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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준비생 Jul 13. 2023

최종 데뷔조에서 탈락하셨습니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
네 맘을 훔칠 사람 나야 나 나야 나


속세의 것들과는 될 수 있는 한 모두 끊어내야 하는 것이 수험생활이거늘 정말 참기 힘들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프로듀스 101’이었다. 아마 그 당시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다 미쳐있지 않았을까.


하필 시험 전 날이 마지막 회였는데 궁금한 마음을 억누르고 참아내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예고편조차 보지 않고 모든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는 스포극혐러이기 때문에 어쩌다 들어간 포털사이트나 SNS에서 결과라도 보게 될까 봐 어떠한 것도 보지 않았다.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마지막 회를 시청했던 기억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주아주 선명하다.





프로그램의 룰은 아주 간단하다. 101명의 연습생들이 국민프로듀서인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매주 순위를 받게 되고 최종 마지막 회에 11위 안에 들어야 데뷔가 가능하게 된다.


연습생 신분인 데다가 아이돌이라는 특정 직업을 목표로 모였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아주 낮은 편이었다. 최연소가 2003년생이었으니 온 국민이 태극기 흔들던 월드컵 시절에 눈도 못 뜬 아이가 나와서 내 마음을 훔치겠다 춤추고 노래를 한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어린 친구들이 나와서 매주 대중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속된 말로 정말 빡세 보였다. 아니 먹을 만큼 먹은 성인이라도 힘들 일이었다. 말 한마디 한 순간의 표정은 박제되어서 확대되고 확산되고 재단되었다. 이런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는 날이 온다면 이는 바로 순위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악플을 달지도 투표를 하지도 않는 완전한 방관자 스타일의 애청자였는데 솔직히 속으로 욕을 한 적은 있었다. 사람들 생각 다 거기서 거기라고 내 눈밖에 난 연습생은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오르내렸는데 순위발표식에서 그 연습생이 손을 벌벌 떨면서 마이크조차 반듯하게 잡지 못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는 훅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 혼자 생각만 한 거라지만 몹쓸 짓을 한 것 같았다.


온라인에서 이리저리 조리돌림 당하는 것도 모자라 방송에서는 한 주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를 싫어하게 됐는지 수치로 쐐기를 박아주었고 한 사람의 추락은 한 사람의 기회로 순위가 왔다 갔다 하였다. 정말이지 무서운 경쟁구도였다.





나는 애초에 경쟁이랑은 거리가 먼 성향의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성취해 내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어렵게 얻어낸 성취는 나에게도 달겠지만 일단 나는 치열할 자신이 없다. 살면서 나의 포지션은 항상 어중 띈 것이었는데 당연하게도 그런 사람에게는 어중간한 결과가 따라온다. 한 때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조금씩만 덜 열심히 살기를 시작하는 거다.


  당신은 오늘 공부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을 넘겼으므로 이 시간부로 공부를 금지합니다.

  스펙의 평균치를 채우셨으니 더 이상의 스펙은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공부 금지를 위해서 소등을 하니 화장실에서 달빛으로 공부하던 민사고 학생을 떠올리면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는 어렵겠다.


내가 준비하는 공시는 앉을 수 있는 의자의 수가 정해져 있는 시험이었다. 공부는 나와의 싸움이라고 남 의식하지 않고 내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합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채용인원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반대어인 합격 혹은 불합격만 존재하는 시험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매 순간 간절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합격자들의 노력에 비해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 또한 맞는 사실이다.





내가 수험생활 시기에 이 프로그램에 더욱 심취하게 된 이유는 이런 동질감 때문 아니었을까. 낮은 순위를 받고 무기력하게 앉아서 다음 무대 준비에 집중 못하는 연습생을 보고 있자면 꼭 나를 거울에 비춘 모습 같았다. 순위가 높은 연습생을 부러워하고 떨어진 순위 걱정에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기도 하고. 그래도 준비해야 하는 무대 때문에 꾸역꾸역 다시 애써 힘을 내보고. 나도 그랬다. 그랬기 때문에 다윗 같은 연습생을 간절히 응원해보기도 했고 탈락자를 보고 아주 찐하게 감정이입해보기도 하였다.





탈락이란 결과에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우는 연습생들을 보고 심사위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탈락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나는 9급 공무원 데뷔조에 들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시험 준비를 하던 당시에는 내 인생의 돌파구가 공무원 합격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었다. 시험이 거듭될수록 시야는 더욱 좁아지고 편협한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탈락은 뼈저리게 슬픈 일이지만 내 인생이 최종 탈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데뷔의 문턱에서 좌절한 친구들도 합격의 문턱에서 좌절한 나도 언젠가 세상에 짜잔 등장해서 반짝이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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