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스타트업 커리어에 관한 글을 보고, 나의 커리어가 바로 떠올랐다. 내가 소셜벤처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이러한 고민의 결과 HR이라는 직무를 다시 선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소모만 하는 스타트업 문화 끝내겠다" - [핀다인터뷰] 이재균 핀다 CBO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성장 없이 소모만 하다 끝난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업무분장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소모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의 커리어의 시작은 법인을 설립하지도 않은 소셜벤처였다. (스타트업이 아니라, 사회적인 가치와 재무적인 가치를 동시에 이루고자 하는 기업의 형태이다.) 이런 조직에 조인하게 된 이유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돈을 벌면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반했기 때문이다.
처음 조직에서는 말 그대로 A to Z까지 모든 일을 하였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수정하는 일부터 지원사업을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 각종 행사를 위한 운영 기획 및 디자인 작업, SNS 페이지 운영까지, 거의 모든 일에 관여했고, 직접 주도하여 진행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을 만들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하면서, 그 책이 필요한 조직에 직접 연락드리고, 찾아가서 책을 소개하고, 우리의 사업을 소개하는 과정도 직접 진행했다. 처음으로 해본 영업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진행하던 사업 최초로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주위에서 대표처럼 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조직의 미션과 사업에 너무나 동의하기에 그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대표의 역할은 창업자가 했다. 그때에는 '대표로 일하는 것'과 '대표처럼 일하는 것'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 조직을 퇴사할 때쯤에 그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 차이는 바로 성장 속도의 차이였다.
(* 대표와의 속도 차이이지, 스타트업에서의 성장 속도는 일반 기업과 비교한다면 엄청 빠른 속도일 것이다. 작은 조직에서 모든 일을 해보았던 경험은 HR 담당자로서 다른 직군의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대표는 대표로서, 다양한 자리에서 조직을 설명하고, 의견을 들으며 조직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간혹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사업계획을 소개하거나 발표하는 자리에서 질의응답을 하게 될 경우가 그렇다. 무언가 정해지지 않은 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질문이 들어올 때, 대표는 모른다고 대답하기보다는 순간적으로 결정하여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면 그 방향이 회사의 방향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표처럼' 일하는 사람들은 설명할 수 있지만, 방향을 결정할 수 없다. 방향은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대표와 다른 구성원들과 논의를 해야 한다. 별 차이 없는 것 같지만, 여기서 계속 차이가 벌어진다. 대표는 그런 '결정'의 순간들을 겪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며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그 '결정'을 직접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대표의 입장에서는 결국 회사가 잘못되었을 때의 책임은 본인이 모두 지는 것이기에 본인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하는 직원들도 그 책임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회사의 잘못된 결정은 결국 직원의 커리어도 꼬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 직원들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과 같다고 생각하는 대표 또는 조직이라면, 중요한 결정도 직원이 직접 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함께 받아들이고, 좋은 결과라면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좋지 않다면 개선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직원의 성장은 단순히 책을 읽고, 세미나에 참석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표처럼' 일하는 직원이 스스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1. 본인이 직접 결정하고 실행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실행에 따라 꾸준히 피드백 주고받고 개선해나가야 한다.
2. 본인이 전문가로 성장할 분야를 빠르게 선택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초기에는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기업과 비교하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조직이 조금씩 성장할수록 전문성이 필요해진다. 어쩔 수 없이 모든 분야를 커버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본인이 전문성을 가져갈 분야를 선택하고 꾸준히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본인을 위해서도, 조직을 위해서도 그렇다.
3. 만약 초기 팀원이 아니거나, 신입으로 스타트업에 입사했다면, 작은 단위부터 직접 결정하면서, 대표와 조직의 신뢰를 얻어 단계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를 한다는 것이다. 신뢰라는 것은 사실 한 순간에 쌓이지 않는다.
4. 만약 결정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더 나은 조직을 찾아서 떠난다. 사실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방법이다. 쉽게 퇴사할 수 있지만, 재취업이나 이직은 너무나 어렵고, 입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조직이 이전의 조직보다 너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조직에서 성장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빠르게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표 또는 조직은 '대표처럼' 일하는 직원의 성장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1. 직원들에게 직접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고, 결과로 피드백한다. 결정은 대표가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실무자에게 넘기면 실무자는 당연히 '지(?)가 결정해놓고 나한테 헛소리야!"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결정을 단순히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을 왜 하게 되었는지, 결정에 대한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는지 등을 "적절히"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적절히" 해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너무 안 해도, 너무 해도 효과가 없을 수 있다.)
2. 직원들이 외부 또는 내부에서 직접 발표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준다. 발표할 때는 단순한 내용 공유보다는 실제 솔루션을 내고, 함께 논의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단순히 회의에서 말하는 것과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를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회의에서의 이야기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 또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발표 자리를 만들면, 스스로 고민하고 더 준비하게 된다. 그 준비 시간을 구성원들이 힘들어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가벼운 것으로 진행하면서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3. 구성원들이 발표를 힘들어한다면 최소한 어떤 내용인지 공유하도록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외부 세미나를 통해 실제 적용 가능한 솔루션을 내는 것이지만, 단순한 외부 세미나에서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구성원들에게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이 다른 방향으로 고민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HR에 정답은 있다. 하지만 정답은 언제나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을 실제로 해낼 수 있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