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재밌는 '화이트 타이거'속 인도의 이면들

이것만 알면 '화이트 타이거'를 좀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어요...

2021년 초에 넷플릭스에 최초로 공개되면서 꽤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화이트 타이거'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했는데, 발리우드식 노래나 춤은 하나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블랙유머가 가득한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미 개봉 직후부터 '인도판 기생충', '가장 매운맛의 인도 영화' 등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고, 브런치에서도 여러 명의 작가들이 이 작품을 리뷰하여 글을 게시하였다.


이 글에서는 이미 다른 브런치 작가들이 다뤘던 내용이 아니라, 알고 나서 보면 좀 더 재미있는 영화 속 숨어있는 사소한 정보들을 좀 다뤄보고자 한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고 나서 보면 더 재미있는 현지 생활 밀착형' TMI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1.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차 있는 카스트 제도의 그림자


영화의 주인공인 발람(Balram)이 운전 교습을 받는 장면, 그리고 아쇽의 운전기사가 되기 위해 일종의 시험을 치르는 장면에서 모두 발람의 카스트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의 성을 묻고는 곧이어 무슨 직업에 속한 카스트냐고 묻는다. 그의 성은 Halwai... 사탕을 만드는 낮은 카스트 계급 소속이다.


인도 국민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몇 마디 말을 나눠보면 대개의 경우 상대의 카스트를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에 Indian names by caste라고 쳐도 어떠한 성이 어떠한 카스트에 속하는지가 줄줄 나온다. 카스트는 한 사람이 소속된 가문이 대대로 어떠한 직업에 종사해왔는지를 알려주는데, 최근까지도 (특히 시골에서는) 부모의 직업을 그대로 물려받는 인도인들이 많았던 관계로 부모의 사회적 지위는 곧바로 자식들의 사회적 지위였다.


결과적으로, 수 천 년 전에 자신의 성과 함께 정해진 조상의 직업 그리고 카스트 계급이 수천 년이 지난 현재의 시간에서 나를 옥죄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발람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차 장사꾼 밑에서 하루 종일 석탄을 깨는 종업원으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밑바닥 보다 낮은 밑바닥 신세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2008년에 아라빈드 아디가(Aravind Adiga)가 쓴 데뷔 작품인데, 첫 작품으로 맨 부커 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책이나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차 장사꾼이라는 직업이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차 장사꾼이라는 직업만큼 '인도스러운 직업'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정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 장사꾼'이라는 직업을 본 순간 단박에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정치에 투신한 이후, 이 소설이 발표되던 시점에 이미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주(state)중 하나인 구자라트의 주지사(Chief Minister)를 역임하고 있던 나렌드라 모디(2001년부터 2014년까지 주지사 역임 후 인도 총리에 선출됨)도 차 장사꾼 집안 출신의 낮은 카스트였다는 점을 놓치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2. 방글라데시보다도 못 사는 인도???


그렇다. 이제 인도는 최빈국의 대명사였던 방글라데시보다 1인당 GDP가 낮다. 방글라데시가 개방 경제를 바탕으로 봉제업과 같은 제조업을 꾸준히 육성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뤄오는 동안 인도는 사회주의적 경제를 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정체기를 경험했다. 그 결과, 가장 최근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1인당 GDP는 2,227달러, 인도의 1인당 GDP는 1,947달러에 불과하다. (https://www.bloomberg.com/opinion/articles/2021-05-31/india-and-pakistan-are-now-poorer-than-bangladesh)


물론, 인도는 워낙에 땅덩어리가 큰 나라이다 보니 계층 간 빈부격차만큼이나 지역 간 빈부격차가 큰 나라이다. 예를 들어, 마하라슈트라주, 케랄라주, 타밀나두 주처럼 남부에 위치한 몇몇 주들과, 북서부의 뉴델리, 구자라트 주 등은 국가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1인당 GDP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농촌 지역들 특히, 비하르, 오디샤, 아쌈, 니조람 등 북동부의 몇몇 주들은 매우 빈곤한 형편이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인 발람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주중 하나인 비하르 출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3. 영화 속 '위대한 사회주의자'의 모델은 누구였을까?


소설 속 '위대한 사회주의자'는 남성이었지만, 영화 속에서는 여성으로 바뀌어 있다. 워낙에 인도에 부패한 정치인이 차고도 넘치기 때문에 작가가 2008년에 원작 소설을 쓸 때 딱히 누구를 롤 모델로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ㅎㅎㅎ 하지만, 영화에서 '위대한 사회주의자'가 여성으로 묘사되면서 상황이 좀 바뀌게 되었다. 발람이 비하르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그 동네의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만 보고서도 많은 인도인들은 (비하르에 인접한) 웨스트 벵갈 주의 주지사인 마마타 바네르지(Mamata Banerjee)를 떠올렸을 것이다.


실제로 마마타 바네르지는 2011년 웨스트 벵갈주 주지사에 선출된 후 연임하고 있는 정치인으로, 현재 인도 유일의 여성 주지사일 뿐만 아니라, 화려한 부패 스캔들(도 모자라 가짜 박사학위 스캔들)을 자랑하는 부패 정치인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봄에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자신이 이끄는 AITC 당을 다시 한번 웨스트 벵갈 주의회 다수당으로 만듦으로써, 2024년에 예정된 인도 전체 총선(여기서 승리한 다수당의 총수가 인도 모디 총리의 후임 총리가 됨)에서 모디 총리를 위협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4.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종교들...


영화에서 힌두교의 모순을 다루기에도 벅차서 그런지 다른 종교는 딱히 등장하지 않았지만, 무슬림과 시크교도가 잠깐 영화 속에 등장했다. 일단 아쇽의 가족은 무슬림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대감과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20여 년 가까이 '제1 운전사'로 일해왔던 Ram Persad가 이슬람교도라는 것을 발람이 밝혀내면서 발람은 그를 쫓아내고 '제1 운전사'로 '승진'하게 된다.


다른 엄청난 직업도 아니고 고작 '운전기사'라는 직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실제 이름까지도 20년이나 숨겨야 했던 불쌍한 그 사람이 사용했던 가짜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힌두 신화의 가장 유명한 신 중 하나였던 라마신(Ram)이었다.


운전 교습을 받는 발람을 '사탕 만드는 카스트 주제에 무슨 운전이냐? 시크교도나 라자스탄 사람처럼 용감한 사람들만 운전할 수 있다'며 구박하던 운전 교관은 머리에 큰 터번을 둘러쓴 시크교도였다. 모든 시크교도는 싱(Singh)이라는 성만을 사용하는데, 이는 '사자(Lion)'라는 뜻의 고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하였다. 용맹하고 충성심이 강해서 인도 내 군대나 경찰 등의 조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5. 영화 속 이곳저곳들 : 아쇽 부부가 정착한 곳은 사실 뉴델리가 아니었다???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 부부가 발람을 데리고 와 정착한 곳은 뉴델리는 아니다. 뉴델리에서 자동차로 약 30분가량 떨어진 '구루가온'이라는 신도시이다. 이들이 새로 이사한 집은 M3M Golf Estate라는 꽤 비산 고급 아파트 단지이다. 지금 우리 가족은 뉴델리에 거주하고 있는데, 가끔 구루가온으로 놀러 가면 뉴델리와는 전혀 다른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스카이 라인에 감탄하곤 한다.


아, 영화의 약 50분 45초쯤에 '부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곤 한다'라는 대사와 함께 아쇽을 태운 차가 어떤 학교 앞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Navyug School... 인도에서 어린 영재들만을 선발하여 가르치는 영재학교이다. 한 세대에 한 마리 나올까 말까인 '화이트 타이거'인 발람이 운전기사 신세가 되어 그 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화 속에서는 짧은 장면이었지만, 인도인들이라면 무릎을 쳤을 장면이다.


6. 아쇽과 발람이 기도하던 그 힌두신...


영화가 1시간 24분 정도 진행된 후 아쇽과 발람은 허름한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마치고 한 힌두 신전에 들어가 기도를 한다. 그때 이들이 기도를 했던 신전은 하누만(Hanuman) 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인도 최고의 신인 람(Ram) 신의 가장 충직하고 믿음직한 부하가 바로 하누만 신이었다. 영화 속 발람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한편으로 하누만 신은 지혜와 용기, 그리고 용맹성을 상징하기도 하며, 힌두교도들은 하누만 신에게 소원을 빌면 가장 빠르게 소원이 성취된다는 믿기도 하는, 기복적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똑같이 하누만 신앞에서 자신들의 소원을 빌었던 아쇽과 발람... 과연 그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역시나 힌두교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는 시청자라면 감탄했을만한 명장면이었다.


7. NRI를 알아야 화이트 타이거가 이해된다.


NRI는 Non Resident Indian의 약자로서 우리 식으로 설명하자면 '교포' 정도의 의미가 된다. 인도 내에 1년 중 절반 이하를 거주하면 NRI 자격을 갖는데, 인도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투표권 등의 권리도 보장되면서 인도 내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납부하는 납세의 혜택도 누리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호주 등의 선진국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경제활동을 펼쳐 벌어들인 돈을 인도로 송금한다. 그 결과 인도에 남아 있는 자신들의 일가친척을 먹여 살리고, 더 나아가 'Remittance Economy(해외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인 인도 경제를 떠받치는 존재들이다. 현재 약 3,000만 명의 NRI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영화 속 아쇽과 마담 핑키는 NRI이다. 미국에서 오래 거주하면서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 등을 마친 이른바 '외국물 먹은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부유층 자제들로서 어린 나이에 선진국에 유학하여 선진국의 문화에 익숙하다. 하지만, 아쇽의 경우 자신의 뿌리인 인도를 저주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부패하고 부조리한 인도에 점점 적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타락하게 된다. 일부 인도인들은 NRI를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권리만 누리는 집단'이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한편, 약간 아이러니하게도 원작 소설의 작가도 금수저 집안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명 은행의 은행장을 역임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호주로 이주한 후 미국의 콜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했으니, 굳이 비교하자면 소설 속 발람이 아닌 아쇽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 하겠다.


8. 프리앙카 초프라 조나스


영화에서 마담 핑키로 등장했던 여배우는 프리앙카 초프라 조나스이다. 이 영화에서 비중이 좀 낮았다고 해서 이 여배우를 우습게 봤다간 큰 오산이다. 1982년생으로 2000년에 미스월드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현재 명실상부하게 인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이다. 잊을만하면 인도 현지 서점에 PC (팬들이 프리앙카 초프라를 부르는 애칭)를 다룬 책이 끊이지 않고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이다.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여 2015년에는 ABC에서 방영된 Quantico라는 TV series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었다. 2018년 미국의 유명 보이밴드인 조나스 브라더스의 멤버 닉 조나스와 연애 6개월 만에 초고속 결혼을 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아, 그리고 '화이트 타이거' 영화의 공동제작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여성 인권이 낮은 인도라는 나라에서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왔던 유명인사이자 영화배우, 그리고 영화제작자인 프리앙카 초프라가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 중 한 명으로 나섰다는 것 또한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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