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뭐라해도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서글프다..
주말 새벽.
금요일에 마무리하지 못한 본사앞 보고서를 마무리하기 위해 책상앞에 앉았다가 모기에게 여섯방이나 물렸다. 그나마 책상 밑에서 움직이는 모기를 봤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못 봤다면 일곱번째, 여덟번째까지도 물렸을것 같다. 모기에게 물리는 것도 모르고 회사일에 몰두할 정도로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도 아닌데, 어이가 없는 정도를 넘어서 나 자신에게 살짝 화가 나기 시작했다. 모기를 보고 칼을 뽑아들었다(견문발검, 見蚊拔劍)이라는 사자성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이 얼마나 미련 곰탱이 같으면 여섯방이나 물리도록 모르고 있었지?'
모기약을 바르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섯방이나 물리도록 나는 단 한번도 따끔함을 느끼지 못했다. 젊어서 피부가 탱탱할때는 모기에 물리기는 커녕 내 몸에 앉기만 해도 귀신같이 알아내고 단숨에 손으로 내리쳐 잡고는 했는데... 이제는 피부에 생기도 떨어지고 감각도 떨어져서 모기가 한번도 아니고 여섯번이나 물도록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노안으로 눈도 침침해져서 도망가는 모기가 잘 보이지도 않고 행동도 굼떠져서 옛날처럼 잘 잡히지도 않는다.
모기 뿐만 아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얼굴 한쪽에 쭈글쭈글 베갯자국이 그대로 남아 오분이 지나고 십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 얼굴에 생긴 베갯자국이야 어차피 내 눈에 안 보이니 상관 없지만, 아내의 얼굴에 생긴 베갯자국을 보면 측은하다. 내 눈에는 20년전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 앞으로 걸어오던 내 아내와 지금 내 옆에 아침잠에서 덜깬채 앉아있는 아내가 변한거 하나 없이 그대로인거 같은데, 문득문득 드러나는 아내의 새치머리와 얼굴의 베갯자국을 보면, 미안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몇주 전 한국으로 본국휴가를 들어간 김에 아내는 돋보기를 하나 맞췄다. 안경점에 가서 돋보기를 맞추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세월 앞에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당연한 진리가 야속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늙어도 아내만은 세월의 화살을 비껴가길 바랬는데, 헛된 기대였다. 아내의 돋보기 낀 모습을 바라보며 호비와 호지는 엄마를 살짝살짝 놀리기 시작한다.
'엄마, 눈이 침침했었는데 이제 돋보기 쓰니까 잘보여?'
'엄마, 돋보기 썼으니까 이젠 정말 확실히 늙은거야?'
에휴... 철없는 녀석들... '야, 이 놈들아... 너희들 키우고 먹여 살리느라 엄마 아빠가 이렇게 늙었다, 이놈들아...' 꼰대스러운 훈계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그만뒀다. 1년 반만에 한국에 휴가와서 깔깔거리며 즐기기에도 바쁜 애들이 내 잔소리를 귀등으로라도 들을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것은 부모가 가졌던 건강과 지혜를 아이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늙어가는 것이 크게 서글프지 않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정도까지 마음 넓은 인간은 못되나 보다. 애들이 커가는 게 행복한 거는 행복한 거고, 내가 나이들어가는게 슬픈거는 또 슬프다. 아이들에게 "다른 거 필요 없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만 즐겨라.. 엄마와 아빠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 뿐이야.."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이 옹졸한 심보...
이 것 역시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인가?
에휴.. 서글프다...
모기나 때려잡으러 가야겠다. 어디보자, 모기채가 어디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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