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가 재개봉하여 보러다녀왔다. 극장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은 악령에 씌인 아이가 브릿지 자세로 계단을 걸어내려오는 이미지 아니면 엑소시즘을 펼치는 신부가 더 무섭다는 것 뿐이었는데. 나이 먹고 다시보니 오묘한 슬픔이 느껴진다. 사춘기 딸을 둔 이혼녀의 불안과 공포. 하버드 출신 의사이지만 신의 부름에 따라 살아왔으나 제 어미의 임종도 보지 못한 가난한 신부. 나는 그가 게이라고 추측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신밖에 없으나 그에 대한 믿음도 시들어가는 와중. 악령은 가장 순수한 아이의 몸에 스며들어 그들을 괴롭힌다. 신부역을 맡은 제이슨 밀러의 얼굴이 너무 인상적이라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퓰리처 상을 받은 극작가이자 연극연출가였다. 택시 드라이버의 캐스팅 제안을 받았으나 다른 작품에 출연하느라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로버트 드니로와 닮은 부분이 있다. 악령의 존재가 무섭다기보다 주인공들의 삶이 슬프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일 것이다. 어쨋든 좋은 영화에는 설명하기 힘든 에너지가 있다. 나온지 몇 십년 된 영화를 뒷북치며 좋아하여 창피한 마음. 하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지. 그리고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