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사진강의 노트 #2

“그대는 그대의 사진을 수정하지 말아야 하며..."라고 누가 그랬어요?

by Hodo Lee

3분 사진강의 노트 #xy



오늘날 사진은 찍은 그대로의 현실만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수정도 가해지면 안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TV 버라이어티 쇼가 아무런 각본이나 편집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감동을 전해준다고 믿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가끔 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대전제가 조금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 이유를 구전되어 내려오는 몇몇 사진에 대한 인용구나 사상들이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국의 사진가이자 교육가인 데이브 요라스 [Dave Yorath]가 쓴 사진의 유혹 [A Crash Course in Photography]의 내용 중 1930년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그 파트에는 “그대는 그대의 사진을 수정하지 말아야 하며, 그대의 피사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 이것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한 말인지 아니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인용구인지는 모른다. (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어구 중 이 말을 본 기억이 없다.)


"그대는 그대의 사진을 수정하지 말아야 하며" | Wet Chemical Darkroom 시대의 프린트 지시서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 필름 암실 시절에 만들어진 사진들 역시 최종 인화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정은 늘 이루어졌다.


이것이 실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둘째 문제로 치고라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사고를 전달코자 하는 말들은 어떤 부류의 사진가들에게는 21세기 지금까지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나 나는 저 말이 미치는 영향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수정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가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고, 피사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의 의미도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주 단호하지만 막상 자세히 들여다 볼 때 해석이 모호한 말들은 자칫 창작의 족쇄가 되기 쉽다.


"...그대의 피사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 Horst P. Horst의 스튜디오 디렉팅 모습


누가, 어째서 어떤 이유로 말했건 “그대는 그대의 사진을 수정하지 말아야 하며, 그대의 피사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앞뒤 맥락 없이 그대로 가져다, "무보정 리사이즈만이 진정한 사진이다."로 이해하면 곤란한 것이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사진에 대한 강렬한 정의를 주장하여 사진만의 위상을 부여하는 것에 일조했다. 그는 사진이 사진으로서 정체성과 당위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회화주의적인 접근보다는 사진이 갖는 사진만의 매체적 특성을 부각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사진 분리파(Photo secession)라는 계보를 만들었다. 이 분파는 'straight'가 사진의 나아갈 바-라는 사상을 얘기한다.


Alfred Stieglitz | The Steerage, 1907

그러나 여기에서, 스티글리츠가 제시한 그런 사진 분리파에 대한 개념이 “사진은 무조건 이러이러해야 하다.”는 식으로, 왜곡되기 쉬운 진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어볼 법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글의 서두에서 말했듯 어떤 사진가들의 경우 “그대는 그대의 사진을 수정하지 말아야 하며, 그대의 피사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라는 인용구나, 사진 분리파의 주장을 마구 뒤섞어 사진에 대한 어떤 딱딱한 금제를 스스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가 스티글리츠의 분리파 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명은 늘 어떠한 명제에 대해(회화주의가 메이저이긴 했던가는 둘째 치고)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그다음 합의점을 찾아 새로운 영역으로 나가는 길을 걸어왔으며, 여기에서 스티글리츠가 “야! 사진은 사진으로서 이래야 한다고!”라고 일갈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해석의 제시였으므로 그 의의는 아주 중요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진이란 매체는 회화주의를 차용해 와서 사용해도, 아니면 시세셔니스트처럼 사용해도 상관이 없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사용했는가 하는 의도뿐이다.


Alfred Stieglitz Spotting Portrait of Dorothy Norman, (with Marin Paintings and Stieglitz in Background) An American Place, New York 이 긴 제목의 사진에서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사진에 생긴 화이트스팟을 수정하고 있다. 그가 제창한 것은 개념이지, 어떤 종류의 딱딱한 금기 같은것은 결코 아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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