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 죽인 사람은 진정 누구였을까?

햄릿을 '불편하게' 읽는 방법...

[# 1] 햄릿을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들...


햄릿이라는 작품이 셰익스피어 작품 전체에서는 물론, 영문학 전체에서도 워낙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라서,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족 간에 벌어진 살인과, 이에 대한 복수극이라고 해석하는 방법이겠지요. 또 다른 방법은 (이 작품의 배경인 12세기를 전후한) 북유럽의 역사를 다룬 역사극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럴 경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식적인 해석인 "햄릿+햄릿의 아버지 = 착한 사람들", "클로디어스 왕 = 나쁜 사람"이라는 일차원적인 구도에서 빠져나와 새롭고 신선한 해석도 가능하죠.


즉, 햄릿의 아버지는 인접 국가인 노르웨이와 싸움이나 벌이는 호전적인 왕, 그에 비해 클로디어스 왕은 외교적 능력이 뛰어난 개혁적인 군주(실제로 그는 노르웨이의 포틴브라스 왕자의 반란 음모를 편지 한 장으로 저지하고, 영국 왕에게도 편지 한 장을 써서 햄릿 왕자를 살해하라고 시키는 등 뛰어난 외교술을 작품 전체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햄릿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능력도 부족하고 우유부단한 왕위 계승자라고 재해석할 수 있겠죠...




[# 2] 햄릿은 무슨 이유로 그리도 머뭇거렸을까?


세 번째 방법은 바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초를 두고 햄릿을 해석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어니스트 존스가 1949년 출간한 '햄릿과 오이디푸스'는 햄릿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명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많은 문학 연구자들이 항상 궁금해하면서 풀지 못했던 바로 그 문제 "왜 햄릿은 그렇게도 복수를 실행하는데 머뭇거렸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제시합니다.


잠시 햄릿의 제3막 제4장으로 같이 가보시죠. 배우들의 총 대사가 약 210여 개 라인에 불과한 그리 길지 않은 장면으로, 햄릿과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가 가장 격렬하게 의견 대립하는 장면입니다. 그 와중에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폴로니우스는 햄릿의 칼에 살해당하고 말죠. 저는 햄릿의 대본을 읽으면서, 그리고 유튜브에서 햄릿을 극화한 영화나 연극을 여러 편 반복해서 시청하면서 유독 이 3막 4장에서 매우 불편한 느낌을 느꼈습니다.


다른 독자분들은 전혀 불편하지 않으셨는데, 저만 불편했다면 그건 아마도... 제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저의 음란마귀가 가득 찬 상상을 여러분께도 좀 설명드려볼 테니 여러분들도 동의하시는지 한번 읽어봐 주세요..




[# 3} 엄마, 그 남자랑 잠자리하지 마세요. 그 남자랑 잠자리하지 말라구요!!!


일단, 어머니와 마주 선 햄릿은, 저라면 가장 궁금했을 질문들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저라면 대놓고 좀 더 중요한 질문, 제가 알고 싶은 질문부터 했을 거 같아요. "혹시라도 아버지를 죽이는데 어머니가 공범 역할을 했냐"라고 말이죠.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를 물었을 겁니다. 남편이 죽은 지 2달 밖에 안돼서 그리도 서둘러 결혼한 것이라면 당연히 이게 가장 의심스러웠을 테니까요.


물론 햄릿도 처음에는 이 질문(과 비슷한 발언)을 하기는 합니다. 폴로니어스를 클로디어스 왕으로 착각한 햄릿이 단칼에 그를 찔러 죽인 후, 거트루드 왕비가 깜짝 놀라서 '이 무슨 피비린내 나는 짓이냐!'라고 책망하죠. 그러자 어머니에게 '(자신이 폴로니어스를 죽인 행동이나) 왕을 죽이고 그 동생과 결혼한 행동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피비린내 나죠!'라고 되받아칩니다.


자, 그런데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더 이상 어머니의 살인 사건 연루 여부에 대해서는 추궁하지도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머니의 재혼이 '이마에 창녀의 낙인을 찍고, 혼인서약을 우습게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흠... 글쎄요. 한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될 왕세자라면 어떤 사람이 왕위찬탈에 연루되었는지 여부를 먼저 따지는 게 정상적인 순서 아니었을까요? (그게 설령 자신의 어머니라 할지라도 말이죠...) 그렇게 해서 국가의 기강을 먼저 세우는 거, 그게 왕세자의 올바른 행동 아니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릿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요하게 어머니에게 '왜 숙부와 결혼했느냐'를 묻고는 궁극적으로는 '숙부와 잠자리하지 마라'라고 요구합니다. 왕위찬탈보다 어머니가 누구와 잠자리 하는지가 더 중요한가 봅니다. 이쯤 되면 선왕의 살해 사건에 직면한 왕세자(햄릿)와 공범으로 의심받는 사람(거트루드 왕비)의 대화도 아니고, 심지어 아들과 어머니와의 대화도 아닌,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나 벌어질 듯한 대화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햄릿과 어머니와의 대화가 격렬해지기 시작하자, 결국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서, '얘야. 어서 복수에나 나서거라, 애꿎은 어머니의 마음은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라고 타이르기에까지 이릅니다.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한) 저에게 이 부분은 한 여자(거트루드 왕비)를 두고 서로 다른 두 남자가 경쟁하는 장면으로 이해됩니다... 옛날 연인(햄릿의 아버지)이 새로운 연인(햄릿 왕자)에게 질투를 느낀 장면이랄까요?


제 머릿속에만 이상한 마구니가 들어선 거 아니죠? ㅠㅠ 다른 분들도 이렇게 해석하신 분들 있으시죠? ㅠㅠ 결국 햄릿은 폴로니어스의 시체를 끌고 방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계속 자기 어머니에게 '숙부와 잠자리하지 말라'라고 떼를 씁니다. 결국 그에게는 어머니가 누구와 잠자리를 하느냐가 가장 중요했나 봅니다.




[# 4] 결국 햄릿이 햄릿의 지시를 받아 햄릿을 죽이는 처절한 자살극...


이 연극을 좀 유심히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햄릿 왕자의 아버지 이름 역시 햄릿입니다. 뭐, 서양에서야 조지 1세, 조지 2세... 이렇게 같은 이름을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이렇게 물려받는 경우가 많으니까 크게 특이한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햄릿 왕자에게 숙부에 대한 복수를 부탁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게다가... 숙부는 햄릿에게 어떤 사람인가요? 겉으로는 아버지를 죽인 복수의 대상이죠. 네. 맞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햄릿의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연인인 거트루드 왕비를 차지한 사람... 아빠 햄릿(햄릿 왕)의 경쟁자였다가 이제는 아들 햄릿(햄릿 왕자)의 무의식을 현실에서 실현시킨 바로 햄릿 왕자의 분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You made my dream come true.. 유후~~)


결국, 햄릿 왕자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거트루드 왕비를 차지한 자신의 "자랑스러운 분신(클로디어스 왕)"을 죽여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겁니다. 달리 말하자면, 햄릿이 완성해야 할 복수는 "햄릿(자신의 아버지인 햄릿 왕)이 햄릿(자기 자신)에게 햄릿(자신의 분신인 클로디어스 왕)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자기 파괴의 무서운 광시곡"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자기 자신의 명령을 받아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머뭇머뭇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죠.


연극의 막바지인 제5막 제2장...


자신의 무의식 속 연인이었던 어머니가 독배를 마시고 사망하자 그제야 복수의 불길에 타오른 햄릿은 단칼에 클로디어스 왕을 죽여버리죠. 그렇게도 질질 끌면서 머뭇거렸던 아버지의 복수가 결국에는 어머니가 사망하는 그 순간에서야 완성되는 겁니다. 자신의 '무의식 속 연인'의 죽음을 목격하고야, 그제서야 실행에 옮겨진 복수...


가슴 저미도록 슬프면서 한편으로는 몹시 기괴하지 않나요?




어떠세요. 이쯤 되면 햄릿이라는 작품이 충분히(ㅎㅎ) 불편해지셨나요? 그러셨다면 제가 이 글을 쓴 목적은 충분히(ㅎㅎ) 달성했습니다. 어차피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독자의 가장 깊은 마음속을 건드려서 독자들을 기쁘게도 만들고, 슬프게도 만들고, 감동하게도 만들고, 때로는... 불편하게도 만드는 거니까요.


그럼 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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