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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l 04. 2019

그들은 왜 수영장으로 갔을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수영장에서 일어나는 코메디와 힐링영화

군대 선임의 상담


얼마 전, 군대의 선임이었던 동생이 회사에 찾아왔다. 나는 군대를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갔기에 대부분의 군대 선임들은 다 동생들이다. 군대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상담병을 했었고 많은 선임들은 내가 후임임에도 불구하고, '형, 나 고민이 있어, 상담 좀 해줘'라면 나에게 고민들을 털어놓았었다. 그 친구도 그 중에 하나였는데, 그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생각 났는지 를 찾아와 자신이 뭐를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이 친구는 올해 졸업반이고, 전공은 스페인어과이다. 왜 스페인어를 택했냐고 물어보니 점수에 맞춰서 갔다고 했다. 관심이 많지 않던 학과였지만 원체 시험을 잘보는 머리를 갖고 있어 성적은 그저 그렇게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어과를 다니다 보니 돈을 벌기는 쉽지 않을거란 생각에 친구들 따라 세무사 시험을 봤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저 미래가 두렵고, 졸업을 앞두고는 있는데 아직 취업을 못한 것이 답답하여 명분을 주기 위한 시험이었다. 그 마음이 편치 않아보였다. 그 친구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낙오자들의 모임

2년 차 백수인 베르트랑은 우연히 수영장에서 수중발레 메달리스트 출신의 코치가 운영하는 남자 수중 발레단의 모집광고를 보게 된다. 면접에서 떨어지고, 무기력한 마음으로 수영장을 찾은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수중 발레단을 방문한다. 그가 찾은 수중 발레단은 엉망진창이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몸은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뱃살이 출렁거리는 사람들이고, 훈련은 물에서 물장구를 치는 정도였다. 메달리스트라던 코치는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릴케의 시를 읽어줬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베르트랑은 이 수중 발레단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그날부터 매주 한 번씩 수중발레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하는 수중발레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베르트랑이 수중 발레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처형과 동서는 면전에 대고 그를 욕한다.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면서 수중 발레를 하며 베르트랑의 아내를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어렵게 동서의 회사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던 차라 베르트랑은 그의 비난에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한다. 다른 팀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들은 왜 수영장으로 갔을까?

수중발레 훈련이 끝나면 팀원들은 모두 사우나에 모여 수다를 떤다. 수중발레팀의 대부분은 훈련시간보다 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각각의 팀원들은 파산 직전의 수영장 사장, 실패한 이혼남 락커, 외국인 노동자, 가정에서 학대를 당해온 남자, 외국인 노동자, 연애를 해보지 못한 남자 등으로 가정과 직장 그리고 자신이 속한 모든 환경에서 낙오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수중발레에서 물속에 들어갔을 때 숨을 참는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고 꾹꾹 참는 사람들이다. 무시를 당해도, 해코지를 당하여도, 부도가 날 것 같아 두려움에 떨고 있어도 그들은 일단 그 상황을 벗어나고 침묵한다. 하지만 사우나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발가벗은 상태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의 삶에서는 가려야 할 것도 많고 숨겨야 할 것도 많았지만 이 곳에서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 곳에서는 부족함을 용서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부족해도 다른 팀원들은 발가벗겨진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모두 다 받아주고 용납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팀원 중 한 명인 티에리가 온라인으로 수중발레를 검색하던 중에 우연히 남자 수중발레 선계선수권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대회에는 일본, 이탈리아, 터키, 노르웨이 등 수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권위있는 대회이다. 팀원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부끄럽고 숨겨야 할 일들이 아니라는 명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세계 선수권 대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다.

수영장에서 팀원들은 자신과 비슷한,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 더 사회와 환경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있어 수영장은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곳이다. 수영장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만 한정되던 그 생각은 세계 선수권 대회를 통해 확장된다.  


웃기기만 하지는 않는 영화

나는 철학 있는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믿는 한, 모든 영화감독들은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철학을 영화에 담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드라마로, 누군가는 호러로, 누군가는 서스펜스로 자신의 철학을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코미디로 그 철학을 담아내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세련된 방법이라 생각한다. 심각한 주제를 심각한 방법이 아닌, 웃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똑똑하다고 주장한다. 웃음이란 것은 실재하는 객관과 불일치되는 상황이나 개념을 알아차릴 때에 터져 나오는 정서적 반응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뒤집는 반전이 바로 개그이다. 기대했던 것과의 간극이 큰 반전은 훨씬 더 커다란 웃음을 유발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빵 터졌다, 현실 웃음이 났다.' 하는 상황들이다. 그러니 그의 정의에 의하면 작정하고 웃기는 사람들(태생적으로 현실과 반전되는 사람들이 아닌...)은 똑똑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웃기는 사람들'을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웃기기만 한 영화'와 '재밌는 영화'는 다르다. 두 편 다 한바탕 웃고 나온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웃기기만 한 영화는 영화관을 나와서 어떤 장면이 웃겼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재밌는 영화는 영화가 끝난 뒤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낀다. 그 관심과 흥미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게 되는 순간, 영화는 큰 감동이 된다. 그러한 영화는 대게 철학이 담겨 있는 영화이다. '수영장에 간 남자들'은 오랜만에 발견한 웃기고, 재밌는 영화이다.


힘을 주지 말걸 그랬다


다시 군대 선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는 사실 그 동생에게 '네가 하고 싶은걸 해라. 즐겁게 살아라'라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 나잇대에 그 상황에 놓여 있으면 그런 두려움과 답답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 친구는 전혀 이상한 친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사회가 부족하게 여기는 기준 때문에 그 친구에게 더 나은 삶을 살아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그냥 힘을 주지 말 걸 그랬다. 그저 네가 이상한 것이 아니야. 나도 그랬어 라고 말해줄 걸 그랬다. 내가 그 친구에게 수영장이 되어줄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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