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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an 27. 2022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같은 그림이 왜 예술적일까?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회 가기 전 읽으면 좋은 글


예술에는 가끔 이게 도대체 왜 예술이지? 하는 것들이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의 그림은 그저 만화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긴 모습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예술가다. 대체 이런 만화를 그린 그림이 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그림이 예술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이전의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직전인 1950년대의 현대 예술은 굉장히 어려운 예술이었다. 당시 예술의 주류는 잭슨 폴록을 비롯한 표현주의 추상이었다. 


이 표현주의 추상은 작품에 대한 배경이나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존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작품 안에 존재하는 구도나, 색, 공간, 재료의 특성을 더 중요시한다. 


리히텐슈타인의 추상화


로이 리히텐슈타인도 처음에는 이러한 형식주의에 편승해서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예술, 삶과 관련이 없는 표현주의의 모습에 지쳐갔다. 


예술이라면 분명 보편적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그림들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본인도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그림들이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와 관련이 있나?라는 질문도 한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은 점점 더 현실 세계와의 관련을 잃고 내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현실 세계는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러면서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그림의 주제를 1960년대 미국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광고 전단, 잡지, 만화책 등으로 잡기 시작한다. 이것들은 원작이 프린트되거나 사진으로 찍힌 2차 가공물이었다. 


그래서인지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처음 보여주면 그냥 만화나 잡지를 프린트한 것이 무슨 예술이냐고 묻는데, 이것들은 모두 회화작품이다.


예술가가 본체인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2차 가공물을 그린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다. 플라톤의 철학 이래로 원본을 가장 원본답게 그리는 것들이 중심이던 서양미술이 점점 원본을 해체하면서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해왔는데, 리히텐슈타인의 작업은 원본을 복제한 부산물을 작품으로 그리는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이 행위가 뭐가 그렇게 의미가 있는데?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 두 번째 이유가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그 행위 자체가 당시의 미국 사람들의 소비 방법을 비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미국은 TV, 신문, 잡지 등의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제2차 가공물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실제 샤넬 백을 보지 않더라도 tv 광고나 잡지 광고를 통해 샤넬백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 샤넬백을 직접 사용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상품인지는 안다. 그 지식은 광고를 만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품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결국 그 샤넬백을 직접 사는 사람들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원본이 아닌, 매스미디어에 의해 재가공된 원본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당시 미국인들의 소비패턴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포스터나 제품 사용 설명서, 광고, 표백제 병에 붙어 있는 그림들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결코 실제 사물을 직접 보고 그리지 않는다. 그는 맥주 캔을 그릴 때조차도 맥주 캔이 그려진 그림을 기초로 해서만 그린다" - 리오 카스텔리


그중에서도 만화는 이미지를 만드는 가장 과장되고 기호화된 표현 방법의 하나다. 만화는 한눈에 무엇을 그렸는지 눈치챌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을 그린다. 



이것은 작가의 개성과는 상관이 없다. 대중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웹툰을 볼 때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작화가 별로라고 말한다.


만화는 독자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표현해야 한다. 만화에서 보이는 획일화되고 진부해진 표현 방식은 미국의 현대 소비 사회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이 가지는 세 번째 예술적 가치는 바로 이것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상품의 소비가 아닌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위는 어쩌면 20세기 중반 미국보다 현재가 더 심한 것 같다.


아까 잠깐 샤넬 백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현대의 사람들이 샤넬 백을 구매하는 이유는 샤넬백이 가진 실제적인 기능보다는 이미지적인 기능 때문에 구매한다. 


게다가 인터넷 거래가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소비는 실제적인 물건보다는 이미지에 더 기댈 수밖에 없어졌다. 우리는 점점 실제적인 것보다는 생산자가 발행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미지의 소비는 사유의 과정도 이미지의 사유로 바꿔버린다는 점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백번 씩 유튜브를 비롯한 SNS 매체, TV, 인터넷 등에서 누군가에 의해 가공된 사실을 마주한다. 


그것이 실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인 양 사유한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우리는 창의력을 점점 잃고, 만화의 세계에서처럼 진부한 사고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작화가 안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그 생각은 틀렸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정리를 좀 해보자.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적 그림이 가지는 예술적 가치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이것이 이전의 관습을 깨는 행위였다는 점, 두 번째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소비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것이 지금 우리의 삶에도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 점들을 기억하고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관람한다면 조금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글과 예술, 미학에 대한 글은 유튜브에서도 감상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zRiY1U2qV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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