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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Sep 14. 2015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 고독함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다.


우리나라에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은 500만명이 넘는단다. 10명중에 한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독서인구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이다. 그런데 나는 그 10명중에 속하지 않았다. 자칭 타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서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안읽어봤다니 아이러닉한 일이다.

내가 그의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은 '어려울 까봐'에서 였다. 일단 그의 책들은 하나 같이 다 두꺼웠다. 「해변의 카프카」, 「1Q84」등 소설의 이름은 카프카와 조지오웰과 같은 색채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읽기도 전에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난 그들의 소설이 무겁다.) 그래서 그의 책들은 읽지 않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는 오쿠다 히데오나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가볍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휴가를 나갈때마다 책을 구입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왔는데 한동안 책이 오지 않았다. 독(讀)하지 않은 시간이 어찌나 무료하던지... 도서관에 가서 책들을 골라 보았다. 그 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던 책이었다. 읽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는 미국에 있을 때 출간 된 책이다. 당시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도 없었다. 고백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는 관심은 있었기네 그의 산문집은 읽어보았다. 그 때, 마음 속에 큰 반응이 없었다. 비싼 돈을 들여 굳이 외국에서 그의 소설을 구매하기가 꺼려졌다. 무엇보다도 제목이 너무 길어서 메모하지 않는이상 책의 제목을 외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말 그대로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를 그린 책이다. 색채가 없다고 표현 한것은 다자키 쓰쿠루가 속해 있던 그룹의 다른 멤버들은 이름에 모두 색(色)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쓰고 나니 무슨 소린가 싶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다자키 쓰쿠루는 나고야 출신의 기차역 디자이너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로 유학을 오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모두 이름에 빨강, 검정, 흰색 등의 색(色)을 갖고 있었다. 유일하게 다자키 쓰쿠루는 이름에 색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다자키 쓰쿠루는 그 그룹에서 특별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그저 그러한 멤버였다.

다자키 쓰쿠루가 도쿄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직후, 그가 속해 있던 그룹은 어떠한 이유로 그에게 절교를 통보한다. 그룹에게서 배척당한 다자키 쑤쿠루는 마음을 굳게 닫고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을 겪으며 10년을 보낸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다자키 쓰쿠루는 여자친구 사라의 권유에 따라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순례를 떠난다.


외롭지 않은 고독함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속해 있던 그룹을 떠나 새로운 그룹으로 이동한다.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군대로, 군대에서 직장으로... 가끔씩은 내가 속해 있던 땅을 떠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땅에 속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런 공동체의 이동 가운데에서 개인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동체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직장이 될 수도 있고, 학교,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환경이 마치 내가 설계한 것인마냥 잘 적응하고 옆사람과 쉽게 대화를 트고 내 편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누군가와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 가벼운 대화는 할 수 있지만 그 사람과 깊은 대화는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새로운 환경이 낯설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속해있던 환경에서 내가 지워진다는 것이 낯설어서이다.

군대에 처음 입대했을 때, 내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전두엽을 장착하지 못한 비인격적인 20대 초반의 선임들과 고막을 울리는 총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무서웠던 것은 내 공동체에서 멀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군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라는 존재가 잊혀지는 것, 그래서 내가 돌아갈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걱정은 나를 뜬 눈으로 밤을 지새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옆에 나와 대화하는 동기들이 생겼다. 그들과  함께 땀흘리며 고통을 나누었다. 그들은 나에게 외로움을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내가 사회에 속해있던 그곳이었다. 나에게 오는 편지의 횟수가 줄어들고 SNS에서 나를 제외한 친구들의 사진들이 업로드 될 때, 나는 심각한 소외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소외감 앞에 언어는 힘을 잃었다. 어떤말로도 내 소외감과 잊혀질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할 수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기 있는 이유; 언어의 성감대를 만져주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누구나 한번쯤 있을법한 일을,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경험을 언어로 표현해준 책이다. 존재를 부정당하고 공동체로부터 소외 당했을 때, 나는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 허무함과 상실감을 마주하면 도무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생각이 안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이 표현 못할 감정을 언어로 옮겨 독자들을 위로하고 공감한다. 50p.와 70p, 286p에서 그는 소외 당한 사람의 마음을 굉장히 잘 표현한다. '장기에서 나는 삐- 소리'라던지 '존재를 부정당하다' 라는 표현은 내가 가려워했던 곳을 시원하게 박박 긁어주는 표현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인기 있는 이유는 아마도 모두가 있을법한 하지만 표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정확한 단어와 문장들로 옮겨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도 순례가 필요해


외롭지 않은 고독감과 불안함은 여전하다.(전역하기 전까지는 계속 되겠지?) 휴가를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내 색채를 확인하고 내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때  비로소 그 두려움은 꼬리를 감춘다. 나도 다자키 쓰쿠루처럼 존재를 부정당했던 기억이 있을것이다. 그렇기에 이 불안감도 존재하는 것이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나 다자키 쓰쿠루의 여자관계에 깊게 공감했다. 관계에서 실패한 이후로 누군가를 나보다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저버린 모습. 욕망의 해방구로, 외로움의 탈피구로써 이성관계를 맺는 모습들은 내 모습과 유사했다.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는 사건을 인정하고 그것을 대면하고 다른 행동을 취할때에야 치료된다. 나도 이러한 내모습과 화해하기 위해 다자키 쓰쿠루처럼 순례를 떠났다. 결과는...? 소설처럼 안알랴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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