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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Aug 13. 2024

(3) 34살 유방암, 회사에 알리다.

챌린지 1. 의료파업과 유방암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시오. 

"맙소사. 너무 유감이야. 어떡하니. 정말 유감이야.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 도와줄게. 회사는 걱정 마." 


내 소식을 들은 매니저의 반응이었다. 무덤덤하게 웃으며 소식을 전한 나, 그리고 오히려 절망적인 표정의 매니저. 평소의 날카롭고 단호한 모습과는 다르게 거의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매니저의 모습에 '나 정말 큰일인 건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나: 정말 괜찮아. 빨리 발견해서 진짜 행운이야. 일단 정확한 치료 일정은 한국에 돌아가서 진료받아야 알 것 같아. 스케줄 나오면 바로 공유할게. 아마 병가를 써야 할 거야.


난 정말 운이 좋다. 날 지지해 주는 매니저가 있고, 마침 이 순간 타지에서 일이 바쁘니 오히려 암은 잊고 일에 몰두할 수 있다. 그리고 언니가 짧은 휴가 겸 내 출장길에 동행해 주어 혼자 어두운 사색에 빠지지 않았다. 이틀 후 언니가 떠나면, 사흘 후엔 짝꿍이 날아와 내 출장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기로 했다. 게다가 호텔 체크인 때 말도 안 되는 실수와 엄청난 우연의 결합으로 주니어 스위트로 업그레이드까지 받았다. 앞으로 2주간 이렇게 황홀한 방에서 지낼 수 있다니. 마치 온 세상이 나에게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해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덤덤했던 나였지만 언니가 떠나고 두 번째 날에 잠시 현실에 부딪혔다. 미팅 중이었는데 계속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일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책을 읽으며 딴생각을 하려고 했는데 내 맘처럼 되지 않았다. 왠지 잠깐 울컥하기도 했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 오히려 이 병에 대해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방암 관련 서적을 주문해 짝꿍에게 오는 길에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짝꿍이 도착해 짐을 푸는 동안 책 한 권을 순식간에 읽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유방 전절제, 항암, 탈모, 흉터. 이 단어들이 날 괴롭혔다. 하지만 난 0기인데? 이때부터 인터넷을 엄청나게 찾아보기 시작했고, 블로그엔 0기이지만 유방 양 쪽을 전절제 한 사례부터 수술 전 선항암을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수술 후 몇 개월 만에 재발이 되어 다시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또 한 편에서는 0기는 암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어서, 굳이 수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체의학 비슷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정말 많이 울었다. 죽음이 두렵진 않았다. 유방암은 예후가 좋고, 생존율도 매우 좋다. 

바보같이 들리긴 하지만 나의 가슴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전절제 후 사진들, 머리카락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 여성으로서의 자존감 상실. 그리고 무엇보다 짝꿍과 가족들이 이걸 옆에서 지켜보게 될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엄두가 나지 않는 건,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말을 하지 말아 볼까? 수술이 끝나고 말을 할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오죽하면 매니저에게도 '이 암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엄마한테 말을 하는 거야.'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한 번 시원하게 울고 나선 나름 즐겁게 보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성격의 짝꿍이 옆에서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같이 있는 것 자체도 도움이 되었지만, 내가 지나친 걱정을 토로할 때마다 아예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 주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나: 내가 만약 머리가 다 빠지면 어떻게 해? 영화처럼 너도 머리를 같이 밀을 거야?

짝꿍: (진지하게) 오히려 밸런스를 맞추려면 난 머리를 길러야지. 안 그래?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집에 갈 시간. 그리고 내일모레 드디어 교수님을 만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나같이 '괜찮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이다. 찾아보면 나 같은 케이스는 인터넷에 후기를 남기지 않는 것 같다. 지금도 방사선을 다니며 마주치는 항암 진행 중인 환자분들을 보면 이토록 멀쩡한 내가 죄송스럽기도 하고 감히 이런 글을 올릴 자격이 있는지 싶다. 

하지만 나같이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을 받고도 수술이 잘 되었고, 천년만년 잘 살았대.라는 희망을 위해 용기 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수술 후에도 처음과 같이 0기로 최종 진단받았고, 림프 전이도 없어서 림프 5개만 검사 목적으로 절제했다. 항암은 당연히 하지 않고 방사선 치료만 16회 받기로 했다.

수술도 매우 잘 되었고, 아직은 회복 중이지만 매우 건강한 상태이다. 재발도 없고 앞으로 전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을 기회로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살 게 될 것이니, 난 지금 행복하다.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모든 의료진들의 공통된 조언은 (1) 인터넷 찾아보지 마세요. (2) 인터넷에서 좋다고 말하는 음식을 굳이 찾아먹지 마세요. 였다. 마늘이 그렇게 항암에 좋다면, 마늘로 만든 항암제가 진작에 발명되었을 것이다. 인터넷보다 내 의료진과 나 자신을 믿자. 저 사람이 저랬으니, 나도 저럴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자. 


인터넷 공간에서 함께 위로받고 공감하는 것은 매우 찬성이다. 나 또한 많이 위로받으니까. 하지만 과도한 불안은 갖지 말자. 수술 전까지 날 가장 많이 괴롭힌 것은 암이 아닌 불안이었다.


유방암 동지들, 모두 화이팅이다. 정말로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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