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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Jul 19. 2023

[여행꿀팁] 영어에도 존댓말이 있다고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영어와 서양 문화를 미드로만 배운 나는, 영어란 존댓말이란 건 없으며, 서양인들은 모두 쿨하고 격식 따윈 차리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들인 줄만 알았다. 그랬던 내가 영어에도 존댓말이 있는 걸 언제 알았냐고? 바로 미국으로 출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호텔, 식당, 카페, 옷가게 등 직원들이 나에겐 덜 살가운 느낌이었다. 분명 인종차별은 아닌데... 대체 뭘까?라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바로 내 말투였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건 만국 공통이다. 주문할 때 "커피 한 잔!" 해도 물론 의미는 통하지만, "커피 한 잔 부탁 드립니다."라고 주문하면, 서로 기분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미국 버지니아 한 카페의 메뉴판. '부탁합니다'를 붙이면 2불 할인, '안녕하세요, 부탁합니다'를 붙이면 무려 3.25불 할인! 재미로 만든 메뉴라지만, 느끼는 점이 많다.

사실 영어야말로 극명하게 존댓말, 아니 공손한 표현이 존재하는 언어이다. 우리나라야 아직은 외국인의 인구수가 많지 않기에, 외국인들이 어눌한 반말로 이야기해도 웃으며 유연하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관광객도 많고,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미국은 다르다. 영어를 못하는 건 내 능력. 사람들은 봐주지 않는다. 그리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하루에 수백 명의 손님을 맞이하는데, 어떤 손님은 다짜고짜 "이봐. 이거, 사이즈 S!" (Hey. This, size S!)라고 말하고, 어떤 손님은 "안녕하세요, 이 셔츠 사이즈 S이 있는지 찾아봐줄 수 있나요?" (Hi, could you please take a look if you have size S of this shirt?)라고 묻는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특히 호텔이나 서버가 따로 있는 식당에서는 그 효과가 더 하다. 호텔에 체크인할 때 직원에게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 어떤가요? (Good morning, how are you?)"과 같은 심플하지만 공손한 인사나, "호텔이 정말 좋네요. 사실 두 번째 방문이에요. (I love your hotel! Actually, this is my second time here.)" 등과 같은 작은 이야깃거리를 건네보자. 그렇게 몇 마디 스몰 토크가 오가다 보면, 따로 애쓰지 않아도 작게는 슬리퍼 하나에서 크게는 룸 업그레이드, 무료 조식까지 따라온다. 그러나 그런 건 부수적인 것뿐이고, 현지인에게서 듣는 꿀팁 (특히 맛집!)이 쏟아지고, 나아가 가벼운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일단 재밌잖아!


특히 미국의 식당에서는, 서버는 서버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태도로 대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한국의 서버분들이 대부분 음식을 전달해 주시는 분들이라면, 미국의 서버분들은 이 식당에서 내가 맛있는 음식뿐 아니라 만족스러운 기억을 (이것이 곧 팁으로 이어지기에) 가지고 떠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나는 나이가 지긋하신 서버분들을 좋아하는데, 그분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엄청난 자긍심을 가지기에 뜬금없는 나의 질문들도 들떠서 답해주시고, 이것저것 더 맛보라고 가져다주기도 한다.


시애틀에 방문했을 때, 문어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혼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방문해 작은 문어 애피타이저와 리소토 하나를 주문했다. 서버분께 어떤 음료를 주문해야 할지에 대해 여쭤보다가, 나의 문어 사랑 이야기에서부터 넷플릭스의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서버분이 키우는 강아지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재밌던 대화를 마치고 음식이 나오던 때, 웬 걸. 작은 애피타이저 대신 대왕 문어 요리 등장! 그녀는 내게 윙크를 날리며 '맛있는 건 많이 먹어야지! 애피타이저로는 모자라다구. 우리 메인 요리 중에도 문어가 있어서 그걸로 바꿨는데 네 맘에 들길 바라. 물론 서비스야. (It's on the house.) 엔죠이!'라며 쿨하게 사라졌다.

나로서는 그저 즐거운 대화를 잠시 나눈 것뿐이었는데 이런 행운이. 이때쯤 알게 되었다. 지금이 아무리 21세기, AI가 지배하는 세상이라지만 특히 미국에선 인간적 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비슷한 얘기로, 미국 사람들은 마트의 자동계산대보다 캐셔가 있는 계산대를 선호한다. 캐셔와 잠시동안 나누는 그 인간적 상호 작용이 좋다나.


물론 어디에나 내 태도와는 별개로 불친절한 사람은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마음속 서운함을 인종차별로 오해해 여행을 기분 나쁘게 마무리하고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 불친절한 직원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은 간단하다. 팁을 적게 주거나, 그저 무시해 버린다. 그 직원과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매니저를 불러 이야기하면 된다. 영어를 못해도 괜찮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의 바르고 이성적인 선에서 요청하면 된다.


다음에 어느 나라든 여행을 가게 되면 따뜻한 인사를 먼저 건네보자. 이건 영어 실력과는 무관하다는 걸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 '뭐 어때? 영어는 내 모국어도 아니고, 난 한국말도 할 줄 아는 2개 국어자인걸!'과 같은 뻔뻔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분들은 '두 유 스픽 잉글리시?'라는 질문에 언제나 부끄러워하며 '어 리틀...' 이라던지, '노...'라고 대답하며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우린 의무교육으로 영어를 무려 6년 이상 배운 능력자라는 걸 잊지 말자. 외국인들은 내가 한국사람인 걸 알면, '오! 아이 캔 스픽 코리안! 안녕하세요! BTS! 불고기! 감사합니다!'를 외친다. 이런 자신감을 나눠갖자. 그 자신감으로 내 여행이 즐거워질 뿐 아니라, 어떤 소중한 인연이 시작될지 그리고 대왕 문어 요리가 등장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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