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정도면 부자라고 하자

미래 계획 첫걸음, 목표를 설정하다.

by 호요일

우리는 만 4년이 다 되어가는 커플이다. 삼십대 초반이지만 이제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이기도 하다. 여느 때처럼 강남역 인근 까페에 나란히 앉아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둘의 회사 위치를 고려해 결혼 후 집을 구하게 된다면 어디가 좋을지, 그 지역 집값은 얼만지 알아보았다. 적어도 우리에겐 비현실적이기만 한 금액에 그대로 압도 당했다. 그리고 우리 커플에게 자연스레 떠오른 의문.

"우리...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자라온 환경은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빚 때문에 고생한 적도 없다. 군인이셨던 아버지 월급으로 4인 가족이 생활하느라 생활비가 빠듯했다고 어머니께서는 종종 말씀하신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까지 네 살 터울의 누나와 같은 방, 이층 침대를 쓴 정도의 생활이었다. 별다른 불만은 없었고 그 땐 오히려 가족끼리 작은 집에서 사는게 화목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옷을 비롯해 크게 사치를 부리는 일도 딱히 없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여자친구도 살아온 환경이 비슷한 것 같다. 사고와 씀씀이를 보면 그렇다.


재테크에는 내가 먼저 관심을 가졌다. 20대 초반까지만해도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5만원권으로 책상에 아무렇게나 쌓아둘 정도로 재테크의 문외한이었다. 어느순간부터 최소한의 관리는 필요하겠다 싶어 책도 읽고 강의도 들어보며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익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돈에 대한 철학이 싹 튼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주식을 시작하길 권유했다. 위험 회피 성향이 강했던 여자친구는 시작을 어려워 했다. 하지만 익히 들은 소위 잘 나가는 회사들 위주로, 미국 주식을 통해 생태계에 입문하게 됐고 지금은 나보다 더 관심이 많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 커플은 위의 질문과 맞닥뜨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제로베이스인 지금부터 회사를 다니고 월급 일부를 저축한다. 저축한 돈을 투자해 굴린다. 과연 이런 메커니즘으로 서울에 있는 집을 살 수 있을까? 굴리는 돈의 크기가 정해져 있다보니 수익률이 굉장히 좋아야 할 것이다. 전업 투자자가 아닌 나는 솔직히 물가상승률 따라잡기도 벅차다. 내 투자 실적이 이야기 해준다. 그렇다고 투자에 전념하자니 근로소득이 없어 내 개인 재무구조가 굉장히 부실해진다. 잘 살 수 있을까. 답답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우리가 추구하는게 서울에 집을 사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승리 같아 쓴웃음이 났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로 뭐가 부자인지 궁금해졌다. 부자가 뭐길래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거더라?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우리는 부자란 무엇인가부터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부자란 뭘까? 얼마나 재산이 많아야 부자인걸까? 친숙한 단어지만 의외로 부자를 정의하기란 어려웠다. 백만장자란 말이 있으니 10억이 있으면 부자인가. 아니면 100억은 있어야 할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너무 다를 것이다. 10억이 있으면 100억 가진 사람들이 보이고, 100억이 있으면 1조를 가진 사람이 보이겠지. 액수로 선을 긋기는 어려웠다. 먹고 싶은거 먹고 사고 싶은걸 살 수 있는 수준은 어떨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 정의 역시 애매했다. 수중에 돈이 많을수록 사고 싶은 물건 또한 계속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취미 생활만 봐도 장비 욕심은 끝이 없다. 돈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그 다음 경치가 보이고 사고 싶은 걸 고민 없이 사는 수준은 사실상 없을 것만 같다.


정량적인 기준을 세워도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구체적인 수준을 정할 수 없었다. 여러가지 정의들을 떠올리며 고민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만의 소박한 정의를 세우기로 했다. 부자의 기준을 커스터마이징 한 것이다. 정의를 세우는데 근간을 이룬 것은 언젠가 서로 이야기 나눈 적 있는 생활방식이었다. 일 년에 한 달은 외국의 도시에서 사는 (여행과는 다르다), 그런 생활이다. 이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정했다.


이 정의가 담고 있는 내용을 넓게 표현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삶이다. 외국에서 한달 살기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 일 뿐이다. 조금더 넓게 이야기하면 시간적 자유이다. 돈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돈을 벌고 싶으면 쓰고 싶은 것 이상 벌어야 한다. 상한도 하한도 없다. 하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돈을 번다면 훨씬 형편이 낫다. 생활비 수준의 돈만 확보되면 시간을 자유롭게 쓸지 말지 '선택'이 가능해진다.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정도의 부자는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부자라는 단어를 쓰긴 했지만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미래 목표에 더 가깝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가 아닌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니 훨씬 마음이 가볍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을 미래의 우리를 상상하면 즐겁고 동기부여도 된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기에 이 목표와 생각들은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수정 과정이 우리 커플의 인생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간다.


"우리 어떻게 살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