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컷의 개념, 그런 거 없어요

3분 사진강의 노트 #9

by Hodo Lee


B컷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원고로 선택되지 않은(못한) 사진'이다. 원고란 의뢰인이 사용하고자 주문하고 선택한 사진 혹은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업물로서 세상에 보이기로 선택한 사진을 말한다. 의뢰인이 있을 때엔 상업적 경우라 정의할 수 있으며 이런 경우 원고와 원고가 되지 못한 사진들의 관계는 명료하다. 다만 작가 개인의 작업으로 생각할 때엔 (물론 이것을 비상업적이라 할 수는 없으나) 조금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광고 혹은 기사의 자료사진 등의 상업적 경우, 최종 의뢰인이 추구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여기엔 자본과 인력과 시간 같은 사진(혹은 그림, 글 등의 원고) 이외의 가치들이 쏟아부어진다. 때문에 목적을 위한 가장 효과적 원고가 선택되고 그것이 다른 가치들과 섞이고 재련되어 최종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이 경우 선택되지 못한 원고를 B컷이라 할 수 있는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런 B컷들은 '목적'대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아니, 오히려 목적을 위해서라면 절대로 보여선 안 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니콜 키드먼이 화사하게 웃고 있는 샤넬 광고는 그것으로 끝이자 완성이다. 약간 눈을 감았거나, 조명이 잘못되었거나 해서 후반 작업에 들어가지도 못한 B컷들 혹은 후반 작업 최후에서 탈락한 B컷들은 이 세상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스튜디오가 그런 B컷들을 아무런 구체적 목적 없이 혹은 그들 스튜디오의 이익을 위해 공개하는 경우 그것은 프로답지 않은 계약위반이 되며 그 행위에 따른 큰 책임을 법정에서 지게 된다. 그런 일들을, 세련된 업계 종사자들은 원치 않는다.


작가 개인 작업들의 경우는 조금 미묘하다. 기본적으로 작가에겐 의뢰인이 없다. 때문에 외부 요건들이 작용할 요소는 상업적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굳이 따지자면 출판사나 갤러리 등의 요소가 개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들의 경우도 결국 자신의 작품을 정식으로 세상에 내보일 때, 그것들이 가장 효율적(다른 단어를 찾기 힘들군요)으로 보이기를 원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최선의 것들을 고르게 된다. 이 선택의 과정에서 안타깝게 선정되지 못한 사진들이 B컷이 된다. B컷들은 갤러리에 걸리지 못하고 책에 실리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짚어볼 것이 있다. 상업적이든 작품적인 측면에서든, 선택되지 못한 B컷들은 왜 선택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엔 정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핵심은 'A컷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목적에 부합하지 못해서'로 귀결된다.


때문에 B컷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진들은 필연적으로 소위 말하는 선택된 A컷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누군가가 "이건 B컷."이라며 어떤 사진(혹은 글, 혹은 그 무엇)을 보여주는 것은, A컷을 함께 보여주지 않을때 정말로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가 되어 버린다. "나는 작가로서(혹은 고용인으로서) 이렇게 A컷과 B컷을 고르고 나눴는데 당신이 느끼기엔 어떻습니까?"라는 형태가 성립되지 않는 B컷만을 보여주는 행위에 남는 것은 "그렇다면 A컷은 뭡니까?"라는 씁쓸한 질문뿐인 것이다.


아카데믹 포트폴리오 리뷰에 자신의 작업들을 가져가 심사를 보는 사람들과 얘기할 때, "이것은 B컷들입니다. 사실 집에 더 좋은 사진들이 있어요."라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선별된 A컷만을 가져가든 아니면 자신이 구분해 내기 힘든 B컷까지 가져가든 아무튼 작가 스스로 생각하는 최선의 것들을 모두 그러모아 가져가며,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발전시킬 것인지를 물어본다. 그것이 리뷰고 크리틱이다. 아니 하다못해 입시에 넣는 포트폴리오도 자신이 최선으로 고르고 고른 원고들이 된다. 그 끝에 "이것들은 그냥 B컷들이에요."라고 써넣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빠르고 간편한 미디어인 네트워킹을 통해 어떤 것을 사람들에게 보였을 때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여지는 사진이 A컷 즉 Priority work가 된다. B컷은 A컷과 함께 서 있지 않을 때, 무조건 A컷이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직감의 구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