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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an 08. 2016

왜 나는 사랑을 시작하지 못할까? 에로스의 종말

성과주의 사회에서의 두근거림과 낯섦

나만 실패하는 사랑

사랑을 하다 보면 나만 사랑에 실패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히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삐걱 거리는 순간이 있다. 내가 바라고 기대했던 모습을 연인이 보여주지 못하고 충족시키지 못해 실망하고 이별한다. 옆 사람들을 보면  문제없이 알콩달콩 사랑하는 것 같다. 왜 나는 내 여자친구, 남자친구와 잘 안 맞을까? 우리는 정말 사랑일까?


한병철의 책


한병철의 새 책이 나왔다. 한병철의 책은 얇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는 갖가지 어려운 개념들로 책을 풀어낸다. 이번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토포스이니, 우울증과 나르시시즘, 성과사회, 제의가치 등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들은 아니다. 모르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읽는다. 그러다 보면 마치 번역하며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단어의 몰이해로 읽기의 흐름이 끊기면, 단어의 뜻을 알고 전 문장부터 다시금 흐름을 찾는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다 보니 이번 책도 100쪽도 안 되는 분량을 3일에 거쳐서야 읽게 되었다.


에로스


이 책은 에로스를 다루고 있다.  뭐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부분이지만 기본적으로 에로스는 육체적 사랑, 필로스는 지적 사랑, 아가페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에로스는 그냥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그 의미는 남녀 사이, 부모와 자식, 개인과 사회 어떠한 부분에 대입하여도 무관할 것 같다.  


성과주의 사회, 그리고 낯설음



한병철의 책들은 대부분 현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리고 난 뒤, 문제들과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비교하며 주장을 전개해나간다. 이 책 또한 현실의 사랑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먼저 소개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주류가 되면서 사회는 성과 지상주의가 되었다. 성과를 이뤄내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시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이제 사람들은 사랑을 '쇼핑'한다. 키는 몇 센티, 몸매는 어떻고, 직업은 무엇이며, 어떤 차를 타는지 등의 옵션을 확인하고 자신과 최대한 잘 '맞는'사람과 사랑을 비로소 시작한다.

한병철은 이렇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골라 만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정의한다. 나와 얼마나 비슷한가? 나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를 따지는 것은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이다.  이때의 사랑은 타인을 위한 사랑이 아니고 결국 나를 위한 사랑이 된다. 내 아내, 내 남편은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내 자신과는 모든 것이 원활하고 편하다. 내 의견에 내가 반대할 일도 없고, 내 가치관에 내 몸이 부정적일수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몸은 움직이고 내 삶은 흘러간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것은 아무 부정성 없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그 긍정성은 결국 나 자신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모든 것에 성과를 따지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또는 개인이 요구하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야만 그 사람을 존재로써 인식하고 인정하게 된다. 사랑에도 내가 정한 성과를 이룬 사람만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타자로 인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감정의 혼돈과 나와 다름으로 인한 부정성으로부터 오는 알지못할 두근거림도 만약 자신이 정한 성과에 도달하지 못하면 차단한다.   

반면, 저자가 말하는 사랑은 '낯설음'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다른것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라 말한다. 타자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와 소통하려 노력하고,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하여 사랑이 이루어 진다. 그는 철저히 사랑이란 것은 '타자'를 인정함으로써 시작 된다 말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감정의 동요가 있고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있는 것이다. 사랑은 그 낯설음을 인정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역할과 성과



한병철의 책이 나에게 사랑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책은  현 시점에서 나도 모르게 휩쓸려가고 당연하게 여기던 사랑의 가치관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해주었다. 문득 카프카의 단편 「변신」이 생각난다. 벌레로 변해 버려 가장, 아들, 그리고 오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레고리. 성과를 내지 못하는 그레고리를 부정해버리는 가족들. 결국 죽어버리는 그레고리. 어느날 문득 다가온 두근거림과 요동치는 감정을 역할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 마음속에서 단절하고 죽인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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