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네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urquoise Sep 06. 2015

천재 경관의 '섹시함'

13.67 - 찬호께이

추리 소설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다. 간간이 다른 장르의 소설도, 인문학 서적도, 심지어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는  하릴없이 자기계발서에 손을 뻗기도 하지만 서점에 가서 주로 눈을 크게 뜨고 다니는 곳은 추리 소설 코너다. 이처럼 편협한 취향을 가진 독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13.67>을 만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난 후 생각해보니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13.67>은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해선 안 된다는 게 결론이다. 찬호께이의 이 소설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13.67>의 지리적 배경은 홍콩이다. 신혼여행을 홍콩으로 다녀오고, 그 분위기에 취해 한 번 더 여행을 다녀온 나에게는 홍콩이라는 배경이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홍콩이어서 더 친근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첫인상은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단지 느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일본이나 영미 쪽 추리 소설을 접하기 쉬운 일반적인 독자였던 내게 홍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일단 주인공 이름부터가 요상하다. 한문을 현지식으로 읽어 한글로 적어 놓은 친절함 덕분에 '관전둬'라는 단어가 사람 이름이라고 스스로 다짐을 몇 번이고 할 필요가 있었다. 지명도 내가 알고 있는 한계선을 금방 넘어 섰다. 몽콕이나 코즈웨이베이처럼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 이외에는 이 동네가 어딜 말하는 건지, 거리 상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파악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홍콩 경찰의 체계는 또 어떠한가. '독찰'이라는 계급이 나오는데 이게 우리나라로 치면 어느 정도 급이 되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시간적 세계관으로 들어서면 조금 더 암담한 상황이 펼쳐진다. <13.67>이라는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처럼, 이 소설은 2013년을 시작으로 1967년까지 홍콩이라는 도시가 겪었던 주요 사건을 '키 프레임'으로 잡고 그 시점에 등장 인물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즉, 홍콩의 역사적인 배경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소설의 플롯에서 하나의 재미를 추가할 수 있는 것이다. 뼛속부터 대한민국 사람인 '홍콩 관광객'이 이런 걸 알리가 없지 않은가. 읽는 도중에 잘 모르겠는 역사적 배경이 나오면 포털 사이트에 검색까지 하면서 읽은 열정이 있었다는 걸 꼭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소설의 세계관만 본다면 <13.67>에는 '맹견 주의' 같은 표지판이 하나쯤 걸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첨언을 하자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느껴지는 종이 더미의 무게감도 만만찮고 펼치는 순간 빽빽하게 들어찬 활자와 다른 책 대비 적어 보이는 여백에 기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깐깐하게 따져봐도 '하드웨어적'인 한계는 여기까지다. 약간의 근성을 미리 장착하고 책장을 몇 번 넘기게 되면, '그 딴 것들'은 별로 신경 쓸 거리가 못 된다.


<13.67>가 내세울 만한 매력 중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흡입력'이다. 추리 소설의 미덕으로 보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킬링 타임'을 얼마나 멋지게 할 수 있느냐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 매우 충실하다. 말초 신경을 건드리는 '옐로 콘텐츠'가 아닌, 이야기의 흐름과 등장인물의 캐릭터만으로 말이다. 어느 에피소드라 할 것 없이 이야기가 흐르는 물결이 정말 유려하다. 작가가 공학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쓸데없는 문장이 없이 다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톱니바퀴처럼 탁탁, 자신의 자리를 찾아 종국에는 멋진 트릭의 메커니즘을 완성한다. 인물들의 캐릭터는 플롯이 간결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작가는 지나치게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도, 너무 퇴락해서 동정심마저 느껴지지 않는 경찰도 그려내지 않았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전둬를 비롯한 뤄샤오밍, 스번성, 탕링의 행동은 억지스럽지 않고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트릭의 정교함을 봐도 <13.67>은 상당한 수준을 보인다. 추리 소설 깨나 읽었다는 사람이라면 에피소드 초반에 '왠진 모르겠는데 이거 결말을 알 것 같아'라는 느낌이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알고 있을 것이다. <13.67>의 각 파트는 초반에 그런 느낌을 주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관전둬가 뤄샤오밍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장면에서는 왠지 관전둬가 누워 있다는 것이 트릭일 것 같고, 육교 위로 뛰쳐 올라간 여자가 사라진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를 쫓아 올라간 남자들이 왠지 내가 생각하는 그 자들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단순할 것 같은 기분이 슬며시 들며 에피소드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남은 분량을 재고 있을 때가 꽤 많았다. 하지만 어떤 에피소드도 그런 기분대로 흘러간 적은 없었다. 천재 수사관 관전둬씨는 항상 플롯의 막바지에 이르면 내 예상이 처절하게 틀렸음을 아주 소상히 말해줬다. 추리 소설 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저 평범한 독자라면 트릭에 대한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글자를 읽으며 작가가 말하는 세계를 자신만의 배경과 색채로 그려내는 과정, 소설 독자에게 이만한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찬호께이는 이 부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상황을 설명하는 능력, 주인공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묘사하는 실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이 사람이 정말 작가로서 커리어가 길지 않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다. 특히 총격전이 벌어지는 에피소드에 이르면 작가의 능력은 극을 친다. 찰나의 움직임이 생과 사를 가르는 장면에서 작가는 인물의 동선과 시간의 순서, 사물의 움직임을 정확히 나열하여 독자로 하여금 저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한다. 이 역시 공학을 전공한 작가의 메리트라고 봐야 할까. 기계류에 대한 매뉴얼처럼, 순간을 그려내는 찬호께이의 문장은 탁월하다고 소개하고 싶다.


이 소설은 이미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지각이 있는 영화 관계자라면 이 이야기의 판권을 다른 이가 가로채 가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조금 더 아쉬운 측면이 있다. 책을 읽으며 혼자 열정적으로 그려 봤던 장면들, 콧방귀를 뀌며 시작했다가 눈이 휘둥그레져 끝났던 에피소드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동안 <13.67>의 세계에 빠져 지내며 현실의 피로함을 잊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 다른 누군가가 정해 놓은 '틀'에 맞춰져 재단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나만 알고 있던 맛집이 너무 유명해져서 섭섭한 기분과 비슷하다면 이해가 쉬울까. <13.67>은 읽는 중에도, 읽고 나서도 남 몰래 혼자만 즐기고 싶은 그런 섹시함이 있는 소설이다.


P.S :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게 되면 소설의 첫 부분을 다시 들춰보게 된다"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몰랐다. 두꺼운 책을 다 읽는 것도 모자라 처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잔인함을 나는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찬호께이가 소설 전체의 마침표를 찍기 직전에, 나도 모르게 첫 번째 에피소드를 들춰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 책은 꼭, 마지막 한 문장을 읽기 바란다. 그건 <13.67>을 열심히 읽어준 독자를 위한 작가의 '이스터 에그'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묘한 목표를 향한 전력 질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