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접종 : '21. 4. 19(월)...
인도에서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비교적 늦지 않은 날짜인 '21년 4월 초부터 45세 이상의 고령자(?)에 대한 접종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젊지도 늙지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 취급을 받았을 텐데, 고령층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인도에 살다 보니 45살만 넘어도 고령층 대접을 받는 게 조금은 감사했다.
IT의 강국답게 인도 전역에서 예방접종을 예약할 수 있는 홈페이지가 때맞춰 만들어졌고, 우리 부부도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무사히 45세 이상에 대한 예방접종이 시작된 지 2주를 조금 넘긴 4월 19일로 접종을 예약하는 데 성공했다. 집에서 걸어갈만한 그리 크지 않은 민간 병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인도에서는 접종 백신을 선택할 수 있다.) 접종이 실시되고 있어서 옳거니 하면서 예약했다. (인도에서는 오직 두 종류의 백신만 접종 가능한데, 나머지 한 개는 인도 토종 백신이어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조만간 러시아제 스푸트니크 접종도 시작된단다.)
예방접종 당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병원에 도착해서 접종을 받았다. 티끌 하나 없는 한국의 병원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인도 기준으로는 나름 작지만 깔끔한 병원이었고, 아침 일찍 간 덕분인지 사람도 붐비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1차 접종을 마쳤다는 증명서까지 직접 친절하게 출력해주는 병원을 나서면서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에 있는 민간 병원이라서 그런지 우려했던 것보다는 깔끔하네.'라고 아내에게 말을 건넜더니 아내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안타깝게도 접종 후 부작용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나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근육통을 며칠 겪는 수준이었지만, 아내는 첫날밤부터 고열과 근육통에 시달리면서 타이레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셋째 날 아침, 체력을 회복했다고 생각한 아내는 나에게 집 근처에 있는 시장에 같이 가자고 청했다. 아침 산책 겸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서 시장에 도착했는데, 아내가 갑자기 현기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지러운 정도의 수준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는데도 아내의 현기증은 심해져만 갔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면서 시간만 자꾸 흘렀다.
이러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벤치에 앉아 있던 아내를 간신히 일으켜서 집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그걸 못 샀네.'라며 아쉬워했다. 자기 몸 힘든 거는 생각 안 하고 애들에게 먹을 거 못 사주는걸 아쉬워하는 아내를 보자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짜증을 냈다. '지금 그게 중요해? 당신이 빨리 집에 가서 쉬는 게 중요하지!'. 몇 발짝 걷고 벽 잡고 쉬기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거실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두어 시간을 꼼짝도 않고 새근새근 잠자는 아내를 옆에서 보고 있자니 안쓰럽고 짠한 느낌이 들었다. 잠든 아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데 유난히 새치머리가 더 많이 눈에 띄는듯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 사이에 있는 쉬는 시간에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는 '엄마, 아파?'라는 한 마디만 하더니 대답도 안 듣고 다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업 들어야 한다며 말이다. 으이그.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더니... 거실 바닥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고도 본척만척하는 아이들의 행동이 야속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다행히 자고 일어난 아내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 이외에는 추가적인 부작용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삼일 정도 더 지나더니 체력도 거의 이전 상태를 회복하였다. 하지만, 현기증 때문에 길거리 한복판에서 쓰러질 뻔했던 경험은 꽤나 충격적인 경험이었는지 평소에 항상 침착하고 차분했던 아내도 2차 접종을 맞으러 가는 날에는 꽤나 긴장한 듯 보였다.
제2차 접종 : '21. 5. 18(월)...
1차 접종 이후 정확히 1달 만인 5월 18(화)에 예약이 되었다. 하지만, 백신 공급 부족에 직면한 인도 정부가 백신의 대부분을 공공병원에 공급하면서 민간병원 예약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좀 거리가 있는 공공 병원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인도의 거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의료 시스템도 민영 병원과 공공 병원은 진료의 수준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철저하게 양극화되어 있다. 복도와 병원 문 앞에 환자들이 널브러져 있고, 보호자와 환자, 의사 심지어는 죽은 시체마저 한 곳에 바글바글 모여, 누군가는 절규하고 누군가는 울부짖는 'TV 화면 속 인도 병원'의 모습은 백발백중 공공병원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덜 붐비는 시간에 접종을 받고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도착해 보니 규모가 꽤 큰 병원이었다. 하지만, TV 속 아비규환과 같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약간 한산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한국 수준의 깔끔함까지는 아니어도 인도 기준으로는 나름 잘 관리된 병원이었다. 접종센터는 2층이었고, 접종센터로 걸어 올라가는 동안 건물 중앙에 조성된 '중앙정원'의 사진도 한 컷 찍어 보았다.
'침을 뱉지 마시오'라는 지극히 인도스러운 표지판 밑에 접종 센터로 가는 화살표가 붙어 있었고, 우리 부부는 어렵지 않게 접종센터에 도착했다.
접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다리는 인파도 없었고, 도착하자마자 신원 확인과 예방접종 예약 여부확인후에 10분도 안 되어 접종은 완료되었다. 이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쇼크)에 대비해서 접종 후 30분간 '관찰실'에 대기했다.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면 접종 완료 증명서도 무료 발급받을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도 접종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에 도착했다.
병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관찰실'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이 앉아있던 의자에 일일이 소독액도 뿌리고 있었고, 30분이 지나서 관찰실을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타이레놀 계열 알약도 한 개씩 나눠주었다. 접종을 다 마치고 집에 왔는데도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어색할 정도였다.
1차 접종을 마치고 심한 부작용을 겪었던 아내는 점심에 먹을 볶음밥을 후다닥 만들어 놓고는, '에구에구... 이제부터 나는 아플 예정이야. 집안일은 당신이 좀 해요'라며 일찌감치 자리를 깔고 누웠다. 나에게는 지난번 1차 접종에 비해 근육통이 비교적 빠르게 찾아왔고, 아내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유튜브에서 ‘유퀴즈’ 동영상을 보고 있다.
한쪽에서는 하루에만 수천 명의 코로나 환자가 세상을 떠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전세기를 빌려서 유유히 인도를 탈출하는 억만장자가 즐비한 나라, 접종이 완료되는 순간 접종 완료 증명서가 인터넷에서 뚝딱 발급되는 최첨단 IT 시스템과, 인터넷은 고사하고 무선 전화기조차 갖지 못한 수천만명의 빈민층이 공존하는 나라... 정말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모순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찬 나라...
오늘따라 ‘인도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나라’라는 다른 회사 주재원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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