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떻게 다시 음악(클래식)을 듣게 되었나?

길고 긴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

by Hodo Lee


미국생활 나 홀로 이사의 동반자 유홀 트럭


내가 음악(을 듣는 생활)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 이유는 나의 거취가 불분명해지기 시작한 후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어느 한 집에서 머물러 사는 것이 아니고,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기 시작하면 음악을 영위하는 생활에는 고난이 닥쳐왔던 것이다.


IMG_1095.JPG 이건 미국-미국 내 이사지만 한국-미국으로 짐을 싸 들고 갈 때도 만만치는 않았다


나는 소박한 A/V 시스템과 HiFi 시스템을 한 조씩 가지고 있었다. A/V는 온쿄의 앰프와 캐나다산 5.1 채널 스피커 시스템이었다. 이걸 방에서 사용했고 거실에는 덴센의 DM-10이라는 앰프와 인켈의 CD플레이어, 그리고 JBL의 4312로 스테레오를 꾸몄다. 후에 소너스파베르의 콘체르티노 한 조를 추가하기도 했다. 2000년대를 전후해, 이 시스템들과 함께 나는 너무나 풍요로운 영상과 음향의 향연에 빠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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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 그 자체인 JBL의 4312를 비롯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음향기기들 이미 절반 이상 처분 되었다


헌데 어느 순간, 순식간에 CD, DVD라는 현물 매체의 종말이 다가왔다. 사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디스크 매체들이 죽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엔 마치 회광반조처럼 엄청나게 화려한 백조의 노래-스완 송-가 울려 퍼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음반 매체의 멸망 바로 직전에는 블루노트의 전집부터, 데카, 도이치 그라모폰의 전집을 비롯해 개별 연주자의 전집, 작곡가의 전집 등등 수많은 전집류의 음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사장된 SACD니 DVDA니 하는 포맷들도 흥했다 망하기를 반복했다. 호사가들이 말하던 구하기 어렵던 희귀반들도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심지어 리마스터링까지 마치고- 재발매되었고 그것들은 다시 기술의 발달이라는 파도를 타고 냅스터니 소리바다니 토렌트니 하는 통로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뻗어 나갔다.


처분을 시작할 시점의 내 CD들


아마도 그 시기부터, 나는 음악을 거의 듣지 못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내 컴퓨터에 내가 산 CD를 리핑한 데이터며 도저히 내 손으로는 살 수 없었던 전집류의 음악 데이터들이 쌓여갈 무렵 바로 그때. 어느 날 내 라이브러리를 보자니 필립스의 모차르트 전집과 텔덱(이었을 거예요 아마)의 바흐 전집 같은 것들이 그득그득 쌓여갔고 그 목록들을 보자니 도무지 음악을 들어서 소화시킬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었다.


샨도스의 박스셋, 도이치 그라모폰의 박스셋이 보이는군요


저런 질풍노도의 시기 이전,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타워 레코드 같은 음반점에 가서 데모로 걸려있는 음반들을 듣고 구입하거나, 네트워크 상에서 누군가가 추천하는 음반 같은 것을 어렵게 구하거나 해서 그 음반을 물고 뜯고 씹으면서 몇 주간 들으며 통째로 소화하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클릭 몇 번과 적은 돈을 지불해 얻게 되는 50장, 100장씩 되는 전집들이 나타나니 내가 음악을 들어온 방식으론 도저히 좇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치 한창 앨범들을 구입하던 시절 싱글 앨범을 보고 “하! 너무 싱글이라(?) 들어줄 기분도 안 나는걸!?” 하던 것의 안티테제랄까 뭐랄까 그 비스무리한 무엇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최신의 MP3기기나 컴퓨터로 꾸역꾸역(!) 음악을 듣긴 했지만 이미 이전 음반시대와는 다른 느낌이었고, 때마침 나는 장기간 미국으로 유학생활을 떠나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식구들도 집을 옮겨야 하는 시기가 맞아떨어졌고 나는 나의 이삿짐을 꾸려야만 했다. 드디어 모든 CD, DVD 그리고 LD들을 정말로 물리적으로 처리해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었다.


다... 다 잃을 순 없어! RIPPING작업에 들어간 CD들


IMG_6809.JPG 그리고 모두 중고 알라딘 샵으로 직행 ;_;


그전까지는 자주 듣는 곡들을 중심으로 리핑을 간간히 했지만 이제는 모든 음반들을 최상의 음질인 WAV나 FLAC으로 시간을 들여 리핑을 해야만 했다. 이게 말이 쉽지 꽤 고된 작업이다. 15분 주기로 CD를 바꿔주고 클릭 몇 번을 하는 반복 작업을 1천 몇 백 번 반곡해야 했다. 북클릿을 스캔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2014년 어느 날의 내 아이튠즈 스크린샷 | 7만여 곡 236일간 쉬지 않고 들어야 다 들을 수 있는 분량만큼 음반을 모았었다


결국 내가 모아 왔던 모든 CD를 리핑한 후 중고로 판매한 후, 우리나라를 떠나는 내 짐 속엔 이전까지 작업한 사진 파일들과 더불어 수 만곡의 음악 파일이 든 하드디스크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능히 짐작 가능한 것처럼, 정신없는 대학원과 타향살이가 시작되자 변변한 스피커도 없으니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좀처럼 내키지 않았다.


2017년경 드디어 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나는 당연히 집에서 구석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 방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채워져 있었고 거기엔 당연히 나란히 내 오디오들과 스피커들도 서 있었다. 물론 전원은 연결도 못하고 그냥 덩그마니. 음악을 감상한다니 그런 사치가 통용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음악 감상은 꿈도 꾸지 않았다.


돌이켜 보니 대충 이런 흐름에 따라 나는 점점 음악과 멀어지게 된 것 같다. 핸드폰에 음악 옮기는 작업도 귀찮고(iTunes라는 앱은 정말 골치 아프다고요.) 집에서 느긋이 큰 소리로 음악을 듣지도 못하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음악 듣기를 좋아하기는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음악과 멀어지게 되어 버렸다. 물론 그동안 컴퓨터가 물리적으로 고장 나면서 하드 속의 데이터들이 모조리 죽네 사네 하는 일도 여러 차례 겪으며 내 삶의 질은 후드득 깎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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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2025년 11월,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파일들을 정리하면서 듣는 것은 이제 너무나 피곤한 일이니 드디어 시대의 흐름에 편성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자는 것이었다.




PS

본래 hodohodo.com을 운영하던 2000년대 초반에도 이 [길고 긴 음악 이야기]는 아주 인기폭발(?!) 연재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음악 이야기를 하니 조금 신나서 글이 또 마구잡이로 길어지는군요!


어떤 호응이 올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음악 얘기는 앞으로 자주 나올 거예요.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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