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tzlar 산책

라이카와 칼자이즈의 도시 베츨라어 산책

by Hodo Lee
M8 커버지만 내용물은 M9인 수리용 프로토타잎


2009년 11월, 라이카의 M9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라이카 본사가 직접 들어와 있는 직영 시스템이 아니라 공급자만 있는 디스트리뷰터 시스템으로 라이카의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카 카메라를 수리할 수 있는 업체 또한 개인 사업자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실제 독일 라이카도 복잡한 그룹관계(라이카 마이크로 시스템, 지오 시스템, 카메라, 수리 등등 각각 독립된 법인으로 운영되는)를 가지고 있어 어떤 일은 라이카 카메라 측에서 가능하고 어떤 일은 라이카의 다른 회사 쪽에서만 가능한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라이카의 검은색 로고는 라이카 카메라가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지 않아 해당 로고의 독점권을 가진 다른 라이카(아마 마이크로 시스템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에 위탁생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놀랐던 일이라던가...


M8.2에 붙어있는 저 검정 로고는 따로 구하기가 힘들죠


어쨌건 회사의 복잡한 구성은 뒤로하고, 당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인 라이카 카메라의 수리가 가능했던 수리점의 대표님과 함께 나는 독일의 작은 시골마을 베츨러(베츨라어)를 방문하게 되었다. 내 영어실력은 동시통역을 할 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카메라라는 기기(그리고 특히 라이카 M시스템)를 잘 알고 있어 새로 나온 M9의 메인터넌스와 전체수리 과정을 그럭저럭 통역할 수 있었기에 한 팀으로 수리교육 세션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독일스럽게(?) 하얗기만 한 화장실에서 왜 나는 셀카를 찍었나?!


한 메이커의 애용자로서 그 메이커의 본사와 생산공장, 수리센터를 방문하는 것은 두근두근한 일이 분명한데 거기에 통역이란 일까지 덧붙어 있으니 세근네근한 심정이었다. 게다가 한 권 들고 간 읽은 책이 일본인 러시아어 통역가인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였으니 전체적인 느낌이 꼭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특히 시차 때문에 새벽녘에 일어나 내가 지금 밟고 서있는 대륙의 다른 한켠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상하게 얘기하는 책을 읽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진한 공감의 공기를 느끼게 되었다.


호텔 방의 창문, 읽고 있던 책을 모델로 사진을 찍었다


잠 못 이루는 새벽의 베츨라


자, 아무튼 라이카 이야기. 라이카 본사에서의 일들은 대부분 기밀사항이니(이제 10년도 더 지난 일이었으니 기밀사항이란 부분 정도는 말해도 되겠죠) 슬그머니 넘어간다고 치고, 아무튼 최첨단 카메라의 설계, 생산 그리고 정비과정을 종합 선물세트로 맛본 것은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특히 나는 정비에 특화된 교육 참가자였으니 전 세계에서 온 온갖 고장난 라이카 카메라들을 직접 수리하는 그들을 보며 왜 라이카의 수리가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로 한 수리공이 하루에 두 건에서 세 건의 수리만을 하는 것을 보니 속이 터져나가는 지경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세상에서 시간의 흐름이 가장 빠른 도시인 서울태생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91102_L3092533.jpg
20091104_L3092949.jpg
20091103_L3092674.jpg
20091105_L3093047.jpg
20091103_L3092668.jpg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에게 좀 더 심리적 여유가 있었다면 아주 뻔뻔하게(?) 라이카에 대한 궁금한 점이나 속사정을 하나하나 다 캐물어 보았을 테지만, 그 시절의 나는 일단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했기 때문에 납작 엎드린 로우 프로파일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음. 아쉽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공장 견학 수필집처럼 많은 이야기를 취재해서 쓸 수 있었다면 훨씬 흥미로웠을 것이다.


20091105_L3093056.jpg
20091105_L3093043.jpg
20091102_L3092543.jpg
20091103_L3092731.jpg
20091102_L3092463.jpg


하지만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안개 낀 산골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며 독일인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사진을 찍은 그 열흘 정도의 시간은 꽤 기억에 남았다.라는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음. 가지고 있던 라이카 카메라를 정리하고 나면 꼭 이렇게 라이카 생각이 난단 말이죠.



새벽의 베츨라 거리 | 저분은 어쩐 일로 산책(?)을 하고 계시는 걸까?


20091103_L3092570.jpg 새벽의 블루아워는 아름다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