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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Mar 28. 2019

6.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도시 재생 프로젝트

르네상스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라고 물어보면 이런저런 답들이 많이 나온다. 누군가는 시에나, 누군가는 피렌체, 누군가는 피사라고들 한다. 그런데, 르네상스 작품들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바로 피렌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르네상스 하면 피렌체를 떠올린다. 자타공인 피레네는 르네상스가 가장 꽃 피웠던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에 많았던 수많은 도시 국가들 중에서 피렌치가 르네상스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들을 알아보자. 


도시 재생 프로젝트


피렌체는 알프스 이남 지역에 위치한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분인 도시 국가였다. 13-4세기 시기의 북부 이탈리아는 서유럽과 비잔틴의 중계무역 지점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피렌체도 그 도시국가들 중에 하나였다. 이 중계 무역 가운데 특히 은행업을 통하여 피렌체도 부유한 도시 국가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서 영국이 패하게 되고 이에 돈을 다시 돌려받지 못한 몇몇의 피렌체 은행들이 파산하면서, 1344년 피렌체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3년 뒤인 1347년 흑사병이 발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당시 흑사병으로 인하여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고 하니 피렌체 또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 틀림없다. 

흑사병이라는 엄청난 재앙으로 인구가 줄었음에도, 땅과 자원은 그대로이니 노동자의 임금은 올라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렌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양털 산업 노동자들의 처우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고 상인 계급들은 여전히 그들을 무시하며 차별한다. 이에, 1378년 노동자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이를 촘피의 난이라 부른다. 몇 년간 노동자들은 피렌체를 점령하지만 결국 내부 분열로 인하여 노동자의 반란은 진압되고 만다.  

이제 좀 숨을 돌리는가 싶었는데, 피렌체의 인접 도시국가 밀라노가 피렌체를 습격한다. 이 공격은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4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피렌체는 곧 밀라노의 손에 넘어갈 것처럼 보였지만 1428년 다행히도 밀라노의 왕이 죽으면서 피렌체는 도시를 수성하게 된다.

14세기를 거친 피렌체는 이처럼 흑사병과, 노비의 반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렌체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중계무역과 은행업, 섬유 제조업으로 다시금 자신들의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다. 특히 당시 피렌체의  피오리노 금화가 유럽의 기축통화 역할을 할 정도로 피렌체는 유럽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했다.  

역병과 기근, 전쟁으로 폐허가 될 뻔한 위기였지만 이것을 극복해낸 피렌체는 15세기 유럽 최고의 부국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피렌체의 시민들은 위기를 극복해낸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 국가를 다른 도시국가보다 뛰어나게 꾸미기 원했다. 그 일환으로 공공 미술과 건축, 그리고 예술에 대한 후원들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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