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성취한 시간적 자유를 채색.

시간적 자유에 대한 고민이 경제적 자유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by 호요일

고민 끝에 어렵게 세운 계획이 알고 보니 FIRE 족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립을 통해 이른 시기에 은퇴를 하려는 사람들)이라는 형태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평균 은퇴자금으로 10억~20억을 생각한다고 하니 사람들 생각이 역시 다 거기서 거긴가 싶다. 얼핏 보면 우리 커플이 FIRE 족처럼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반은 맞다. 경제적 자유는 필요하니까.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시간적 자유이다. 시간적 자유를 위해 최소한의 경제적 자유가 필요할 뿐이다.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 시간적 자유가 경제적 자유에 종속된 것처럼 보인다.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만 시간적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가 더 중요해 보인다.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중요한 일일까? 시간적 자유에 대한 고민은 경제적 자유를 성취한 다음에도 늦지 않을까?


시간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에 종속된다는 말을 시간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 위에서만 세워질 수 있다고 조금 바꿔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렇게 말을 바꾼 이유는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경제적 자유라는 토대를 마련하고 나면 선택지가 넓어진다. 이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어떤 선택을 하기 위해 경제적 자유를 성취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경제적 자유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팀 페리스의 <나는 하루 4시간만 일한다>에 나오는 비슷한 생각을 담은 내용을 가져왔다.

저자는 초기 작업에 들어간 시간이 여가로 돌려졌을 때 대신할 대안적 활동을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정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생산적이라는 느낌이 필요했고 다른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행복의 반대는 슬픔이 아닌 지루함이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비행기 사고나 화재가 아니다. 그것은 구제 불능의 지루함을 참을 만한 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적은 지루함이지 어떤 추상적 개념의 '실패'가 아니라는 사실.

스타트업에게 Exit 전략이 필요하듯 우리도 우리 자신의 해방 조건을 구체화시켜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적어도 우리 커플은 '경제적 자유, 시간적 자유 다 좋아. 근데, 그래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일 년에 한 달은 외국의 마을에서 살기라는 목표도 있지만 무엇을 하면서 일생을 보내고 싶은지, 삶을 채울지 고민해보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무기력해지면 삶의 질이 별반 차이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질문은 어찌 보면 '넌 하고 싶은 일이 뭐야?'라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하다. 대답하기 어렵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조차 시간 들여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모른다. 아니 고민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슬픈 일이긴 하지만 당연하기도 하다. 뭘 해봤어야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알지.


이 어려운 문제는 이선재 작가님의 책에서 그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 이 작가님이 추천하는 방법은 바로 '딴짓'. 사이드 프로젝트로도 많이 불리고 있는 행위다. 내가 모든 브랜드의 피자를 먹어보고 입맛에 맞는 피자를 찾은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선 다양한 일을 해봐야 한다. 마케팅, 기획, 개발 등 부서를 바꾼다든지 이직을 하는 스케일이 아니다. 딴짓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정도의 규모, 본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면 좋겠다. 성취한 시간적 자유를 채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딴짓을 해 삶의 의미를 찾고 내가 경험치를 쌓고 싶은 분야나 일을 탐색해 나가려고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딴짓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수익성이 아닐까 싶다. 딴짓은 비생산적인, 돈이 되기는커녕 돈을 쓰기만 하는 행위처럼 들린다. 애초에 '짓'이라는 접미사는 우리말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담는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키워드로 검색하여 게시글들을 보면 대부분 부수입 같은 수익에 관한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있다. 스타트업의 전 단계 같은 인상을 받았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부수입을 추구할 수 있고 이는 경제적 자유를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규모를 키워나가다 보면 본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럼에도 사이드 프로젝트보단 딴짓이라는 용어가 더 맘에 든다. 딴짓의 가벼움이 좋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지만 취미, 여가 활동과 그 동기 같은 시장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은 시장 논리에 한번 훼손되면 다시 회복될 수 없다 (이 생각은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시작 단계부터 수익을 내야 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어떤 아이디어나 활동을 수익창출과 연결 지어 검토하게 된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 생각과 검토 과정이 내가 주저하고 프로젝트를 아예 진행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에 충분하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해본다면 창업 확장 가능성이나 수입에 대한 생각도 덜어내야 비로소 내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 보일 것이다.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딴짓의 본질에 가깝다.




'딴짓'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로 어떤 활동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장벽으로 작용할 만한 요소를 최대한 배재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본업에 치여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다. 딴짓할 여력조차도 없다. 게으름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어 유튜브 시청 같은 수동적인 활동만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딴짓을 시작하는데 핑계로 작용할 수 있는, 주저하게 만들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블로그를 시작하고 싶다 하면 어느 블로그 플랫폼이 좋을까 알아보는 과정조차 생략하고 일단 시작한다. 포털사이트 블로그니 웹호스팅이니 알아보다가 글 하나도 안 쓴다. 잠시 타올랐던 열정을 식히는데 몇 번의 주저면 충분하다. 선택이 고민되는 일은 고민하지 말고 하나를 선택해서 해보고 나중에 다른 걸 하면 된다. 고민 단계 자체를 제거하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할 수 있다.


둘째로 딴짓을 할 때 구체적인 형태의 결과물을 목표로 해야 한다.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말이다. 어떤 활동을 하든 구체적인 목표가 분명해야 동력이 생긴다. 유튜브 채널 '책그림'에서 든 예시를 빌려오면 단순히 음악 공부를 하겠다는 다짐보단 음악 공부를 통해 3곡을 작곡하겠다는 결과물 형태의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결과물 형태의 목표 없이 ~알아보기, ~공부하기를 주간 계획에 적고 실천한 적이 있었는데 한 주간 뭔가 하는 척만 했지 알아보고 공부한 내용을 써먹을 데가 어디에도 없었던 일이 잦았다. 결정적으로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와야 내가 그동안 뭘 했는지, 이 활동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생각해보기 좋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그만둘지 판단하기 쉽다.




적극적으로 딴짓을 해 경제적, 시간적 자유가 생겼을 때의 삶에 색을 입혀보자. 이런 활동은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다. 딴짓이라는 실험을 통해 '나'에 대해 연구해보자. 연구 결과는 내 인생이 무미건조해지지 않도록 색칠하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딴짓을 통해 채색한 미래의 시간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애쓸 현재의 나에게 순도 높은 연료가 될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참고자료들.

팀 페리스, 『나는 하루 4시간만 일한다』, 최원형, 윤동준 옮김, 다른상상 (2017)

이선재, 『딱 여섯 시까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팩토리나인 (2019)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 (2012)

책그림, 좋아하는 일을 찾는 법, https://www.youtube.com/watch?v=Zl2eHeh1R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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