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떻게 다시 음악(클래식)을 듣게 되었나? #2

길고 긴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

by Hodo Lee


그러던 어느 날 2025년 11월,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파일들을 정리하면서 듣는 것은 이제 너무나 피곤한 일이니 드디어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자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궁리해 보고 내린 최종결정 유튜브 뮤직


후보는 애플뮤직, 유튭뮤직 그리고 스포티파이. 결론만 말하자면 내게 가장 만만했던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튭뮤직을 선택하게 되었고 한 곡 한 곡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며 이제 좀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처럼 호사스러운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컴퓨터 게임을 위해 구입했던 작은 스피커와 이어폰을 사용해야 했지만, 그래도 음악이 내 삶에 돌아온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요즘 흔하게 얘기하는 책상 위의 PC-Fi
고성능은 아니지만 적당히 들을만한 모니터 스피커 Edifier M60 만족도는 90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컴퓨터로 구축된 오디오 시스템은 잠자리에서 음악을 듣기에는 영 불편했다. 본래 자면서 듣는 음악은 적당한 음반을 골라(혹은 플레이 리스트) 30분에서 1시간 정도 작은 볼륨으로 틀어 놓고 잠들면 알아서 오디오가 꺼지는 그런 노스탤직 하고 고즈넉한 맛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 컴퓨터 오디오(PC-Fi라고도 하는)는 그런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앱에서 플레이시간을 정하고, 컴퓨터의 절전기능등을 사용하면 그럭저럭 가능한 일이지만 음악이 내 침대가 아닌 책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컴퓨터와 하드가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새벽잠에는 역시 골치 아픈 방해꾼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약간 반쪽짜리 음악생활을 하던 중, 잠시 제주도 여행 일정이 잡혔다. 비슷한 시기에 제주를 방문하는 Y를 잠시 만나 촬영을 할 일도 생겼고 해서 겸사겸사 1주일 정도 제주방문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대망의 JBL GO 4를 사게 된 경위이자 클래식이 다시 나의 삶으로 오게 된 핵심 중간 사건인 것이다!


JBL 4312의 크기와 위용을 보시라! 오른편의 브라운관 TV도 추억이 새록새록 이군요


전에 언급했지만 나는 신성한(?) JBL의 4312를 사용했던 시기가 있다. 4312는 스튜디오 모니터라고 하기엔 개성이 있는 음색이지만 아무튼 무지막지한 크기의 유닛으로 ‘신난다’는 느낌의 소리를 들려줘 내 음악 취향에 딱 맞았다. 후에 실내악이나 소나타를 듣기 위해 소너스파베르의 콘체르티노를 구하긴 했지만. 음 아무튼 기분 좋았던 JBL이었기에, 나는 미니 블루투스 스피커로 JBL사의 제품을 구하기로 했다.


JBL의 다양한 블루투스 라인업 | 어째 쓰다 보니 글이 JBL 협찬 리뷰라도 되는 듯싶군요


JBL의 블루투스 라인업은 GO, CLIP, FLIP, CHARGE, PARTY BOX 순으로 출력이 높아지고 크기도 커지는데(여기까지 쓰고 보니 JBL의 약장수가 된 느낌이군요.) 모두 블루투스 지원의 핸드캐리용 스피커로 방수 사양의, 말 그대로 들고 다니면서 기분 좋게 음악을 듣자는 취지의 스피커다.


다른 제품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이 중에서 내가 고른 GO는 기본적으로 모노 유닛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듣는 스테레오 사운드를 구현하려면 같은 모델을 두 개 구입해서 페어링해 사용해야 한다. 때문에 스피커 가격이 기본 5만 9천 원이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12만 원가량 소비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럴 바엔 그냥 비싼 FLIP이나 CHARGE를 사서 모노 유닛으로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당연히 따라왔지만 모노 사운드를 철저히 싫어하는 나는 스테레오화에 사활을 걸고 Go4를 두 개 구입하게 되었다.


결과는 굉장했다!


내 머리맡 세팅 | 두 개의 JBL Go 4로 자면서 내 머리에서 들리는 스테레오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답니다


막귀인 나로서는 전혀 불평할 여지가 없이 포터블 짱짱 사운드를 만들어 주는 GO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스테레오 페어링도 너무나 쉬웠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켜고 끌 때 체신머리 없는 구동음이 난다는 정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내 침대 머리맡에 나란히 설치하여 잠자리에서 훌륭한 (각종 태블릿이나 노트북에서 나오는 소리 대비) 소리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겠다. 특히 저역부터 고역까지의 무난한 소리는 (물론 JBL스러운 양념은 들어갔지만) 작은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기에 옆방, 옆집에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도 풍성한 기본적인 소리를 즐길 수가 있다는 면에서 아주 좋았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이런 소리의 만족을 위해 제주 여행에도 GO 4를 한 개 들고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서 [노다메 칸타빌레]를 다시 읽으며 클래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행에서의 만족을 위해 스피커를 따로 챙긴 것은 이번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만큼 이 작은 JBL이 내주는 소리가 그동안(대략 10여 년간)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나를 고양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유튭뮤직까지 구독했겠다 이제 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음악을 마구 들어주겠어!”모드가 된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제주까지 외장 스피커를 들고 여행을 온 날 밤. 나는 랜덤으로 틀어 놓은 음악을 들으며 전자 만화책을 펼쳐 들었고, 때마침 내 눈에 띈 것은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만화였다.


이 만화는 앞으로 분명 자주 언급할 기회가 있음을 확신할 정도로 나에겐 교과서이자 지침서 같은 존재다. 만화의 핵심 주제인 “정면으로 자신이 하는 것을 마주 보지 않으면 진정으로 그것을 즐길 수 없다.”가 뼈를 시리게 할 정도로 절절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읽으면서 본인의 작업에 나태해지기는 스스로가 볼썽사나워 용납이 안될 지경이다. 물론 만화기에 코믹하고 과장된 면이 있지만 저 정면으로 마주하라는 테마는 뼈에 사무친다.


만화책 / 지휘자 장한나 / JBL Go4


그렇게 노다메 칸타빌레를 읽고 있자니, “오 맞아 클래식도 제대로 들은 지 오래됐구나?”하며 클래식 음악을 듣겠다고 찾은 것이 세자르 프랭크의 십자가위의 일곱 말씀이었다. 한데 그 곡을 찾는 와중에 어쩌다 장한나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지휘자의 얼굴을 한 장한나를 보자니 이렇게 전율이 일수가 없는 것이었다.


신동 첼리스트로 시작해서 이미 단단한 궤도에 오른 솔로이스트로서의 삶을 뒤로하고 음악의 최전선 지휘관인 지휘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차근차근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이야기는 슬쩍 전해 들은 바 있지만, 그녀가 지휘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토록 오르기 힘든 위치에 벌써(?) 당당하게 서서 자신의 색을 펼쳐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만화책의 내용과 내 감정이 뒤섞여 울컥한 감정이 치밀었다.


특히, 특히 지휘를 하는 도중과 지휘를 끝내고 짓는 그녀의 표정을 보려니 시각예술을 업으로 하는 나로선 그녀의 노력과 성취와 긴장, 카타르시스 같은 긴 여정을 절절하게 (내 멋대로 해석하며) 느낄 수밖에 없다. 그녀가 동양 여성으로서 서양인이 지천으로 널린 오케스트라를 자신 있게 이끄는 모습은 어찌나 감탄스럽던지!



그렇다. 클래식 음악은 그 시대의 헤비메탈 같은 위치라는 말도 있듯(출처 및 근원 불명입니다 :-) )이 음악이 가져오는 폭력적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메가톤급 정서의 고양감은 음악과 만화와 장한나 본인의 영상이 합쳐져 한 편의 교향곡이 되어 날 두들겼다. “아이고 그동안 너무 음악을 안 들었구나!”하는 장탄식이 나오도록.


자. 이것이 차이코프스키를 듣고 있는 요즘의 제가 된 과정이라는 두서없이 긴 얘기였습니다.


1. 한동안 이사를 자주 다니느라 음악을 못 들었다.

2. 이제 우리나라에 정착해 작은 스피커로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3. Y도 만나 볼 겸, 제주도에 놀러 가서 작은 스피커로 장한나의 지휘를 보았다.

4. 클래식이란 장르에 대해 다시 감탄하고 많이 찾아 듣게 되었다.


음 딱히 부드러운 연결고리가 없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인생이 그런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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