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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Aug 14. 2022

나는 이 그림은 다른 어떤 그림과도 안 바꿀 거예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극찬한 호안 미로의 작품

나는 이 그림은 다른 어떤 그림과도 안 바꿀 거예요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그림을 보고, "세상의 어떤 그림과도 이 그림을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스페인의 화가 호안 미로의 작품 '농장'인데요. 



헤밍웨이는 왜 호안 미로의 그림을 이토록 높게 평가했을까요? 그리고 호안 미로의 그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우리는 과거를 끊어내지 못해서 손해 보는 것들이 많습니다. 과거의 성공, 헛된 희망, 남들의 방법, 정형화된 기술 이런 것들로 스스로를 한계지으면 결국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실패하고,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죠.



그렇다고 증명되지도 않은 새로운 기술을 무작위로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이전의 것을 버리고, 새것을 행하기에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움이 앞서죠.


호안 미로의 그림은 이렇게 과거에 얽매이고 성장이 멈췄음에도 자신의 독특함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사람들에게 도전적이면서도 독특함을 유지하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호안미로의 독창적인 화풍


우리는 화가를 소개할 때 흔히, 이 사람은 입체파 화가야, 이 사람은 야수파 화가야, 이 사람은 초현실주의 화가야 라는 식으로, 이 화가가 어떤 사조 화풍의 화가인지를 밝힌다.


그런데 호안 미로라는 작가를 평가할 때에는 이 사람이 어떤 사조의 화가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떨 때에는 이 화가는 극사실 주의이기도 하고, 야수파적이면서, 입체파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초현실 주의의 수장 브루통으로부터, 는 가장 초현실주의를 잘 나타낸 화가라는 평가를 들으니 말입니다.


초현실주의, 야수파, 입체파 적인 성격의 호안미로의 그림들


그런데, 많은 평론가들은 호안 미로를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가진 화가라고 평가합니다. 여러 화풍을 쓰는 것은 분명 줏대 없는 것일 텐데, 아이러니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니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호안 미로는 1893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몬토로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카탈루냐 지방은 지중해에 임한 스페인의 항만 도시입니다. 때문에 타지방과는 다르게 외부의 영향과 관념을 거리낌 없이 잘 수용하는 지방이었죠. 



호안 미로 또한 이곳에서 자란 덕에 새로운 학문과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미로는 유년시절 바르셀로나에서 피카소, 가우디 등 이전 세계의 양식에 얽매이지 않는 도전적인 예술가들의 모습을 경험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입체파, 야수파, 초현실주의 등 화풍에 얽매이지 않는 그림을 거부감 없이 그릴 수 있었죠.


그러한 그의 화풍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농장'입니다


농장 (The Farm)


Joan Miró, <The farm>, 1921–1922, Oil on canvas, 123.8 cm × 141.3 cm


이 작품은 호안 미로의 고향 몬토로이크의 한 농촌의 풍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작품 안에는 굉장히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묘사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원근법은 파괴되어 있고, 색채는 자유분방하다. 그림을 바라보는 시점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고, 꿈에서나 볼 법한 상징이나 구도가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한 그림 안에, 사실주의와 입체주의, 야수파, 초현실주의가 섞여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관통하는 주제는 명확하죠. 바로 모토로이크의 농장과 그 안에 보여지는 자연입니다. 


호안 미로는 이 자연 특히, 땅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에서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식물, 동물, 곤충들이 주된 주제를 이룹니다.


자연을 주제로 한 미로의 작품들


그는 자연의 작은 먼지 하나에도 혼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어린아이의 눈으로 아무 제약 없이 관찰함으로써 인간의 성장이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용기란 우리의 불행을 묵살하는 자연의 바로 곁에서 자기 자신 속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먼지 하나하나에도 훌륭한 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이고 미술적인 감각을, 즉, 원시적인 감각을 다시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호안미로-


사실 화가가 화풍을 바꾸거나 섞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닙니다. 이미 하나의 화풍으로 성공을 했기에 그 방법으로 계속 그리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새로운 화풍은 내가 잘하던 것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호안 미로는 이미 초현실주의로 많은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잭슨 폴록이나 마크 로스코 등 미국의 젊은 작가들과 교류하며 프랑스적 비정형인 앵포르멜도 구사했을 정도로 도전적이며, 변화를 긍정하는 화가였습니다.


새로운 기법들이 가미된 호안 미로이 후기작품들


그에게 양식은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자연을 가장 세밀하게 묘사하고자 하는 도구일 뿐,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호안 미로라는 작가를 새로운 것을 도전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주제를 가진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가진 화가로 만들었다. 


자신이 자랐던 모토 로이크의 농장의 모든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표현기법의 한계를 두지 않은 그의 그림을 보고 헤밍웨이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스페인에 갔을 때 스페인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고, 스페인에 없을 때나 스페인에 갈 수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도 들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다른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헤밍웨이-



익숙함을 끊어내는 것



127시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랜드 캐년의 바위 사이에 팔이 낀 남자의 127시간을 다룬 영화입니다. 구조를 요청해도 답이 없고, 팔은 빠지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그는 바위 사이에 낀 팔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과거의 성공과 실패, 정형화된 기법들은 어쩌면 바위 사이에 낀 팔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목숨을 잃을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대로 있으면 성장의 기회는 없죠.


영화에서 남자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팔을 잘라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직접 팔을 부러뜨리고, 신경을 늘려 팔을 절단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살아납니다.



우리도 결정해야만 합니다. 그 결정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 팔을 부러뜨리고, 신경을 늘려 팔을 절단하는 고통과 같을 것이죠. 아마 우리는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변화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결단은 호안 미로처럼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지를 깨닫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방법이 여러 가지일지라도 사람들은 당신을 독창적이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스페인 농장의 자연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가치가 드러남에도 여러 양식 때문에 그것들이 다각화되고 독특하게 보이는 것 아마도 이것이 헤밍웨이가 미로의 그림을 다른 어떤 그림보다도 높게 평가한 이유일 것입니다. 


*위의 글은 유튜브에서도 감상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2bRRK-lNK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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