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 포토그래피의 죽음

3분 사진강의 노트 #10

by Hodo Lee
191124_IMG_5129_street_photography.jpg 촬영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촬영이 불법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것은 범죄라는 이 경고 포스터는, 사진 매체에 대한 현재(2018년)의 인식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약 20년 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사진 찍히는 것에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그렇다고 20여 년 전 사람들이 사진 찍히는 것에 환호를 보냈는가 하면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요즘에 비해 조금 덜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이다. 그것은 그 시대가 자신이 사진 찍히는 의미에 대해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써도 괜찮았었기 때문이다.




바로 위의 예 처럼 성범죄라는 명확한 사회윤리로 규정할 수 없는, 스트릿 포토그래피의 정의와 목적 그리고 권리의 해석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가를 묻는 사건이 하나 있다.
법정 공방을 불러일으킨 Philip-Lorca diCorcia의 Street Photography


사진가 Philip-Lorca diCorcia는 뉴욕시티에서 불특정 다수의 초상을 Street Photography 접근법으로 촬영하였다. (기술적으로는 조명을 설치하여 작업했다) 이 사진은 개인이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권리와 찍히지 않을 권리에 대한(더 나아가서는 경제 문제가 끼어들게 되지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년 전은 디지털카메라 상용화의 물꼬가 터진 시기다. 그보다 10년 전, 그 이전까지 사진 시장을 이루고 있던 중심 기술은 필름 이었다. 그 시기, 필름을 기반으로 하는 사진은 전문가의 상업 영역과 소수의 열성적인 취미가들 그리고 어쩌다 가족행사 같은 특별한 행사에 간간히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사진 촬영 후 현상소에 필름을 맡기고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 사진을 찾는 프로세스의 장벽이 보통 사람들에겐 꽤 높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찍는 순간, 그 장면이 잘 나왔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신할 수 없는 그 능력이 사진을 찍는 기술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기술이 있거나, 기술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사진을 볼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때문에 결과물에 대한 예측과 제어가 가능한 사람들은 그 기술을 바탕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취미가들의 경우도 꽤 많은 학습과 경험을 거치고 나서야 사진을 안정적(?)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전문가든 취미가든 이들의 사진 활동에는 카메라 구입에 필요한 비용을 포함해 끊임없이 필름값과 현상-인화비용이 그리고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이렇게 90년대 까지 필름 베이스 사진에는 현실적 장벽들이 존재 했다. 때문에 길거리나 식당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것은 결코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것을 조금 바꿔 말하자면, 이런 장벽들이 있음에도 길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모종의 권위 비슷한 것을 부여했다. 귀찮음(?)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길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기자나 학생 혹은 그럴만한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 것이다.




사진술 외의 측면을 보자.


과거엔 찍힌 사진이 지금처럼 발달한 사회관계망 네트워킹 서비스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실제로 VT기반의 네트워킹 서비스가 사진과 소리라는 미디어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95년 전후의 일인데, 이 시기에는 통신망의 속도가 지금처럼 빠르지 못했고 WWW기반의 서비스들 또한 겨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이 시기까지는 디지털카메라가 확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을 디지털 데이터화 하는 데에는 스캐닝이라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드는 단계를 하나 더 거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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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몇 십분, 필름 현상과 스캔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 장의 사진을 웹에 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아직 무르익지 않은 기술들 때문에 게시판에 한 장의 사진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으며 이 번잡스러움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혹은 병적으로) 이미지를 나누지는 않았다.(혹은 못했다)


이런 상태가 극적으로 변한 것은 불과 5년 정도 후인 1999년-2000년대의 일이다. 이 시기에 약 200만 화소를 전후로 하는 디지털카메라들이 대중적인 시장을 열기 시작했다. 또한 1999년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ADSL을 시작으로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하고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4-5년간 SK의 넷츠고, 삼성 SDS의 유니텔 등 몇몇 기업들은 통신 서비스 시장에 대한 테스트를 거쳤으며 그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고 맛보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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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중후반, 고속통신과 인터넷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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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년경 새 시대를 열어제낀(?) 컨슈머 디지털 카메라들


2000년 바야흐로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데이터)들이 초고속으로 셰어링 되기 시작했고, 이때 스트릿 포토그래피는 곧바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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