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들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각자의 생각들을 '수필'이라는 장르의 문학으로 풀어내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붓 가는 대로, 펜 가는 대로 쓰면 되는 것이 수필이라 누군가가 쉽게 말했건만, 그게 결코 그렇지마는 않다. 인문학 서적들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글도 아니요, 소설처럼 촘촘한 플롯이 있는 것도 아니요, 시처럼 극도로 정제된 문장과 표현이 있는 글도 아니다. 수필은 흔한 요샛말로 TMI와 적절한 소재 사이에서 늘 불안한 줄타기를 해야 하고,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한 사견일지, 여러 독자의 폐부를 관통할 수 있는 통찰이 될지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도 판단하기 어렵다. 지나친 자유로움과 특유의 무형식은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기 쉽도록 한다.
피천득 작가의 '인연'이 한국 수필문학의 정수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건 수필이라는 장르가 가져야 할 요소들을 이상적이라 할 만큼 멋지게 충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10년에 태어나 2007년에 고인이 되었다. 한 세기 이전 사람의 글이지만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유행일 것도 없는 수필은 지금에도 거부감이 없다. 문장들은 간혹 질투가 날 만큼 아름다우며, 간간이 등장하는 번득이는 통찰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큰 사고의 틀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들에서 지금의 시대정신, 감성과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 있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읽는다면 크게 불편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수필집은 소설처럼 연속적인 글도 아니라서, 그런 부분이 있다면 한 장 넘기면 될 일이다.
96년에 신판이 나온 이 오래된 수필집은, 크게 세 가지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챕터 '종달새'는 읽는 사람들이 이상적인 수필이란 이런 것들이구나 할 수 있는, 수필의 이데아 같은 글들이다. 대략 칠팔십 편 정도의 수필이 실려 있는 이 책에, 수필집이 으레 그렇듯 각각의 글의 무게가 일정하진 않다만 앞 챕터의 글들은 한두 편을 빼고는 모두 감탄할 수 있었다. 소재를 고르는 것에 대한 탁월성, 애정 어린 세심한 관찰력, 그리고 그런 세심함이 만들어낸 유려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문장까지.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수필'이다. 책의 첫머리에서 작가는 오랜 수필가로써 수필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시작한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 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 중
앞으로도 오랜 시간 유효할 수필의 정의이며, 긴 시간 글을 쓴 사람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문장들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잘 하는 영역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수필이 항상 경계해야 할 부분에 대한 고찰까지 잘 드러난다. 뒤로 이어지는 '신춘' 역시 좋은 수필의 전형 같은 모습이다. '파리에 부친 편지'에선 유려한 표현력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훌륭한 수필이란 이런 것들이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는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둘째 챕터의 표제는 '서영이'다. 사랑하는 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딸을 가진 아버지의 입장, 혹은 딸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더욱 와닿을 이야기들이라 생각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전 세대를 막론하고 마음 한쪽을 찡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세 시 반에 파했다는데요."
바깥은 벌써 캄캄하여 온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버스에서 내리는 작은 여학생들은 다 서영이 같았다. 나는 세 시경에 다방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서 데리고 올 것을 잘못하였다. 어디를 갔을까? 오늘 청소도 아닌데...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서영이는 버스에서 내리더니 학교에서 놀다가 왔다고 한다. 나는 나무라지 않았다.
"버스에 사람 많지? 자꾸 밀리지 않던?" 하고 물어보았다.」 '어느 날' 중
챕터의 제목이 '서영이'이고, 딸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 작가가 사랑하는 사람, 특히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첫 장을 여는 수필의 제목은 '엄마'.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며, 둘째 챕터에 수록된 수필들 곳곳에서 자신의 인생엔 두 여자가 있다고, 그건 어머니와 서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책 전체에 어디에도 없다. 무슨 사연이 있을 듯 하나 찾아보진 않았다. 공교롭게도 표제작인 '인연'도 이 챕터에 실려 있다. 짧은 몇 번의 만남이지만 평생 못 잊을 여인인 아사코에 대한 이야기. 십 년씩 서로를 전혀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던 일이 실제로 가능했던 시대의 이야기다. 애틋함이 그 어떤 촘촘한 소설 못지않다. 표제작이 표제작인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인연' 중
셋째 챕터는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첫째 챕터의 수필과 비슷하지만 좀 더 위트와 유머가 있는 글들이다. 정말 유명한 수필인 '피가지변'이 이 수필집의 바로 이 부분에 수록되어 있었다는 걸 늦게 알았다.
호흡이 길지 않은 책이다. 단순히 책 전체적인 분량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편 한편이 길지 않아 쉽게 읽힌다.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도 금방 다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각각의 작품들이 가진 여운들에게 양보할 시간을 주어가며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행간들에, 각 편의 사이사이에, 챕터를 넘어갈 때마다, 그저 텍스트를 읽어내는 것 이외의 수십 초가 필요하다. 어떤 종류의 예술이건, 창작만으로 완성되는 예술은 없다고 느낀다.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과의 호흡과 관계가 비로소 한 작품을 완성시키는 걸 자주 본다. 독자가 글을 읽으며 작가가 써 준 문장들을 읽어내는 물리적 시간 외에, 행간에 필요한 시간이, 그 수십 초가, 때로는 몇 분간의 시간이, 그 시간을 채우는 상념들이 미완의 작품을 완성으로 이끈다. 이 수필집의 경우엔, 그런 시간들에서 꽤나 괜찮은 감상들을 떠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