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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무호두 Mar 23. 2023

영화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

어제 저녁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파벨만스(The fabelmans)를 봤다.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세계적 거장이자 천재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것 밖에 없었다. 그가 영화를 좋아하게 되고, 영화를 찍는 것에 미치게 되었던 어린 시절의 기록이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예전에 동시녹음이 안되는 필름 카메라 중에 아리플렉스s2라는 기종이 있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 봤던 쇳덩어리였다. 필름을 로딩하고 버튼을 누르면 촤르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뷰파인더로 찍히는 피사체를 보지만, 잘 찍히는 것인지는 찍는 사람도 모른다. 필름을 현상해봐야 어떻게 찍혔는지 안다. 나는 그 촤르르륵하는 소리가 좋았다. 슛! 레디! 액션. 감독을 맡았던 선배가 액션을 외치고 나면 녹음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촤르르륵 소리를 들으며 숨을 죽이곤 했었다. 노출을 잘못 맞추면 노랗게 노광이 되어서 비싼 필름을 다 버리기도 하였다. 파벨만스에는 바로 이 카메라가 나온다. 볼렉스, 아리플렉스, 그리고 필름을 잘라주는 편집기인 스틴백까지. 어두운 곳에서 필름을 돌려서 영사를 해주는 영사기까지. 이 모든 것이 내가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만져봤던 것들이다. 나는 그 때 거의 영화에 미쳐있었는데, 사실은 영화라기 보다는 쇳덩어리가 주는 차갑고 두터운 질감을 좋아했던 것 같다. 무겁기도 엄청 무거웠던 그 때의 카메라들. 스틴백 편집기, 잘린 채로 옆에 쌓여가는 필름들. 그 때의 광경이 아직도 떠오른다.

 파벨만스에는 그리웠던 추억의 쇳덩이들이 나온다. 나를 가슴뛰게 했던 그 쇳덩이들. 하지만 어느샌가 꿈이 직업이 되고, 직업에서 많은 일을 겪다보니 바람빠진 풍선처럼 힘들어졌다. 그러나 스필버그 할배는 따뜻하고 노스탤지어가 넘치는 질감의 영화들로 나에게 다시 바람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 비싼  카메라를  생일 선물로 받았던 주인공의 삶이 부러워지려는 찰라에, 마음이 짠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영화 만이 포착했던 비극적인 순간. 그런데 그것을 비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증거고, 누군가에게는 비극이겠지. 가족이 모두 같이 캠핑을 간 일상적인 홈비디오 영상 안에 어머니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한 숨길 수 없는 손짓과 표정을 포착하는 주인공 새미.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찍기 전에 각본을 여동생들에게 모두 보내서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폐기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그 시절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가감없이 전하려고 했고, 그가 일생동안 품고 있던 것을 이제 노년에 가까워지는 지금 내놓았다. 99년부터 이 이야기를 찍고 싶어했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이 가장 적당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도 모두 이해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지금에서야 그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연민을 내보인다. 어머니를 연기한 미셸 윌리암스의 연기는 압권이다. 그녀가 불안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순간, 가슴이 턱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역의 폴 다노, 그리고  베니 아저씨 역할에는 세스 로건이 나온다. 세스 로건이 멋있어 보이는 몇 안되는 영화이다.


파벨만스에는 두 가지의 세계가 있다. 과학과 기술로 대변되는 아버지의 세계, 예술과 몽상으로 가득찬 어머니의 세계. GE의 천재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꿈을 접은 어머니. 주인공 새미는 그 둘의 세계에서 갈등하고, 어머니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은 순간에 그는 새로운 세계로 발돋움을 하게 된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총합이기도 하고, 그것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슴에 품고 있던 가장 아픈 기억을 영화로 아름답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이름. 그가 나온다. 그가 촬영장에서 요구한 것은 치토스를 충분히 갖다 놓아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누구인지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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