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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무호두 Jan 07. 2021

(서평) 소설 눈먼 암살자

마가렛 애트우드의 소설

마가렛 애트우드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레이스(Alias Grace)때문이었다. 

1900년대 초반 살인죄를 범한 하녀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마가렛 애트우드의 소설이 원작이다. 

나는 그 드라마에 빠져들었고, 원작자가 캐나다의 여성 작가 마가렛 애트우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우리나라로 치면 박경리 작가님에 버금가는 국민 작가로, 여성의 시선과 서사에 천착해온 작가다. 


그녀의 소설이 또 드라마화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녀 이야기(Handmaids tail)이다. 시녀 이야기는 sf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환경오염과 방사능 유출로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진 미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미국을 점령한다. 그들은 가임기의 여자들을 납치한다. 그리고 쿠데타의 주역들인 사령관의 집에 들어가게 하여, 그들의 아이를 임신하게 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씨받이라고나 할까. 잡혀온 여자들은 동성애자이거나, 바람을 피우는 등 기독교에서 금지하는 짓을 저지른 여자들이다. 그들은 사령관의 부인이 입회한 방에서 합법적인(?)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고 그 아이는 빼앗긴다. 주인공은 오브 프레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가 잡혀와 아이를 낳는 시녀가 되어버리는 여자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모스. 이 드라마는 2017년 에미상에서 웬만한 상들은 거의 휩쓸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애트우드는 2019년 증언들이라는 시녀 이야기의 시퀄 격인 소설을 출간하여 맨 부커 상을 받았다. 


위의 소설과 드라마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그녀의 다른 소설들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것이 눈먼 암살자다. 



눈먼 암살자는 1930년대 후반 한 여자가 차를 몰고 가다가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신문 기사로 시작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아이리스의 동생인 로라다. 로라가 죽을 당시 젊었던 아이리스는 이제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되어 그 시절을 회고하는 회고록을 쓴다. 그리고 로라가 죽기 전에 남긴 소설 눈먼 암살자. 아이리스의 회고록과 소설 속의 소설 눈먼 암살자, 그리고 아이리스와 로라의 삶을 건조한 필체로 작성한 신문 기사가 교차되면서 로라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소설은 천천히 파헤쳐나간다. 


로라는 왜 차를 몰고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을까? 소설 눈먼 암살자는 그녀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리고 왜 늙은 아이리스는 그들의 부모, 그리고 로라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다지도 집요하게 묘사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역 신문에 난 기사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가문이 몰락하면서 지역의 신흥 부호인 리처드에게 아이리스가 18살의 나이로 시집을 가게 되면서 급 발전하게 된다. 리처드는 아이리스의 아버지를 속여 사업을 되살려 준다는 핑계로 아이리스와 결혼하고, 아이리스 집안의 대저택까지 차지하게 된다. 게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졸지에 고아가 된 두 소녀는 마흔에 가까운 남자와 한 집에 살게 된다. 그의 누이 위니 프리드와 함께. 


처음에 읽을 때는 이 것들은 모두 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소설 눈먼 암살자 속의 남녀는 허름한 호텔방에서 눈먼 암살자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어느 먼 행성의 나라. 아이들을 눈을 멀게 하여 암살자로 키우는 문화가 있는 나라. 그곳은 또한 소녀를 신전의 공물로 바치는 곳이다. 반항하지 못하게 혀를 자른 소녀가 죽음을 기다리는 신전. 그것에 눈먼 소년이 침입하여 그녀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소년은 소녀를 죽이지 않고 성 밖으로 도망을 친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남자. 그리고 그것을 들으며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여자. 여자는 그들이 도망을 쳐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 불과한 것일까? 여자는 항상 시간에 쫓기고, 남자는 돈이 없다. 


이 눈먼 암살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설 속 남자와 여자는 과연 누구일까? 아이리스는 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회고록을 쓰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까지 다 읽게 되면 작가가 짜 놓은 시간과 공간의 그물에 제대로 걸려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1930년대 캐나다. 스페인 내전과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물들은 무엇을 잃게 되고 무엇을 얻었는가. 

전쟁이 남긴 상흔을 한 인간의 삶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추적하여 우리에게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전쟁에서 몇 백만이 죽었는지를 알게 되어도 우리는 그것을 실감할 수 없다. 하지만 한 인간이 전쟁과 탐욕을 통해서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공감할 수 있다. 

마가렛 애트우드는 이 소설로 1985년 맨 부커 상을 받았다. 맨 부커상은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받게 되어 한동안 떠들썩했던 유서 깊은 문학상이다. 


눈먼 암살자 

사키 얼- 논의 몰락


그녀는 밤중에 갑자기 잠에서 깬다. 심장이 마구 뛰고 있다. 침대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창가로 가서 창틀을 높이 올리고 몸을 굽혀 밖을 내다본다. 오래된 상처 때문에 거미줄 같은 흔적이 있는, 보름달에 가깝게 차오르는 달이 떠 있고, 그 아래로는 가로등이 하늘을 향해 부드럽게 발하는 약한 주황색 불빛이 보인다. 그 밑에는 그림자로 얼룩이 지고 가지들은 단단하고 두꺼운 그물처럼 펼쳐져 있고, 하얀 나방 같은 꽃들이 희미하게 깜박인다. 


한 남자가 올려다보고 있다. 짙은 눈썹, 움푹 팬 눈두덩이, 검고 갸름한 얼굴을 가로지르는 하얀 사선 같은 미소가 보인다. 세모꼴로 파인 목선 아래는 창백하게 보인다. 셔츠다. 그는 손을 올려 손짓을 한다. 그녀가 자신과 합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창문 밖으로 나와 나무를 타고 내려오기를. 그렇지만 그녀는 두렵다. 추락할까 봐 두렵다. 


이제 그는 창턱 바깥쪽에 있다. 이제 그는 방안에 있다. 밤나무 꽃이 너울거리며 타오른다. 그 하얀빛으로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회색 띤 얼굴, 엷은 색조, 사진처럼 이차원적인 모습. 그러나 얼룩이 져 있다. 타는 베이컨 냄새가 난다. 그는 그녀를 보고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해 그녀를 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마치 그녀는 그녀 자신의 그림자고, 그는 그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다. 그 그림자가 볼 수 있다면 그녀의 눈이 있을 바로 그곳을 그는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그를 만지고 싶지만 주저한다. 그녀가 그를 감싸 안는다면 분명 그는 희미해져 버릴 것이다. 이내 헝겊 조각으로, 연기로, 분자로, 원자로 분해되어 버릴 것이다. 그녀의 손은 그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버릴 것이다. 


돌아오겠다고 했잖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뭐가 잘못된 거죠?

모르고 있어?


눈먼 암살자 속 한 단락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락.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슬픈 대목이었다. 


이 소설은 처음에 읽을 때는 작가가 짜 놓은 직물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꼭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그녀는 현실과 환상, 그리고 왜곡되고 지워진 진실과 거짓. 우리가 눈뜨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생의 편린들에 대해서 아름다운 언어로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어투로 말한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고 있어 다행이다. 그녀가 아직 살아계셔서 다행이다. 오래오래 사셔서 또 다른 책들을 출간하시길 바란다. 그전에 이미 그녀가 쓴 수많은 저작들을 읽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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