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부자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앞을 가로막은 것은 회사를 다니면서 일 년에 한 달 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큰 장벽이 나타났다. 하지만 까페라는 캐주얼한 공간 덕에 우리의 사고가 말랑말랑해진 상태여서일까. 어렵지 않게, 그럼 우리가 원할 때 회사를 그만둘 수 있게 해두자는 해결책을 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고민은 어떻게 회사를 그만 두고도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일 년에 한 달은 해외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하느냐였다. 최종 목표에서 출발해 감당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준까지 문제를 환원시켜 나갔다.
어느정도 돈이 있으면 회사를 그만두어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곧장 까페 카운터로 가 펜을 빌려왔다. 이미 10년이 지났지만 이과 출신으로서 고등 수학에서 배웠던 원리합계를 떠올려 보려고 펜을 잡았다. 그리고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해 거꾸로 계산해나갔다. 우리 커플은 매달 200~250만원이면 굶어죽을 걱정은 안하고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자 3%를 기준으로 10억 정도가 있다면 달성 가능한 수치였다. 이자는 은행 이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형태의 포트폴리오에서 내는 수익률을 의미하는 것이라 우리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 설정한 값이다. 그런데 필요한 순자산이 10억이라니.
이번엔 어느정도 각오를 했던 터라 10억이란 숫자에 압도 당하지 않고 계산을 이어갔다. 한달 저축액, 수익률, 기간. 세 재료로 조리를 시작했다. 연 수익률 4%로 10년만에 은퇴를 하고 싶다면? 한달에 667만원 가량 저축을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어라? 우리 둘 연봉으론 불가능했지만 생각보다 뜬구름 잡는 수치가 아니었다! 계산 결과에서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조금 양보해서 45세 이전에 은퇴하기로 하고 기간을 12년으로 늘렸다. 두근두근. 그 결과 한달 저축액이 534만원 정도로 줄었다. 두 사람의 예상 월 실수령액 합이 700만원 이상이라 승산이 있어 보였다. 아니 이미 10억을 모아 은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반에는 700만원보다 적지만 12년 전체 평균을 생각해서 조금 높게 잡았고, 이 글이 전달하려는 내용은 실수령액 합이 500만원 대여도 상관없다).
신난 우리 둘은 기세를 몰아 200만원으로 한달을 살 수 있는지 검토해보았다. 양가 부모님께 드릴 용돈 20만원씩 40만원, 핸드폰 요금,교통비,공과금 등 50만원을 제하고 전세 대출금이 80만원이라고 하면 우리의 한달 용돈은 둘이 합쳐 고작 30만원이었다. 식비나 집에 필요한 사소한 물건들을 사는 것도 포함해서 30만원인 것이다. 빠듯하다. 아니 생활이 안 될 것 같다. 물론 더 풍족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용돈을 늘릴 수 있다. 다만 그러려면 전세 대출금을 줄여야 한다. 더 작고, 연식이 더 오래되고, 입지가 더 안좋은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직 결혼 전이라 각 지출에 대해 가정한 금액이 적을 수 있다. 단지 그 날의 느낌을 그대로 남기고 싶어 대화 때 오간 수치도 바꾸지 않았다.)
이 날 우리는 매달 저축액을 500만원 수준으로 줄여 생활비에 여유를 두기로 결정했다. 너무 가혹하면 10년이 넘는 긴 기간을 못 버틸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생활비 영역은 체감법칙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 생활비가 너무 적어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반면,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되고 나면 잉여 생활비는 사치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 삶의 질을 올리긴 하겠지만 그 효과는 감소한다. 그래서 우리는 넉넉하진 않지만 가혹하지도 않는 선을 정해보려고 했다. 초반 1~2년을 지내보면 가능할지 아닐지 감이 올 것이고 이 때 다시 조정하는 기간을 갖기로 하고.
그렇게 우리 커플의 첫 미래 계획은 까페 로고가 새겨진 넵킨 위에 세워졌다.
우리는 만 4년이 다 되어가는 커플. 이제는 집값이나 엄청난 돈을 거머쥔 부자 이야기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에 대한 정의가 분명해졌고 우리가 그린 삶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본 계산의 결과나 수치는 예시일 뿐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계산을 하는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해보고 달성을 위한 지도를 그려보는 일. 이것들이 우리의 불안을 해소해주고 자신있게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P.S. 불안이 길어지고 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걱정거리의 막연하고 모호한 속성 탓이다. 불안감을 구체화시켜 보면 의외로 감당할만한 수준의 문제일 수 있다. 이렇게 살아가면 된다는 길은 제시할 수 없다.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사고 과정이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