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대표로서 느끼는 아파트 공동체 문화의 이상과 현실

by 최학희

I. 아파트 공동체 문화에 대한 이상
사단법인 시니어라이프에서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 참여하면서, 지역공동체와 특히 아파트공동체가 시니어라이프에 있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참여자들의 권유와 자극을 받아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로서 활동을 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사하면서 잠시 활동을 멈추었었다.
신규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하자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특히, 하자센터에 민원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대응하는 건설사직원들의 태도와 자세가 너무 갑스러웠고, 주민들은 모래알처럼 약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순간 화가 너무도 나 제대로 민원을 처리해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본사에 연락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외침이었을 뿐 하자에 대한 민원은 전혀 전달되지 않은듯 보였다. 마침, 입주자대표를 선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규아파트의 하자문제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TV에서 시사프로그램으로 나왔던, 건설사와 담합한 X맨과 OS맨 등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입주한 지 7-8년이 지난 곳이었기에, 하자소송에 참여했음에도 패소했었다. 바로 옆 동은 승소해서 보상도 받았지만, 우리 동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조기협상이 종결되었고, 하자에대한 비용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남아있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어떤 금전적.정신적 손실로 이어질지를 잘 알았기에, 귀찮음과 불편함이 있었지만, 신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로 나섰다.
입주자 대표로 나서면서, 3가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주민의 소리를 경청하고, 주민의 공동이익을 지켜내며, 행복한 지역공동체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메세지를 냈다. 주민이 소리를 듣겠다는 것은, 이전 아파트단지에서처럼 주민들의 민원내역을 상세히 살펴보겠다는 의미였다. 주민의 공동이익을 지켜내겠다는 것은 건설업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정당한 하자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의미였다. 행복한 지역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은, 시니어라이프의 중요한 축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그 속에서 주민들이 소통하는 실질적인 체계를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지난 경험을 통해 봤을때, 입주자대표로서의 활동이 아파트 입주자들의 개별적인 민원을 처리하고, 지역에 공공시설을 유치 등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만 그친 활동이 대부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지역주민간의 소통은 기껏해야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인사하기 정도가 현실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이사 온 곳에는 수영장이라는 공동시설이 있다. 작은 도서관도 초기부터 구축되어있고, 현실과는 괴리가 멀어보이는 작은 텃밭도 있다. 건설업체의 지지부진한 대응으로 이러한 시설들의 정상 운영하기까지는 먼 길이지만, 그래도 공동체문화를 만들어 낼 기반은 나름 갖추고 있었다.

II. 아파트 공동체문화에 대한 냉엄한 현실
앞에서 내세운 3가지 아파트 입주자 공약의 관점에서 그 차가운 현실을 끄집어 소개하고자 한다.

01. 주민의 소리에 귀기울여 듣기
신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가 되면서, 크고 작은 민원을 듣게 된다. 매 회의때마다 관리실의 기록을 통해 검토하는 민원들, 엘리베이터에 붙은 쪽지들, 아파트 홈페지에 게시된 글들, 문자와 전화로 전달되는 소리들... 그 민원들의 대부분의 문제제기의 근원은 하자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하자문제외에도 개별세대별로 느끼는 점들이 전달된다. 예를 들면, 'A동에 쪽문을 내어 노부모께서 편하게 외부로 드나시면 좋겠다.' 이런 민원에 대해서는 항상 반대 민원도 존재한다. '쪽문을 내면, 외부인의 출입이 늘것이고 그로 인해 담배연기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 또 다른 예로는, '태양광을 설치하면 좋겠다.' 이에 대해 '강풍이 세게 불면 위험할 수 있고, 외관상 보기 좋지 않을뿐더러, 실제적인 혜택도 미약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저녁에 옥상외등을 켜 놓았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 '전기세가 낭비된다.' 또 다른 민원은 '주차장에 개별차량을 최소 4대까지는 허용해야 하지않는가?' 이에 대해, '주차공간이 협소하니 원래대로 3대까지만 허용하자.' 등등... 모든 한 측의 민원은 또 다른 입장을 가진 거주민의 이익에 그대로 상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02. 공동의 이익을 대변하기
아파트 하자문제가 심각하니, 건설사에 제대로 호소하자는 의견이 제일 많다. 그러나, 입주 전부터 활동하는 사람들 사이에 불협요소가 존재한다. '왜 하자처리를 질질 끌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나?' 개별세대에 크고 작은 하자들부터 먼저 처리해 달라.' '하자들의 처리가 미흡하다.' '왜 제때 열어야 하는 수영장시설은 열지 않는가?' '왜 풋살장은 제대로 시공하지 않은채 방치하고 있는가?' 등등... 그러나, 정작 하자문제 처리에 가장 힘든 점은, 개별적인 주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하자문제를 처리하는 데는 여러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특히, 주민들의 비용이 지급되는 소송이나 진단 등은 민감한 부분이다. '여전히 누군가가 대신해서 처리하겠지?' '내가 신경 안 써도 되겠지?' '하자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처리되는 거겠지?' 등등의 의견이 있어 거리를 둔다. 무엇보다도, 입주자대표회의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건설사에 너무 강하게 의견을 제시해봤자 좋지않다.' '충분한 기간과 준비를 거쳐 하자에 대응하자.' 이에 대한 주민들의 목소리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 막상 현장에서는 이해관계가 부딪히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X맨들의 활동에 대한 불신도 무시못하는 것 또한 주민들의 목소리에 담겨있다.
하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명한 모니터링과 의견제시를 요청한, (소위) 하자분쟁대책위원회를 제안했다. 그런데, 초기 1주일 동안 신청자는 1-2명에 그쳤다. 주민들의 속 내를 들어보니,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방면으로 그 일은 투명한 모니터링과 지원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고, 궂은 일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하겠다고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거의 100여명에 달하는 입주민들이 신청한 것이다. 하나의 작은 시작에 기뻐하기 보다는 또 다른 과제들이 쌓여간다. '건설사와 그와 관련된 세력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그들의 주요 전략인,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지치게 하는 방식들'이 또 얼마나 지치게 하고 괴롭힐까? 공동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공약을 지키기위해, 헤쳐 넘어갈 부분이 너무 많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03. 행복한 공동체문화 만들기
신규 아파트에 마련된, '수영장, 작은 도서관, 텃밭'은 아직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건설사는 '주민들이 운영조직을 만들지 않았기때문이다'라는 핑게를 대지만, 현실은 '아직 운영을 위한 시설기반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만간 시설적인 운영적인 준비를 갖춰 갈 것으로 기대한다.
아파트입주자들은 1-20년이 지나도 서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안다고 하더라도 같이 식사하는 자리는 상상하기 어렵고, 목례정도인 관계에 그친다. 물론, 아파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시니어와 주부의 경우는 또래 친구들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처럼 아파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쉽지않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는 현실적으로 공동체문화를 만드는데 아주 좋은 기반을 갖추고 있다. 즉, 수영장이 그 첫번째 도구다. 사람들이 운동하며 함께 소통할 기회를 찾고, 그리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철학으로 운영하는가?'이다. 만약, 사회적기업이 참여해서 주민들이 자연스러운 소통을 돕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서관도 그렇고, 텃밭도 그렇다. 아직 현실에서는 작은도서관에 지원할 봉사자의 수도 적고, 텃밭은 기대보다는 '왜 만들어놨냐?'는 비난이 쇄도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 작은 단서들을 가지고 있음에 기대를 해 본다.
무엇보다도, 관리사무소 운영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가 지자체에는 마련되어있다. 우리 아파트의 경우는, 아직은 운영노하우 및 전문인력확보가 미흡하기에, 일단은 기존의 위탁운영방식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자체적인 운영에 대해 생각을 모아 가고 준비해 갈 것이다.

III. 입주자대표로 배운 아파트 공동체문화의 가능성과 출발점
이전의 아파트와 신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를 하면서 배운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01. 개인이익은 공동이익과 연결되어 있다.
02. 공동체 이익의 대변의 걸림돌은 외부와 내부에 동시에 존재한다. 모래알같은 입주민들이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서로 투명한 소통을 하고, 절차적인 합리성을 확보하며 한 걸음씩 내딛어야 한다.
03. 공동체 문화는 아주 작은 구체적인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개별주민들이 자신들의 시간자산을 내어 어울리는데 써야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런 만남이 시작되는 시설과 환경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인 주민자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세밀한 준비를 하나씩 갖추어가야 한다.

가끔 '괜히 이 일을 맡았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다른 일에 집중해야하는데,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나의 작은 행동이 나와 가족 나아가 우리의 이익을 투명하게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굳이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되는데, 건설사측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X맨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은 아직은 공동체의 신뢰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1,000세대를 조금 넘는 주민들간에도 각자의 관심과 이해가 달라 갈등이 종종 생겨난다.
나는 50+서부캠퍼스에서 진행되는 강좌인 '공동주택 입주자대표 도전하기' 등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입주자대표를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순진한 생각으로 봉사하겠다고 다가섰다가는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 속에 지치기 딱 좋은 자리가 입주자대표다. 아직까지는 개인적인 사익이 분명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자리일 수도 있다. 동시에, 공동체에 대한 문제를 주민들과 소통하며, 지역의 정보를 얻는 혜택이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헤쳐가야 할 일이 태산임을 알고 한 숨을 쉬게 된다. 개별세대의 민원들, 무엇보다 건설사와의 장기적인 하자분쟁... 이 산을 넘어서 이뤄내야 할 아파트 공동체 문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만들어낸다면,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들이 보다 투명한 환경 속에서 웃음짖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현실에 발을 내딪고, 함께 보조를 맞춰가면서, 보다 근원적인 공동체문화에 눈을 두고 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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