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000 Gadgetz

모으기 취미에 대하여

시계를 모으고 있습니다

by Hodo Lee


나에겐 매니악하다고 하기까지에는 좀 못 미치는 수집벽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무엇들을 수집했는가(했던가)를 헤아려 보니 대체로 만화책을 포함한 책과 음반 그리고 몇 가지 ‘기계’들이 주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생필품이 아닌 장난감(?) 위주의 컬렉션이다. 이번엔, 그중에서도 시계에 대한 이야기.


오른쪽 끝의 오메가만 오리지널이고 나머지는 모두 오마쥬(?) 컬렉션입니다



나는 보통의(?) 기계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디오며 비디오 같은 각종 기기류, 음반, 카메라(이건 좀 복잡한 얘기긴 하지만), 도서 그리고 문방구 등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것들을 품격 있게(!?) 꾸준히 체계적으로 모으는가? 하면 그렇진 않다. 덤벙대는 성격 탓에 사실 뭔가를 구한 후 방구석 어딘가 쳐 박아 두는 것이 다반사여서 컬렉션(도서 전집 같은)에서 이빨이 빠지는 경우도 있고, 아예 구입했다는 사실을 까먹고 다시 구입하여 중복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아! 나는 교과서적인 컬렉터는 절대 되지 못한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모든 물건들은 절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그냥 재미로- 모으자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되었고, 그런 방면으로 오랜 기간 조금씩 모으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손목시계다.


핸드폰이 모든 것을 처리해 주는 2025년에 웬 손목시계인가? 하면, 손목시계는 내가 착용하기에 가장 부담이 덜한 거의 유일한 장신구의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나는 겁이 많은 성격이라 피어싱이나 문신은 고개가 절레절레 돌아간다.


그렇게 말 그대로, 손목시계는 사실 시간을 알게 해주는 목적 보다 ‘장신구’에 가까운 물건이다. 그렇다 보니 모양도 다르고 만들어진 소재도 다른 수많은 디자인의 시계들이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며 이 세상을 뒤덮고 있고, 당연하게도 그 수많은 시계들 중 내 마음에 쏙 드는 것들 것 찾았을 때의 기쁨은 대단히 크다. 잘 맞는 예쁜 신발을 찾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면 날씬해 보이고 가볍고 따뜻한 외투를 찾아낸 것과 비슷한 느낌?


내가 시계를 구입하는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내 눈에 이쁘고 재밌으면 그것으로 합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모으는 시계의 취향은 중구난방이고 제대로(?)된 취미 콜렉터처럼 가치가 높은 시계를 골라 모으지도 않는다. 취향이 제멋대로인 것은 둘째 치더라도, 고부가가치의 시계(한 마디로 비싼 시계)는 능력이 도저히 닿지 못한다.


그래서 빠져들게 된 카테고리가 바로 오마주 시계들이다. 오마주 시계란 유명한 시계들의 디자인을 차용한 마이크로 브랜드들의 시계를 뜻한다.


NOMOS의 디자인을 오마주한 티셀의 정장시계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있다. 바로 오마주 시계와 모조품을 구분 짓는 포인트다.


시계사의 고유한 디자인들은 당연히 특허권으로 보호를 받지만, 그 기간이 영속적이지는 않다. 대체로 특허 출원일로부터 국가별로 상이하게 15-30년 안팎으로 보호가 되기 때문에,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나온 시계 디자인들의 특허는 거의 만료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눈에 익은 유명한 디자인들은 사실상 고가의 시계 브랜드들끼리도 비슷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을 정도인데, 대표적인 스포츠 시계인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계열과 오데마 피게의 로열오크 계열이 그러하다. 그리고 브레게 특유의 파랗게 구운 핸즈(시곗바늘)는 다른 클래식 디자인에서 자주 사용되며 이 외에도 엇비슷한 디자인 계통은 굉장히 많다.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한 티셀의 다이버 워치


수많은 모조품들이 나올 수 있는 밑바탕은 사실 이렇게 시계 디자인의 특허권이 만료되었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 짓는 기준은 너무나 세세한 곳에 적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모조품을 만드는 측에서는 100%가 아닌 99% 동일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것은 일부러 어디 한 부분의 카피를 건너뛴다던가 하는 식으로 최악의 처벌을 피하려는 수법이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럴듯한 이론이지만 신빙성 체크까지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보면 “진짜 롤렉스” “모조품 롤렉스” “오마주 롤렉스” 이렇게 세 형태로 구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나는 모조품 시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정품과 더불어(이건 가격이 문제니까!) 거의 눈길을 주지 않지만 대신 오마주 시계를 아주 좋아한다. 브랜드 정체성은 독립되어 있지만 오리지널의 클래식한 디자인을 사용하는 부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파네라이의 루미노를 흉내 낸 무명표(티셀) 오마주 시계 무브는 동일한 Unitas 6597이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롤렉스’의 오마주 시계인 ‘릴랙스’ 시계를 구입하려고 생각 중인데,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어린이 낙서 같은 롤렉스 로고에, 롤렉스에 취소선을 그어놓고 “who cares”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이 귀엽다. 이미 티셀이란 브랜드의 롤렉스 서브마리너 오마주를 가지고 있지만 이 정도면 다른 색상테마로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속일 수가 없다. 이렇게 내 오마주 시계들은 하나하나 늘어나고 있다.


시계 케이스만 바꿔 오데마 피게의 로열오크맛(?)을 볼 수 있는 카시오의 G열오크



최근 관심이 생긴 Atomi Shine의 롤렉스 오마주 "릴랙스" 가격은 30만 원대다



또 하나, 오마쥬 시계가 아니라 마이크로 브랜드라고 부르는 작은 기업들의 시계도 매력이 느껴지면 구매하는 편인데, 최근엔 UNDONE이라는 브랜드의 시계들을 구입했다. 다이빙 규격의 시계인데 호쿠사이의 그림을 차용해 온 디자인의 시계를 처음 보자마자 구입했다. 아직 그 품질은 장담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자신들의 콘셉트는 확실히 있는 브랜드라 계속 눈길이 간다.


보자마자 구입한 UNDONE의 호쿠사이 한정판


마지막(?)으로 관심이 가는 것은 저가 브랜드와 고가 브랜드의 퓨전 컬래버레이션 시계의 세계다. 마치 유니클로가 유명한 디자이너들과 합작해 신상품을 내듯, 스와치 같은 브랜드에서 같은 계열사의 사치품 시계 브랜드와 합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메가와 스와치의 문S왔치 스누피 에디션


얼마 전 스와치가 오메가의 문워치(달에 갈 때 차고 갔다는 오메가의 그 시계)를 오마주 해서 태양계 행성들을 모티브로 만든 시계가 대히트를 쳤다. 한정판도 아닌데 처음 몇 개월은 프리미엄이 붙어 리셀(되팔이)되기도 할 정도였다. 그 외에 또 스와치는 블랑팡의 다이버 시계를 모티브로 오대양 컬렉션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것은 기계식으로 제작되었다. 평생 손목에 얹어볼 기회도 없을 고가 메이커의 디자인이 콜라보로 나왔는데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는 것은, 구입했다는 이야기죠.


블랑팡의 50 Fathoms를 오마주한 스와치의 오토매틱 시계


솔직히 요즘은 건강상의 이유로 스마트워치를 거의 매일 차고 다니는데, 그래도 별 일이 없으면 가능한 이쁜 시계들을 주로 차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로, 눈치 좀 보다가 다음 달쯤에는 꼭 “릴랙스”를 구입하겠습니다. 와. 진짜 이쁘다구요. 이 디자인은.





PS | 릴랙스 구입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PayPal로만 계산을 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전 안되더라고요. 하이고매 돈 아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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