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무엇인가? 나는 이 일을 지속해도 되는 것일까?
얼마 전 결혼해서 딸을 셋이나 가진 사촌 형이 우리 집에 와서 일을 좀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데, 집에서는 아이들이 한 명씩 번갈아 들어오며 "아빠 뭐해?"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집으로 형을 초대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7년 전쯤, 내가 형에게 아마존 주식을 사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에 나는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마존이 도서에서 오픈 마켓으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아마존 주식이 얼마나 잠재력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형은 내 말을 의심했고, 며칠 뒤에는 나에게 아마존 주식이 상장가보다 떨어졌다는 기사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아마존 주식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주식 중에 하나가 되었다.
나는 주식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은 주식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주식 중에는 현재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것 같은 종목이 어느 순간 가치가 올라갈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종목은 지금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것의 가치가 하락할 때도 있다. 그러니 적어도 주식에서는 지금 가치가 없다고 해서 무시할 것이 아니다. 시간은 흐르고 때가 되면 그 가치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상승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가? 인정을 받지 못해 불안하고 두려운가? 인생이 주식과 같다면 비록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확신과 자신감이 있고,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 일을 지속해보기를 바란다.
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때를 만나면 반드시 상승할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들 중에서도 때를 잘못 만나, 생전에 인정을 받지 못한 이들이 꽤 있다. 그중에서도 상업적으로는 굉장히 성공했지만 순수 예술가로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한 예술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이름은 알폰스 무하다.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는 디자인, 만화, 애니메이션 등 시각 예술분야에 큰 영향을 준 작가이다. '무하스타일'을 만든 장식성 강한 그의 회화와 디자인은 동 시기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큰 영향을 끼쳤고, 현재까지도 그의 양식은 수많은 일러스트에서 많이 쓰인다.
뿐만 아니라, 이반 랜들에 의해 수집된 알폰스 무하의 작품들은 세계 전역을 돌며 성공적인 전시회를 여는 등,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 알폰스 무하가 생전에는 상업적 일러스트레이터로 평가될 뿐, 예술가로서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알폰스 무하는 장식 미술의 대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스스로는 항상 순수 예술가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는 앙데팡당, 살롱 도톤 등에 작품을 출품하고, 개인전을 열려고 많은 시도를 했다. 하지만 다른 예술가들은 알폰스 무하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그림을 전시회에 걸지 않았다.
다만 그는 살롱 데상이라고 하는 전시회에 초대가 되었는데, 이 전시회는 포스터나 장식 예술 등을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 이후로 알폰스 무하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개인전을 열고, 미국으로 초대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의 예술계에서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같은 석판화 포스터 화가인 툴루즈 로트렉은 예술계에서 환영을 받는다. 또한 같은 아르누보 장식화가인 클림트 또한 예술계에서 큰 인정을 받았다. 대체 이 두 사람은 무엇이 달랐기에 예술계의 인정을 받고, 알폰스 무하는 인정받지 못했을까?
이런 일들은 예술사에서 살펴보면 빈번한 일이다. 피카소나 앤디 워홀처럼 생전에 크게 성공한 예술가들이 있는가 하면, 반 고흐나 렘브란트 같이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사후에 위대하게 평가되는 예술가들이 있다. 대체 예술가로 인정받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 알폰스 무하가 생전에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그의 작품이 그 당시 예술에 대한 개념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폰스 무하가 활동하던 시기는 19-20세기였다. 그가 활동하기 이전 시기 예술의 관건은 얼마나 실제와 똑같이 그리느냐였다. 르네상스 시기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론>이라는 책에서 좋은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림이 나타내는 대상을 유리창을 통해 보든, 그림을 보든 시각적인 차이가 없을 때
그 그림은 잘 그려진 것이다.
잘 그려진 그림은 실제적인 대상과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들은 어떻게든 실제의 모습과 비슷한 그림들을 그리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모두 다 물거품이 된다.
바로 카메라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빛을 한 순간에 빨아들여 순간을 포착한다. 이 카메라는 어떠한 그림들보다도 실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이 사진들을 연속으로 이어 붙이니, 그림이 표현할 수 없는 영상까지도 담아낸다.
그러자 미술계에서는 더 이상 '얼마나 실제와 똑같이 그리느냐'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들은 카메라가 담을 수 없는 모습을 화판에 옮기기 시작한다. 이제는 '무엇에 대한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게 된다. 그림에는 철학이 담겨 있어야 했으며, 눈으로 보이는 단순한 자연이 아닌, 범인류적인 주제가 드러나야만 했다.
이 중간 시기에 알폰스 무하가 태어난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들은 세부적인 묘사가 뛰어났고, 형식적으로 독특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미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요에를 접한 사람들은 그의 형식이 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지극히 눈에 즐거움을 주고, 현실과는 동떨어져서 꿈을 꾸는 듯하게 느껴지는 그의 장식 미술이 당시 사람들에게 예술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미 그런 시도들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상업적 미술작업 이외의 작품들도 슬라브 민족이라고 하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눈에 즐거움을 주지는 않지만, 강렬하고, 삶의 진짜 모습들을 보여줘서 범 인류적 메시지를 전하는 독특한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을 예술로 생각한다. 그래서 툴루즈 로트렉은 예술가들의 전시회인 독립 예술사 협회, 앙데 팡당, 살롱 도톤 등에 초대를 받았지만, 알폰스 무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럼 정말 알폰스 무하의 작품은 예술적인 가치가 없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분명히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다만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예술의 개념과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고흐나 렘브란트도 마찬가지이다. 미학자인 아서 단토는 예술을 정의하는 그룹인 '예술계'라는 것이 존재하고, 역사적으로 예술계에 의해서 정의된 것들만이 예술로 받아들여져 왔다고 말한다. 예술계의 주된 멤버인 예술철학자들은 당시 시대에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것들, 관람자와 예술가가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이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예술의 정의를 단순히 아서 단토의 해석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예술은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인간들의 활동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들에도 충분히 열려 있는 개념이다. 단순히 한 시기 예술계의 정의로만 예술을 가둘 수는 없다.
알폰스 무하, 반 고흐, 렘브란트의 그림들이 그들의 사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증거다. 또한 예술이라는 개념이 시간이 흐르면서 확장된 것도 알 수 있다.
그럼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이고 다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어찌 되었든 적어도 앞서 이야기한 지성을 통한 의미 있는 활동이거나, 시각적 쾌감을 주긴 해야 하니까. 그것들을 충족시킴에도 그것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이다.
정리를 한 번 해보자. 현재 당신의 작업이 의미 있다고 확신하고 자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어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해내라. 지금의 사회, 문화, 역사가 당신을 몰라볼 뿐이다.
어떠한 주식이 지금은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떠한 때를 만났면 비로소 급상승하는 것처럼 당신의 작업이 의미 있다면, 반드시 그때가 찾아올 것이다. 알폰스 무하와, 고흐, 렘브란트는 본인의 작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의미가 있었기에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들의 그림들이 시간이 지나 비로소 예술로 인정받는 것처럼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고 가치 있다면 빛을 발할 날이 곧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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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는 왜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했을까?: https://youtu.be/kQ9EBDsK_Ok
데미안 허스트는 왜 상어를 포르말린에 담궜을까?: https://youtu.be/agEFA-GKe_g
쿠사마 야요이는 왜 그렇게 점을 많이 찍을까?: https://youtu.be/cf5qb9QFQR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