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창의성을 기른다,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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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프리젠테이션으로 불리우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발표 연설을 기억하는가?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이렇게 말한다.
‘아이팟, 인터넷 , 폰. 이것은 3개의 기기가 아닙니다. 하나의 디바이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 부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인 아이팟, 인터넷, 폰에 조금 더 확장성을 더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의 새로운 디자인의 디바이스에 응축한다. 그것이 바로 아이폰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결합한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보고 혁신적인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역사상 위대한 발명들도 무(無)의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하나도 없다. 인터넷은 인공위성과 전화선 컴퓨터라는 기존 기술들의 결합이다. 구글, 아마존, 전기차,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등도 사실 기존 기술을 조금더 확장하고 결합해서 만든 새로운 유형의 비지니스들이다.
창의성이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연결하고 종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위대한 발명품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탄생한 것들인가? 그것들은 이전의 기술과 존재하는 재료들의 결합을 새로운 형태에 담은 것들이다
이에 대해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의성이란 서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물어보라. 자신이 딱히 한 일은 없고 그거 뭔가를 보았을 뿐이라고 느끼기에 어쩌면 세상이 보내는 칭송에 그들은 약간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해결책이 더 선명하게 보였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그동안의 경험을 연결하고 종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할 능력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경험했고 그 경험들에 관해 더 많이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행히도 이런 자질은 매우 희소하다.
우리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연결할 만한 점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당 문제를 폭 넓은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일차원적인 해결책들만 내놓을 뿐이다. 인간의 경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을수록 더 훌륭한 디자인이 나온다.
<스티브 잡스, 와이어드 (wired)지, 1995년 2월)>
서양 미학사에서 이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한 사람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는 <신학대전 제1권 제 45문에서 신의 창조를 주제로 삼는다. 그는 신만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 무(無)에서의 창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어서 84문에서 그는 인간은 '분리되거나 결합하거나 함으로써 사물의 여러 상을 형성하는 활동' 즉, 창의성이 있고 이 활동은 '감관에 의해 수용될 수 없을 법한 사물의 상' 까지도 형성한다고 말한다.
창의성이란 경험을 분리하고 결합해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상을 형성하고, 그 상은 보이지 않는 개념까지도 만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창의성을 키울 수 있을까? 그것은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데이비드 흄, 에드먼드 버크, 베르그송 등의 미학자들은 이 창의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예술의 창작 과정이라 말한다.
인류 최초의 회화 중 하나인 쇼베 동굴의 벽화를 한 번 생각해보자. 그 그림을 처음으로 그린 사람은 사냥 중에 본 소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는 물감을 이용해 그 소의 형태를 그린다. 즉, 그 그림은 소를 봤던 기억과 물감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 그림의 소의 모습은 실제 소와 비슷하게는 생겼지만, 완벽히 똑같지는 않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그 그림은 이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이다. 창조가 일어난 것이다.
연극을 한 번 생각해보자. 극작가는 이전에 겪었던 사건이나 인물들을 통해 가상의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 인물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상의 인물이지만 그의 성격이나 겉모습은 이전의 개념들의 결합이다. 그가 겪는 사건들도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사건이지만, 그 사건은 이전에 있던 여러 사건들의 결합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바로 시 문학이다. 우리들이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접해봤을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굉장히 유명한 문장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문장은 사실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어떻게 이름을 불렀는데 그가 갑자기 나에게로 와서 꽃으로 변한단 말인다. 하지만 왠지 이 문장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시인은 타인을 기억하는 과정과 꽃의 이름이 가진 이미지를 결합한 것이다. 우리는 고유의 빛깔과 향기로 꽃의 이름을 부른다. 예를 들어 장미의 모양과 고유의 향기를 통해 우리는 장미를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할 때 상대방의 외적, 내적 독특함으로 그를 기억한다.
이 두 가지의 경우를 결합해서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하는 새로운 문장을 완성한 것이다. 우리는 앞서 말한 꽃의 이름을 부르는 것,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 두 가지의 경우를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문장이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문장이고 논리적으로는 이질적일지라도 문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예술 창작은 이렇게 창의성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창작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고 훈련되어 지면 우리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단순히 이전의 경험이나 정해진 방법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창작하듯 새로운 상의 해결책을 창조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물건 뿐만이 아니라 인간 삶 자체에도 적용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정신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창의성이 없는 사람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던 대로 그 문제를 계속 가진 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창의성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일들을 연결하고, 종합해서 새로운 미래의 행동을 이끌어낸다. 창의성은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
정리를 좀 해보자. 스티브잡스의 창의성은 그동안의 경험을 연결하고, 종합하는 데에서 온다. 이것은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는데, 그 훈련에 가장 잘 적합한 것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의 창작활동 자체가 창의성을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창의성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예술을 좋아한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예술 활동을 함으로써, 혹은 예술을 이해 함으로써 창작의 즐거움을 맛 본 경험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