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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l 05. 2021

예술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한다

자코메티의 조각과 현실성,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01

자코메티의 조각

<걸어가는 세 남자>


누군가 나에게 왜 예술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가장 먼저 예술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흔히 예술은 현실과는 동떨어져서 감정의 소비 통로로만 사용된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나에게 예술은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몇 년 전 강남에 있는 루이뷔통 미술관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라고 하는 스위스 출신 조각가의 전시가 있었다. 자코메티는 뼈다귀 같은 모습의 걸어가는 사람을 거친 질감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아마 한 번쯤은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의 작품은 알고 있었지만 그 예술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예전에 영국에 여행을 갔다가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고, ‘이 작품이 어디선가 본 적 있는데?’ 하는 정도였다. 어쨌든 유명 해외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회에 입장하니 규모는 작았지만 여러 가지 작품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나의 눈을 끄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걸어가는 세 남자들>다. 

이 작품은 하나의 석판 위에 뼈다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 인간 세 명이 각기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다른 작품보다 내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한 작품에 3명의 인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같은 전시회 공간에 있던 자코메티의 다른 작품들은 1조각 당 1명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좁은 석판 위에 3명이나 있었다.

‘다른 작품들이 인간 개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타인과의 관계를 표현한 작품은 아닐까?’ 하는 나만의 가설을 세웠다. 왜 자코메티는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작품에는 여러 사람을 표현했을까 하는 궁굼점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이 작품에 대해 검색도 해보고, 논문도 찾아보고, 공부를 좀 했다.


02

조각의 의미

만남과 헤어짐


이 작품은 자코메티가 아침 파리의 광장을 지켜보던 중,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같은 공간인 광장에서 그들은 만나지만, 수많은 파리 시민들은 각자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그 광장의 한 장면을 자코메티는 작품으로 옮긴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그가 만남과 이별에 대한 문제를 표현했다고 느꼈다. 그가 작품을 제작한 때는 1948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고작 5년도 채 안 된 시기다. 


파리의 시민들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이나 친구, 지인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을 하기 위해 분주히 길을 나선다. 그들이 가진 아직 아물지 않은 이별의 상처를 고스란히 가지고 여전히 각기 다른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아마 작품에 표현되어 있는 세 명의 남자들도 살아오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각자의 방향을 정하고 정면을 향해 걸어 가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걷다가 같은 공간인 한 석판 위에서 만난 것이다. 5분 후에 그 석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세 명의 남자는 각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그들은 헤어져 빈 석판만이 남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모습으로 석판에 등장할 것이다.

만약 방향이 같은 사람들이 만난다면 그들은 끝까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나와 당신이 같은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고 한 번 상상해 보자. 나의 목적지는 종로 3가고 당신의 목적지는 압구정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일정 기간 동안은 같은 열차라는 동일한 공간에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헤어지게 된다. 


방향이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머무르겠지만, 결국 그들 또한 각자의 목적지에 다다름으로써 헤어짐을 경험한다.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은 이와 같다. 만남은 각자의 길을 향해 걷던 중 한 지점에서 다른 이와 교차하는 것이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아 함께 걸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목적지는 다르다. 언전가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지점에서 다른 이와 또다시 교차한다.


03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주제


이것은 당시 파리의 시민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만남과 이별도 이것과 같다.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 관계를 가질 때, 이 순간이 영원히 함께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나와 같은 공간 안의 가족, 친지, 애인들과 함께 있으면 우리는 이 관계가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잊곤 한다. 

하지만 같은 공간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자코메티의 작품처럼 우리는 각자의 길을 향해 걸어가던 중 같은 공간에서 잠깐 만남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다른 방향과 목적지를 가지고 있기에 결국 우리는 그 만남의 공간을 벗어나 헤어짐을 맞이한다. 


우리는 헤어짐을 가진 채로 계속해서 걸어 나간다. 그러면서 또 다른 지점에서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나 새로운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죽음이라는 휴식을 갖게 되고 모든 사람들과 이별한다.


04

나와 내 지인의

<걸어가는 세 남자>


그 작품을 접한 당시 나는 오랫동안 몸 담았던 공동체와 분리되는 경험을 한다. 20년 동안 다녔던 교회를 떠난 것이다. 내게 공동체 구성원들은 가족 같았고, 그들과는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분리된 그 순간, 그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 나는 그들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했다. 그런 사실들을 떠올리면 슬픈 마음이 먼저 들어서 일부로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더해질수록 내 마음속에서는 풀리지 않는 어떤 불편함이 있었다. 그 불편함 때문에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 불편함이 자코메티의 이 작품을 접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던 중에 해결됐다. 나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잡고 걸어가던 중, 내가 다녔던 교회라는 석판 위에서 교회 구성원들과 만났다. 


하지만 나의 방향과 목적지가 그들의 그것과 달랐기에 그 석판을 떠난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이전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 때문에 다른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나의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자신의 조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90세가 넘은 조부모님들과 함께 살고 있다. 조부모님들은 점점 기력이 쇠해져 갔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헤어지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서 그 감정을 겪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코메티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는 조부모님과 언젠가 이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조부모님들이 살아계실 동안이라도 많은 추억을 쌓고, 최대한 그들에게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요즘 조부모님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찍고, 최대한 그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05

보편성을 내포한 예술

아리스토텔레스


자코메티의 작품 <걸어가는 세 남자>는 ‘인간은 언젠가는 결국 이별하게 된다’는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다. 그 보편적 인주제 때문에 나와 내 지인은 각각 다른 일을 경험했음에도, 자코메티의 작품에 대해 공감하고, 현실에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처럼 예술은 단순히 전문적인 지식에 제약되지 않고, 인간의 일정한 성질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우리는 예술을 관람하면서 보편적 주제에 대해 공감하고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이라고 하는 저서에서 예술이 담고 있는 보편적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시인(예술가)의 업무는 실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 즉 진실 혹은 필연적인 방식으로 생길 법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보편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떠한 성질의 사람이, 어떠한 것을 말하거나 행하는 것이 진실답거나 필연적인 것이다. (『시학』, 1451a 36-b 1, 4-11)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술은 이 동일한 성질에 보편적으로 진실되고, 필연적이라 느끼는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관객이 시를 관람할 때, 비극(예술)의 등장인물과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등장인물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이것은 관객의 성별이 어떻든, 계급이 어떻든 간에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나와 내 지인이 자코메티의 작품을 보고 공감한 것도 같은 원리다. 


자코메티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이별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앞을 향해 걷고 있다는 것, 그 과정 중에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 하지만 결국 헤어짐을 겪는다는 것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가진 동일한 성질이다. 


그렇기에 나와 내 지인은 서로 성별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름에도 자코메티의 작품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은 당연히 이별을 경험하는 것이다'라는 것에 대해 공감한다.

이처럼 예술은 인간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법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을 통해 현실을 직시할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삶을 더 나아지게 변화할 수 있다. 이것이 제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한 가지다.


정리를 좀 해보자. 니는 예술은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코메티의 조각을 통해 만남과 이별이라고 하는 보편적 진리를 깨달았다. 그 진리를 내 삶에 적용해보니 내 삶이 변했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 어떤가? 당신은 그런 경험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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