별 인구의 비율과 비슷하게 각 종교별 휴일도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을뿐더러 비록 인구 비중은 작지만 의미가 있는 소수 종교에게도 최소한 하루의 기념일을 허락하는 아량도 보이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전 세계 주요 국가 중에서 무려 5개나 되는 종교의 기념일을 골고루 지키는 나라가 인도 말고 또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인도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일컬어 흔히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가진 나라라고 말하곤 하는데, 인도가 지키는 휴일이야 말로 ‘다양성(10여 개의 종교 휴일) 속에서 통일성(3대 국경일)’이라는 인도의 건국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뱀다리 1 : gazetted holiday는 인도 중앙정부가 정한 휴일이다. 28개의 주는 개별적으로 자신들의 주에서만 지키는 휴일을 추가로 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뉴델리에서 지켜지는 휴일이 첸나이에서는 휴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뱀다리 2 : 대개의 경우 힌두교도들은 디왈리와 같은 큰 힌두교 명절에는 정부에서 정한 하루 이외에 개인적으로 휴가를 사용하여 며칠간 쉬기도 한다. 그렇다면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보통 휴일 당일만 휴식하고 나머지 날은 출근하여 정상 근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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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5727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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