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사진강의 노트 #8
사진을 예술의 한 장르로 이해하기 어려운 함정은, 수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 사진이란 매체가 기술 그 자체이며 그 기술은 수천 년간 쌓여온 인간의 이해 체계를 아득히 뛰어넘도록 뜨겁고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회화에 빗대어 사진을 이해하려다 보면 빠지게 되는 실수는 사진이 '찍는 행위'로 완성된다고 단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오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사진이란 기술이 그 이전 수천 년간 인류가 만들어 오던 다른 예술 창작물을 만드는 것과는 아주 다르게 '도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시작된다. 요컨대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은 완성된다. 손으로 사진과 같은 구상화를 그리는 하이퍼리얼리즘 그림은 그러나 사진이 아니다.
하지만 사진에 있어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들은 매우 하찮은(주된 것이 아닌) 일일 뿐이다.
사진이란 미디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예술가가 인지해야 하는 부분은 사진술 자체가 아닌 사진이란 매체의 특징이다. 사진은 렌즈를 통해 만들어진 상을 '여차저차' 하는 방법으로 2차원 매체 위에 재현시킨다. 거기에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렌즈를 통해 보이는'것이란 공통된 의미가 녹아든다. 우연이건, 의도되었건 사진이란 형태는 렌즈라는 도구를 통과한 현상이 또 다른 2차원 매체 위에 나타나는 것이다. 거기에서 모두가 납득하는 공통분모가 만들어진다. 그 한 지점이 핵심이다. (포토그램은 좀 딴 얘기가 된다)
그 지점을 딛고(심지어 딛지 않거나, 다른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딛는다고 치고) 그다음으로 작가는 그것을 재련하여 보여준다.
통나무 안에 부처가 들어 있다면 끌과 망치로 그 부처를 꺼내야 하듯, 사진이란 매체를 이용하려는 작가는 자신이 보고있고 다른 이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을 자신의 모든것을 동원해 완성시키고 보여준다.
왜냐하면, 예술은 직감의 구체화이기 때문이다.
그 구체화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회화, 조소, 연주, 행위 등등 등등. 혹은 시처럼 이미 체계화된 방식에서 벗어남으로써 직감 전달의 효과(효율)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구체화된 작품들 중 몇몇은 인간의 공통적인 지각과 직감 그리고 공명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어 명작이란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공통 미감을 꿰뚫는 형태는 결코 작가가 그것을 목표로 할 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작가가 오직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그 조건은 자연히 만족된다. 남들이 그것을 칭송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 고민은 작가를 피폐하게 만든다. 모든 것의 평가가 운일뿐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모순되어 보이는 경계선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야말로 사람으로서 파멸적이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요령이라 생각한다.
내가 하는 것은 대단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며 나의 모든 것이자 또한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