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술호근미학 Apr 21. 2019

7. 코시모 메디치

도시국가의 통치자들, 코시모 데 메디치


도시국가의 사실적 통치자

14,15세기 북부 이탈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분이었지만, 황제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크게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이유 세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북부 이탈리아는 알프스 이남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신성 로마제국이 알프스를 넘어 북부 이탈리아로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두 번째로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은 교황과의 권력다툼을 하던 때였다. 북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은 막강한 부를 통하여 신성 로마 제국과 교황 모두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신성로마제국이나 교황들 모두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마지막은 흑사병이라는 사회적인 이유이다. 14세기 중방 유럽 전역에는 흑사병이 돌기 시작한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일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신성로마제국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러한 인구 감소에 군대를 조직하여 원정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상업의 발전으로 상인들이 자본을 획득하게 된다. 이 상인들은 서로의 이익 집단을 모아 길드를 조직한다. 이 길드의 성격은 물론 상업적인 보호와 서로의 이득을 위함이었지만 사실상 정치 집단과 같은 역할을 했다. 각 길드의 대표자들이 정치에 나서게 됐고, 도시국가의 사실상의 통치자가 되었다. 이렇게 도시국가는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시민계급이 자체적으로 통치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르네상스의 시작 코시모 데 메디치

피렌체의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메디치 은행을 세우고 가문을 부유하게 만든다. 그는 강력한 부를 기반으로 길드를 조직하고, 정계에 진출하여 수많은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조반니 디 비치 이후, 1434년 그의 장남인 코시모가 공화국의 피렌체 공화국의 실질적 통치자의 자리에 오른다.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도시로 만드는데 가장 커다란 기여를 한 인물은 브루넬리스키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닌 아마도 이 코시모 데 메디치일 것이다.

 

르네상스는 앞서 이야기했지만 고대 그리스의 부활이다. (참고 글 : 르네상스가 뭐예요?) 이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학문들이 사실 완전히 끊겨 버린 것은 아니었다. 


코시모는 어릴 적부터 인문학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다.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그것들과 관련된 학자와 예술인들과의 친분을 쌓았다. 이전 시기까지, 유럽의 학문들은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중세 스콜라 철학이었다. 이 스콜라 철학은 현상에 대한 분석, 사물의 관찰, 이성적 판단을 중시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학문이었다. 이 아리스토텔리즘은 유럽의 대학의 기본적인 사조로 자리 잡았다. 


코시모는 1439년 피렌체에서 그리스 정교회(비잔틴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종교회의를 연다. 이른바 ‘피렌체 공의회’다. 코시모는 700여 명에 달하는 그리스 정교회 대표단의 모든 참가비용을 직접 부담했다. 이 피렌체 공의회는 단순히 종교의 화합을 넘어서, 동방과 서방의 이질적인 문화가 만나는 극적인 접점 구실을 했다. 당시 그리스 정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비잔틴제국의 철학자 게미스토스 플레톤은 흥미진진한 플라톤 철학 강연으로 피렌체 지식인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다. 플레톤이 강연한 주제는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점'이었다.


피렌체 공의회를 조직한 코시모 역시 플레톤의 강연에 큰 감명을 받았다. 나아가 코시모는 개인재산을 털어 피렌체 인근에 ‘플라톤 아카데미’를 개관한 후, 인문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번역하게 했다. 이를 계기로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플라톤 철학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특히 플라톤 아카데미는 훗날 유럽의 사상 및 철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는 근거지가 된다.


코시모의 인문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나날이 커졌다. 그는 가치가 있는 고문서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학자와 필경사 등으로 이뤄진 코시모의 대리인들은 유럽 안팎을 돌아다니며 희귀하거나 귀중하다고 판단되는 서책이라면 모조리 사들이고, 살 수 없는 경우에는 필사하여 그 내용만이라도 가지고 왔다. 코시모는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수집된 엄청난 양의 장서들은 모두 ‘메디치 도서관’에 보관됐다. 


플라톤 아카데미와 메디치 도서관을 통해, 재정립된 신플라톤주의는 세상을 수학과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고, 이것들은 예술과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나가 르네상스 문화를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