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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Jul 29. 2023

2023년 6월 발리 여행-2

인생 풀빌라를 만나다.

여름에 동남아 여행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날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023년 현재, 한국보다 습하고 더운 동남아 국가는 손에 꼽지 않을까. 그러나 6월의 발리는 건기로, 습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내리쬐는 해는 뜨거웠지만 그늘에 가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공항에서 사누르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 30분의 드라이브를 마치고 굽이 굽이 '이런 곳에 풀빌라가 있다고?' 싶을 곳에 들어가서 마주한 우리의 거처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입구에 마련된 손 씻는 세면대 (난 손 씻는 걸 좋아한다.)와, 탁 트인 가제보에서의 체크인, 우거진 열대 식물들.


까유마니스 사누르 (Kayumanis Sanur) 풀빌라 내부 전경

웰컴 드링크로 환대를 받으며 우리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무엇보다, 집 떠난 지 22시간 만에 도착한 안식처였다.


룸서비스나 기타 필요한 사항들을 그때그때 요청할 수 있도록 왓츠앱 아이디를 주고받고, 이부 (Ibu, 인도네시아어로 여성을 뜻한다고 한다)라는 귀여운 닉네임도 얻은 후 빌라로 가는 길. 체크인조차 완벽했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발리 여행 예정이라면, 우리나라의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인 왓츠앱을 미리 다운로드하여 가는 걸 추천한다. 호텔, 식당, 마사지샵 예약 등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왓츠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각 빌라들엔 발리 전통악기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는데, 우리의 빌라는 주블라(Jublag)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이곳은 천국이었다. 너무나 깨끗한 수영장, 완벽한 프라이버시, 환상적인 인테리어. 그 간 열심히 일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날들이 한 방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흥분을 잠시 접어두고, 오는 길에 찾아봤던 근처 와룽(Warung, 작은 식당을 뜻한다.)에 서둘러 가보기로 했다. 발리에 왔으니 첫 끼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어야지!

MD Warung, 하늘이 티 한 점 없이 맑았다.


메뉴에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일단 제로 콜라 한 잔과 맥주 한 병. 그리고 스페셜 나시고랭(50K IDR, 한화 약 4200원)과 치킨 미고랭(30K IDR)을 주문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음식인 나시고랭과 미고랭은 여러 가지 채소와 닭, 새우, 고기 등을 넣고 볶은 밥과 면이다. 첫 끼니인 만큼 낮은 난이도로 시작해 보자, 라며 익숙한 음식을 시켰는데 이게 웬 걸. 세상에!! 내가 태어나 먹어본 나시고랭, 미고랭 중 최고였다. 역시 현지의 맛인가?



*인도네시아의 화폐 단위는 크다. 그래서 보통 뒤에 K (1000)을 붙여 표기한다. 50K IDR(루피아)이면 50,000루피아. 10K가 한화로 845원 정도이다. 우린 편의상 10K 루피아=1000원으로 계산하며 다녔는데, 이렇게 계산하니 오히려 좋았던 점은, 나중에 카드명세서를 받았을 때 '어? 생각보다 적게 나왔네!'라고 기분 좋을 수 있었던 거.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밥과 면의 식감을 돋우기 위해 위에 뿌려진 바삭한 샬롯 튀김이 한몫을 단단히 했고, 적당한 간과 아삭하게 익혀진 채소까지. 한 입 맛보자마자 얼른 다른 메뉴도 더 시키자는 눈빛을 주고받은 후, 사누르 맛집에서 만든 인도 카레의 맛은 어떨까?라는 생각에 버터 치킨 마살라(60K IDR)를 주문했다. 이것 또한 완벽했던 선택. 자타공인 서울 인도/네팔 카레 맛집이라는 에베레스트보다 백 배, 아니 천 배 깊은 맛이었다. 카레에는 기름이 많이 쓰이니 조금 먹다 보면 금세 물리곤 하는데, MD 와룽의 카레는 그저 고소하고 중독적인 맛이었다. 위에 뿌려진 고수는 향을 더 풍부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상쾌한 맛까지 더해주었다.


그런데... 카레는 난을 찍어먹어야 제맛인데. 난을 좀 시킬까?라는 생각에 치즈난을 주문했더니, 어째 주문받는 직원분 표정이 묘하다. 내가 이해한 그의 표정은 '너희, 둘이 와서 메뉴를 세 개 시켜놓고선 난까지 추가를 하겠다고?'

먹방의 민족을 무시하지 말라고! 사진은 미고랭, 나시고랭 그리고 난이 빠진 버터 치킨 마살라. 동남아는 저렇게 알새우칩과 오이를 사이드로 주는 곳이 많다.


이렇게 잔뜩 먹고도 12,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니 감동의 눈물이다. 배가 부르니 이제 디저트를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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