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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Feb 02. 2020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조각을 왜 완성하지 않았을까?

미켈란젤로 노예 연작


작년 봄 나는 피렌체를 여행했다. 피렌체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이었다. 그곳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 많으니까.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가면서 갑자기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김영하 작가 미켈란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노예 연작을 언급한다. 김영하 작가는 다비드 상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왜 노예상은 미완성했을까? 그것은 의도적인 미완성이라고 주장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김영하 작가는 2012년 tv미술관에서 이미 이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미완성작이라는 의견에는 미켈란젤로가 이 조각상들을 제작하던 중에, 피렌체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카데미아에서 미켈란젤로의 노예 연작들을 보니,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이것들은 의도적인 미완성의 완성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미켈란젤로는 왜 이 작품들을 아직 돌에 가둬두었을까? 김영하 작가는 미켈란젤로는 돌에서 형상을 해방하는 작업을 했고,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말했다고 알려준다. 이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그 사실들을 알려면 미켈란젤로의 생애를 알고,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노예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신플라톤주의와 미켈란젤로


사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미켈란젤로가 아닌, 플라톤이다. 미켈란젤로가 활동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들이 다시금 읽히기 시작했다. 비잔틴 제국이 몽골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면서,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피렌체로 귀화한다. 당시 피렌체의 지도자이자 가장 부자인 코시모 메디치는 귀화한 철학자 중에 한 명인 플레톤의 강연을 듣고 이에 감동하게 된다. 그는 플라톤의 저서들을 모으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연구하는 기관들을 세운다.  그는 피치노라고 하는 학자에게 총감독을 맡겨, 플라톤의 저서들을 모국어로 해석하고 이를 연구하게끔 한다. 이러한 연구는 그의 아들인 로렌조 메디치에게도 이어진다. 로렌조 메디치가 26세가 되던 해, 미켈란젤로가 태어난다.    

미켈란젤로는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귀족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그는 굉장히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조토와 마사치오의 작품들을 습작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13세 때 화가 도메니코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러던 중, 메디치 가문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미켈란젤로가 미술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로렌조 메디치는 미켈란젤로를 상당히 아꼈다. 그는 다른 예술가와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과의 식사에 미켈란젤로를 자주 동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알게 된 철학들을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플라톤의 여러 철학 중에서 인간의 육체와 영혼 관계를 잘 표현한 작품들이 바로 노예 연작이다.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노예는 무엇을 뜻할까?


모든 인간은 노예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혼이 잠시 육체에 머무는 것이다. 영혼은 본래 가장 아름다운 선에 가까웠지만, 추락하여 육체라는 존재에 갇힌다. 이러한 상태에 대해 플라톤은 심지어 육체가 '영혼의 감옥'이라고 주장한다. 갇혀있는 영혼은 아름다운 것들(대표적으로 철학)을 통해 상승하여 결국 육체라는 감옥을 벗어나, 본래의 자리로 복귀해야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접한 모든 인간들의 영혼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접했을 때, 지성이 있는 영혼만이 이데아를 상기하고 상승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면서 노예들의 매매가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당시 노예들은 지성이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은 살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보긴 하지만, 지성이 없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에로스가 있어 상승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지만, 지성이 없어 상승하지 못하는 노예들은 괴로워한다. 미켈란젤로의 노예 연작들은 이 과정의 분투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단순히 노예들만을 표현했다고 보기는 조금 어렵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기념 묘비에도 노예상을 조각했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미켈란젤로는 인간 자체가 노예와 같은 상황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상승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나, 그것을 아직 알지 못해 괴로워하고 육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가 이 조각상을 통해 고통을 표현했다는 것을 어떻게 유추해볼 수 있을까?


피구라 세르펜티나타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베로키오의 초기 조각 작품들은 대부분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모습이다. 이 포즈는 콘트라포스토 (contrapposto)라고 하는 자세이다. 대비된다라는 뜻의 이 포즈는 인체가 가지는 작용과 반작용을 잘 표현함으로써 조각의 조형적 기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포즈로 평가된다. 이 포즈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포즈이기도 하다. 그중에 대표되는 작품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노예 연작들은 콘트라포스토 포즈를 취하고 있지 않다. 미켈란젤로는 육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예의 괴로움을 아름다움의 포즈인 콘트라 포스토가 아닌, 피구라 세르펜티나타(Figura serpentinata)라는 포즈를 이용하여 표현한다. 이 포즈는 "라오콘 군상"이라고 하는 조각을 통해 르네상스에 전해졌다.

기원전 100년 정도에 오도스 섬의 조각가들인 아게산드로스, 폴리도로스, 아테노도로스는 합작으로 라오콘 군상을 조각한다.  이 조각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르네상스 시기 시골 농부에 의해 발견된다.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농부에게 보내 이 조각을 감정하게 했고, 미켈란젤로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조각품이라고 격찬한다. 이때, 미켈란젤로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상체와 하체가 뒤틀려 있는 라오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뱀으로부터 벗어나 살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분투를 표현한 모습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라오쿤의 군상 조각을 접한 뒤, 인간의 분투를 표현한 피구라 세르펜티나타 포즈의 조각들을 많이 제작한다. 아카데미아에 있는 마켈란젤로의 노예 연작들 또한 모두 피구라 세르펜티나타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미켈란젤로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의 노예를 표현한 것이라는 유추를 해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 스스로 밝히지 않았기에 노예 연작은 미완성이다, 완성이다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피구라 세르펜티나타를 통해 보이는 조각 상은 무엇인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였던 미켈란젤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여전히 일부분이 돌 속에 갇혀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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