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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기동 일인가구 Nov 12. 2018

정확히는 휘경동

 필명으로 '회기동 일인가구'라는 이름을 예전부터 쓰고는 있지만, 정확히는 회기동 바로 옆 휘경동 일인가구가 된지 꽤 지났다. 올해 3월 중순에 이쪽으로 이사를 했고, 회기동 안에서만 6년간 세 곳의 집을 전전했던 난, 회기동이 곧 서울살이 그 자체였던 난 처음으로 행정구역 상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 봤다. 그래봐야 떠났다고 하기도 우스운 바로 옆 동네지만.  



당시엔 강남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이참에 회기동을 아예 떠나 볼까 생각도 있었는데, 다른 지역들의 비싼 월세값에 차마 그렇게는 못했다. 오래 살던 이 동네가 그냥 편한 것도 한몫했다. 자주 느끼지만 내가 낯섦에 관대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젠 학교 쪽에 가깝게 살 필요가 없으니 역과 가까운 집을 찾으려 했고, 그게 지금의 집이 되었다.  



회기역엔 출구가 두 개뿐이다. 너무나 익숙한 곳이라 오래도록 이상한 걸 느끼지 못했지만, 서울 전체를 뒤져봐도 출구가 두 개뿐인 역이 또 있을까 싶다.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나오면 오른쪽엔 2번 출구, 왼쪽엔 1번 출구가 있다. 그리고 회기동과 휘경동을 가르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왼쪽 1번 출구로 나오면 회기동이다. 스무 살부터 스물여섯까지 6년간 살던 동네이며, 뭣도 모르는 남들이 하는 말 안에서도, 내 개인적인 생각에서도 찬란한 젊음의 시간을 누리고 즐겼던 동네가 맞다. 학교가 있던 동네이며, 거길 중심으로 상권이 들어서 있다. 나름대로 오래 산 만큼 거리 곳곳에, 골목골목에, 별것 아닌 듯한 장소들에 내 시간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곳이다. 그만큼 정도 들었다. 대로변과 근처 골목엔 각종 식당, 카페, 술집, 프랜차이즈 들이 가득하며 바로 그 뒤엔 수많은 원룸촌들이 있는, 전형적인 대학가다. 물론 강남대로로 대변되는 통상적인 서울의 느낌은 결코 아니고, 따지고 보면 무난한 중소도시보다 못할지도 모르는 작은 동네지만 나름대로 아주 살만하고, 새삼 놀라게 하는 의외의 공간들, 숨겨진 장소들이 많았던 곳이다.  



오른쪽 2번 출구로 나오면 휘경동이다. 회기역을 그렇게 드나들면서도 2번 출구를 써 본 것도 처음이었다. 한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내가 알던 건 절반뿐. 이쪽은 정말 조용하고 차분하기만 한 동네다. 학교가 중심을 이루는 반대쪽 출구의 회기동과 달리, 중심상권을 이루는 건 대형 병원인 삼육종합병원이다. 대학교와 종합병원, 이 둘이 벌써 양쪽의 온도차를 상징한다. 회기동보다 뭐가 더 없는 건 당연하거니와, 양쪽 동네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연령대의 차이 때문인지 반대쪽과 비교하면 활기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식당과 카페가 없다시피 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큰 마트나 괜찮은 편의점, 세탁소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부족한 건 불편하다. 역이 가까운 것 외에는 좋을 게 별로 없다. 잠만 잘 집이라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어쩌다 보니 퇴사를 하게 되고 동네에서 보낼 시간이 의도치 않게 많아지다 보니 더욱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사실이다.  



맘에 들든 어쨌든 이쪽에서 산 것도 반년이 넘어가다 보니, 그래도 나름대로 익숙해지고 있다. 밤에 늘 시끄럽던 소리가 없어진 건 사실 고민의 여지없이 좋은 일이고, 세탁소가 멀긴 하지만 이젠 걸어갈만한 것 같다. 홍콩반점 프랜차이즈 짬뽕이나 집 근처 중국집 짬뽕이나 맛은 괜찮았고, 대학가 깔끔한 백반집보다 이 근처 허름한 백반집이 양은 많다. 얼굴 벌건 아저씨들이 많은 갈빗집, 순댓국집, 이름도 없이 간판에 광어 두 마리에 얼마라고 적혀있는 횟집 등이 이 동네의 표상이다. 젊음의 활기가 없는 유령도시 같은 거리들이 아쉽긴 하다만, 나도 이제 그렇게 새파랗게 젊은 나이는 아닌지라. 그리고 의외의 공간들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의외'의 공간 아니겠나.  



돌아오는 3월까지는 이곳에서 살게 될 텐데, 다음은 어디로 가게 될지. 이번엔 무슨동 일인가구가 될지 모르겠다. 이젠 대학가에 살 이유가 없고 나도 역시 어울리는 사람이 이제는 아닐 텐데 그쪽의 활기가 그리운 건 기억과 추억들 때문인지, 아쉬움 때문인지, 올라가는 나이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때문인지. 집과 동네는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런데 말이야. 사람은 그것만으로 사는 게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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