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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Sep 14. 2020

르네상스 시대에도 뒷 광고 논란이 있었다고?

르네상스와 뒷 광고, 그것을 거부한 미켈란젤로

<동방박사의 예배>와 뒷 광고


얼마 전 꽤 많은 유튜버들 사이에서 뒷 광고 논란이 있었죠? 뒷 광고는 비밀리에 돈을 받고 유료광고 표시를 안 한 것을 이야기하는데요. 여러 연예인이나 스타일리스트, 먹방 유튜버들이 뒷 광고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슈가 되었죠. 이러한 뒷 광고가 르네상스 시대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동방박사의 예배>, 베네초 고촐리


우리가 흔히 메디치 가문의 그림이라고 알고 있는 이 그림은 사실 베네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예배’라는 그림입니다. 동방박사라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 명인데, 이 그림에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열게 해 준 장본인 코시모 데 메디치를 비롯해 그의 아들인 피에로, 그리고 손자인 로렌초가 등장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베네초 고촐리

코시모 데 메디치의 아들인 피에로 메디치는 메디치 가문의 업적을 기리면서 궁을 짓습니다. 그는 베네초 고촐리에게 한쪽 벽에 ‘성서의 한 이야기’ 그림의 제작을 의뢰합니다. 피에로의 입장에서는 메디치 가가 잘 드러나는 그런 그림을 그려 넣고 싶었죠. 메디치 가문은 아버지 코시모로부터 피렌체의 실질적 통치자 역할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랬다가는 수많은 피렌체 사람들과 메디치 가의 자리를 위협하는 반대 세력들에게 비난의 근거를 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가업인 금융업은 당시에는 종교적이나 도덕적으로도 떳떳한 직업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는 이를 무마하면서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가질만한 종교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메디치 가 3대

그럼에도 그의 욕심은 숨길수 없었는지, 고촐리에게 지금과 같은 모습의 그림을 주문합니다. 이 그림은 동방박사의 행렬이라고 하기에는 행렬의 규모가 너무 큽니다. 우리가 아는 성경의 이야기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만이 선물을 챙겨서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으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가잖아요.  그런데 이 그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렌체의 베키오 궁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고 있어요. 이것만 봐도 사실 제목만 ‘동방박사 예배’이지. 내용은 메디치 가의 업적 찬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목만 내 돈 내산이지 사실상 제품 광고인 뒷 광고와 똑같은 거죠.


지인의 얼굴을 그려 넣은 예술가들


당시의 예술가들은 부호들의 후원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어요. 때문에 그들이 그리는 작품 중 중요인물이나 성인의 얼굴은 자신을 후원해준 후원자의 얼굴을 그려 넣었어요. 어차피 모델이 있어야만 얼굴을 그릴 수 있었기에 화가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고, 피에로 메디치처럼 노골적으로 의뢰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이처럼 당시에는 그림에 예술가의 후원자나, 지인, 유명인 심지어 본인까지 그려 넣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을 만들어 그리는 개념이 일반적이지만, 당시 예술가들에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 중에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대상을 그림에 그려 넣었죠.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입니다. 바티칸의 교황의 서재라는 곳에 그려진 그림인데요. 이 그림에는 수많은 철학, 수학, 과학, 그리고 예술가들이 등장합니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는데요.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그중의 플라톤의 실제 모델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입니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다빈치의 모습으로 그린 것을 보면 라파엘로가 얼마나 다비치를 좋아하고 존경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둘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죠? 헤라클레이토스는 고독을 즐기고, 난해하고 어려운 말을 던지는 어두운 철학자였다고 하는데요. 

플라톤(좌), 헤라클레이토스(우)

괴팍하고 어두운 성격의 미켈란젤로를 헤라클레이토스로 그린 이유는 아마도 그를 어느 정도 조롱하는 것 아닐까요? 라파엘로는 자신의 모습도 몰래 그림 가운데 삽입합니다. 그는 알렉산더의 궁정화가이자 천재화가인 아펠레스를 자신의 모습으로 그립니다. 라파엘로가 스스로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아펠레스


뒷 광고를 거부한 화가, 미켈란젤로


 그림에 뒷 광고를 제안받았지만 그것을 거부한 화가도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괴팍한 화가 미켈란젤로인데요. 그는 정교한 조각으로 유명하지만, 그림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피렌체에서 그가 유명해지자 당시의 교황인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맡깁니다. 당시의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어깨를 잘라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굉장히 고생을 하며 결국 그림을 완성합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미켈란젤로

그런데 60대가 된 미켈란젤로에게 당시의 교황인 바오로 3세가 또 그림을 의뢰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명성도 있고, 조각에 몰두하던 그에게 이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의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디 한 번 당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교황의 요구와는 다른 그림을 그려 넣습니다. 가장 위엄 있고 고귀하게 보여야 할 예수를 수염조차 없는 나체의 젊은이로 묘사하는 파격을 시도한 것이죠.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게다가 최초의 그림에서는 예수의 성기도 노출이 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나중에 중요 부분을 가려 넣는 추가 작업이 이뤄져서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말년에 자신이 하고픈 작업이 아닌, 종교와 정치세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고통받는 자신의 모습 또한 그려 넣는데요. 그것은 바로 사도 중 한 명인 바돌로메의 인피입니다.

바돌로메

예수의 사도 중 한 명인 바돌로메는 인피, 즉 피부 껍질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고 죽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바돌로메인데요. 재밌는 것은 바돌로메는 대머리인데, 그가 들고 있는 인피는 머리가 있죠? 딱 봐도 다른 인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하네요. 자신을 껍데기만 남은 채로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미켈란젤로가 이 작업을 할 당시 심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르네상스 당시에도 지금처럼 뒷 광고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지금처럼 스스로 작품을 판매할 수 없도, 권력에 굴복해야만 했기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그 뒷 광고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미켈란젤로 같은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정직함과 소신이 명작을 만드는 하나의 요소일 것입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보기

https://youtu.be/iXotZRTdq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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