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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May 24. 2024

일본이 인도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방법..(3)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원조의 세계.. 일본과 인도의 독특한 관계

* '일본이 인도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방법..(2)'https://brunch.co.kr/@hobiehojiedaddy/227에서 이어집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협력해서 인도를 잠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가장 첫 번째로 강조해야할 점은 양국 정상간 셔틀외교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1952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냉전시대를 거치며 다소 소원해졌던 양국 외교관계는 2005년 주니치로 고이즈미 총리의 인도 방문 이후 매년 정상회담을 여는 각별한 사이로 발전했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고 추진하면서 일본과 인도의 관계는 더 가까워졌다. 기시다 총리는 2023년에 2번(3월과 9월)이나 인도를 방문했고, 모디 총리도 기시다 총리의 초대로 G7회의에 초대받아 5월에 일본을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인도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일본이 고마울 수 밖에 없다. 


모디 총리가 2023년 5월 기시다 총리의 초청을 받아 히로시마에서 열린 G7회의에 참석했다(출처 : 힌두스탄 타임즈)


총리급에서 이렇게 각별하다보니 장관, 차관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일본 중앙부처의 장관과 차관이 인도의 중앙정부도 아닌 지방정부의 주지사(Chief Minister)도 모자라 부지사(Deputy Chief Minister)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물론, 아무나 대접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기업의 해외투자나 주요한 계약 발주를 앞둔 그런 주(州)를 골라서 융숭히 대접하는 것이다.


마하라슈트라주의 부지사가 일본에 초대받았고, 일본 주요 중앙부처 장차관들이 연달아 그를 만나 융숭하게 대접했다(출처 : 힌두스탄 타임즈)


인도의 주요 공공기관 특히, 인프라 관련 공공기관을 방문해보면 나이 지긋한 일본인 컨설턴트가 떠억하니 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근무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워낙에 많은 분야에서 인도에 원조를 제공하다 보니 일본에서 은퇴한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근무자 또는 엔지니어링 업체 퇴직자를 컨설턴트로 고용해서 인도에 파견하여 근무하게 하는 것이다. 원래 이들의 업무는 일본이 제공한 원조 자금이 현장에서 원활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돕는 업무이다. 


하지만, 철도나 도로, 통신 등을 다루는 인도 공공기관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앉아 몇 년간 근무하다보면 파견기관의 주요 정책이나 정보가 이들에게 포착이 안 될래야 안될 수 없다. 결국 인도의 곳곳에 위치한 이들 주요 기관에 말초신경처럼 퍼져있는 일본인 컨설턴트들이 주요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들을 통해 취합된 정보는 가장 먼저 이들 컨설턴트를 파견한 기관인 일본국제협력단(JICA)으로 취합되고 다시 JICA에서는 양허성이 높은 원조자금을 지원해야할 프로젝트, 상업성이 높아서 민간금융기관이 지원해도 적절한 프로젝트 등을 적절히 나눠서 일본내 각종 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최고위급부터 나서서 인도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고위급부터 실무진까지 인도를 ‘밀착 마크’하고 있으니 일본이 인도의 인프라 시장을 그야말로 ‘도리’하고 있는게 당연하다고 하겠다. 




[# 6] 인도가 원조를 바라보는 태도...


지금까지는 인도에 원조를 제공하는 공여국 특히나 일본의 입장에서 원조를 살펴봤다면 이제부터는 인도의 입장에서는 원조를 어떠한 철학에 따라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도는 딱히 해외원조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물론 장기/저금리 자금을 빌려준다면야 당연히 땡큐이겠지만인도의 입장에서 원조자금을 꼭 빌려달라고 선진국의 바짓가랭이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왜 그럴까? 


첫째, 인도는 자금 사정이 그리 궁하지 않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해외에 거주하는 인도인들로부터 받아들이는 해외송금(foreign remittance)이 무려 1,250억 달러가 넘는 유일한 나라이다. 주로 중동의 고된 건설현장에 파견나가 일하는 인도인 노동자들이 그야말로 살과 뼈를 갈아넣어서 번 돈을 부지런히 고국으로 송금하고 있고, 이 돈이 인도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인도로 몰려드는 해외직접투자(FDI) 금액도 연간 약 500억 달러 가량이나 된다. 여기에 비하면 1년에 약 100억 달러에 불과한 원조자금은 그다지 큰 비중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수원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도 자체적인 수원정책을 만들어서 이를 공여국에게 지켜줄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원조공여국이 자국산 물품을 끼워팔기하는 소위 ‘구속성 원조(tied aid)’는 원칙적으로 거부한다거나, 원조자금으로 받은 돈으로 건설공사 등을 할 경우 이 공사에는 오직 원조공여국 기업과 인도기업만 참여할 수 있게 제한한다던지 등의 조건을 내건다. 배짱부리고 체면을 중시하는 인도답게 가끔은 특정 국가로부터 오는 원조를 전면 거부하거나 특정한 자연재해를 기해서 선진국에 제공하겠다는 원조를 종종 거부하기도 한다. 


인도에 대한 중요 공여국의 원조규모(단위 : 억 달러). 일본(파란색)의 규모가 급증하는 가운데, 영국(빨간색)의 규모는 2010년대 중반 이후 급감했다


실제로, 2012년을 전후해서 인도가 영국이 아닌 프랑스 전투기를 대량 매입하기로 결정하자 영국 보수당을 중심으로 ‘배은망덕한 인도에 왜 원조를 주고 있냐?’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자 당시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영국 원조 안 받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해버렸다. (물론, 영국의 원조가 그 이듬해부터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예 중단되지는 않았다(^_^;) 이 시기가 조금 흥미로운데, 일단, 2007년을 전후해서 1,000달러를 넘겼던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5년만에 약 1,500달러를 목전에 두면서 인도 나름대로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던 시기이다. 또한, 2013년에는 국제사회의 인도에 대한 원조가 우연히 일시적으로 감소하면서 인도가 받는 원조 대비 자신들이 해외에 주는 원조의 비율이 조금 높아졌던 해이기도 하다. 인도가 영국을 향해 큰 소리 한번 쳐볼만했던 것이다.




[# 7] 인도가 그렇게나 많은 원조를 주고 있다고요?


자, 이쯤 되면 독자분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공적개발원조라는 것이 ‘선진국이 가난한 개도국에게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단순한 자금 흐름’이라고 이해했다가는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전개되는 국제 원조 커뮤니티의 역동성을 놓치게 된다. 우선 이 세상 나라들이 공여국과 수원국이라는 두 개의 그룹만으로 깔끔하게 분류되지 않는다. 인도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매년 100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받는 수원국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약 7억 달러(약 9천억원)가 넘는 원조를 다른 나라에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2023년 약 31억 달러의 원조를 집행했으니 우리가 한참 내려다보는 인도가 우리나라의 약 1/4에 해당하는 금액을 해외원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법 놀라운 사실이다. 그리고 인도처럼 수원국이며 공여국인 나라들이 생각보다 많다. 우리나라도 1987년 경제개발협력기금(EDCF), 1991년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치하면서 그 전까지 산발적으로 제공하던 원조를 본격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1990년대 후반까지도 선진국의 원조를 계속 받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공여국이자 동시에 수원국이었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대부분의 개도국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공여국이 되었다가 누군가에게는 수원국이 되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해외원조라는 것이 단순히 못 사는 나라를 도와주는 대출이나 기술협력이 아니라 정교한 외교수단이자 대외경제정책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24년 1월, 인도령 락샤드위프 제도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 모디 총리


인도는 그렇다면 어느 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원조를 주고 있는 것일까? 대충 짐작하듯이 인접한 빈곤 국가들 즉네팔과 부탄이 인도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양대 수원국이다. 인도 정부의 FY2024/2025 예산(안)에 따르면 부탄에 대한 원조로 207억 루피(약 2억 6천만 달러), 네팔에 대한 원조로 70억 루피(약 8,750천만 달러)가 배정되어 있다. 반면, 최근 친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도와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한 몰디브에 대한 원조금액은 22% 가량 깎인 60억 루피(약 7,500만 달러)가 배정되었다. 


몰디브에 대한 원조금액이 삭감된 배경이 흥미롭다. 몰디브에 친중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몰디브와 인도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그러던 2024년 1월, 모디 총리는 인도령 락샤드위프 제도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몰디브로 휴가를 가려던 자국민들에게 몰디브 대신 락샤드위프로 휴가를 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리고, 인도 정부는 몰디브에 대한 원조자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인도는 이외에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이웃 국가들에게 원조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있다. 인도가 해외원조라는 정책을 서남아 지역에서는 자국패권 유지에 활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물론, 인도계 후손과 인도계 정착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모리셔스나 세이쉘은 물론 몇몇 중남미 국가에도 원조를 주고 있기도 하다.

인도 외무부의 자이샹카르 장관은 2023년 4월, 아프리카의 우간다와 모잠비크를 방문했다




[# 8] 인도를 둘러싼 원조의 미래그리고 우리가 나아갈 길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노골화되면서 중국의 대항마로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더 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정치/군사적 목적과 자신들의 원조 정책을 연결시켜왔던 미국의 행태가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 노골적으로 인도, 중국, 방글라데시가 접경하고 있는 인도 북동부 지역에 대한 원조지원액을 늘리면서 인접한 벵골만에서의 중국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도 중국을 견제하는데 동참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일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나서기도 하고 때로는 일본이 최대주주로 있는 다자금융기구인 아시아개발은행을 앞장세워 인도 북동부 지역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서남아시아에서 인도와의 패권경쟁을 피할 수 없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네팔, 스리랑카에 이어 최근에는 몰디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원조를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 마디로 원조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총성없는 외교/군사 경쟁이 서남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조가 정치/군사적 목적 이외에도 다양한 국제적 이슈를 해결하는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과 인도는 기후변화 분야에서도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일본의 국제협력단은 인도의 신재생에너지 및 전기자동차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원조를 제공하고 있으며, 2023년 3월에는 파리기후협정(Paris Agreement) 제6조에 근거하여 인도의 탄소 감축량을 일본으로 이전할 수 있는 ‘공동크레딧시스템(Joint Crediting System)’을 설치하자는데 기본적으로 합의하기도 하였다. 이 협의가 잘 진행된다면 일본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해쳐가면서 탄소배출량을 감축할 필요가 없다인도의 탄소 감축량을 가져다 쓰면 되기 때문이다. 양국간 탄소감축량 이전을 위한 각종 규정과 제도가 인도에 도입되어야 할텐데, 이를 위해 일본의 원조자금이 투입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많은 원조를 형편이 어려운 나라에 제공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총 GDP 순위(1인당 GDP가 아니고)가 대략 세계 14등 정도 되는데, 우리가 제공하는 ODA의 규모도 대략 세계 15등 정도이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국력이나 경제 규모에 맞는 규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각 국가별 인구수에 크게 영향받는다. 원조 규모를 공여국의 인구수로 나눠서 보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펼쳐진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총 소득 중에서 겨우 0.17%만을 원조에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OECD 원조위원회 회원국중 꼴찌에서 4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전체의 평균도 0.3%를 넘어선다.

총 소득 대비 해외원조액(단위 : %)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얼마나 높고,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한가하게 해외원조 타령이나 하고 있냐?’라고 독자분들이 항의한다면... 맞는 말이다. 우리도 힘든데 선뜻 해외원조 하자고 이야기하기가 곤란하기는 하다. 하지만, 1953년 이후 우리에게 원조를 제공했던 선진국들은 과연 자기네 나라에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어서 당장 망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한국이라는 나라에 원조를 쏟아부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를 선뜻 도왔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들지만 우리가 1990년대까지 받은 누적 원조가 거의 70조원에 달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1980년대 이후 개도국에 제공하기 시작한 원조가 아직도 그 절반에 불과한 35조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원조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비록 그 어떤 선진국도, 그 어떤 국제기구도 우리에게 ‘너네도 먹고 살만큼 잘 살고 있으니 원조 좀 많이 해라’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빚지고는 못 사는 깔끔한 사람들 아닌가? 최소한 국제사회에 진 빚은 당당하게 갚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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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더 자세한 내용은 '삼프로 언더스탠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oDMeOvk0g&ab_channel=%EC%96%B8%EB%8D%94%EC%8A%A4%ED%83%A0%EB%94%A9%3A%EC%84%B8%EC%83%81%EC%9D%98%EB%AA%A8%EB%93%A0%EC%A7%80%EC%8B%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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