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술호근미학 Mar 26. 2023

술로 웃음을 얻는 방법

가만히 있었는데 나는 우월해졌다

아침에 전화가 왔다. 어제 전시 모임을 가진 후, 저녁에 참여자들과 2차로 술을 마셨다. 그 때 중간에 많이 취해서 먼저 집에 간 A의 전화였다. 


"호근님, 혹시 어제 제가 어떻게 집에 갔나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어제 그녀는 화장실에 간다고 나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토를 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를 챙기러 갔고, 걱정이 돼서 나와보니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만취해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새하앴다. 상황이 좋아보이지 않아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얼른 그녀를 데리고 집에 가라고 했다. 


아마도 그녀는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구토를 더 했나보다. 집에 와서 보니 자신의 코트가 아닌 남자친구의 코트를 가지고 있었고, 그 코트에는 토사물이 묻어있었다고 했다.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실수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에 남자친구에게 전화하기 전 나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이 어땠는지를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점심 쯤 다른 이에게 문자가 왔다. 어제 2차 자리를 소개해 준 B의 문자였다. 


"형, 괜찮아요.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


어젯밤, B는 소개해 준 바에 직접 찾아왔다. 나는 그저 인사만 하러 오는지 알았더니 함께 자리를 하고 싶다고 물었다. 나는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B는 평소처럼 여러가지 술을 시키고 사람들과 나눴다. 모인 멤버들이 술을 좋아하다보니 신이 났었나 보다. 알고보닌 B는 그 바의 사장이었다. 


B는 여러분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자신이 술을 산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비싼 술들을 여러 병 시켰자다. 계속해서 나를 위해서 자신이 술을 산다고 말했다. 내가 이 친구에게 이렇게 할만큼 잘해준 것이 없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그는 집에 가는 길에 나에게 20만원에 퉁치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때서야 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사실 30만원 40만원을 불러도 돈을 줄 생각이었다. 허세가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B를 택시 태워서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서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괜찮다고, 자신이 산 거로 하자고 했다. 


오후 쯤에 C에게 전화가 왔다. 


"호근님, 제가 어제 기억이 안 나는데 혹시 무슨 실수들을 좀 했나요?"


그는 어제 모임에서 만취한 채 여러가지 실수를 했다. 컵을 깨기도 하고, 자꾸만 했던 이야기를 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스킨쉽을 했다. 가장 맨정신이었던 나는 그를 제지하고 다시 말해주고 하며 그를 통제했다. 시간이 지나서 그를 택시 태워 집에 보냈다. 


그는 새벽 2시에 종합운동장에서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그 사이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원이 집인데 아마도 취한 상태에서 종합 운동장에 가자고 했나보다. 그래서 어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니, 자신의 잘못이 많았다고 인정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들이 나에게 연락을 한 이유는 첫 번째로는 내가 모임의 주최자였기 때문이다. 전시호근살롱이라는 전시모임을 통해 잔시를 같이 보고, 식사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주최자가 나였다. 두 번째로는 내가 가장 맨 정신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어제는 식사를 하면서 와인 반 잔을 마신 게 다였다. 그러다보니 나만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상태였다. 


오늘 3번의 연락을 받으면서 이 상황들이 한 편의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취한 3명은 자신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숨겨왔던 자신의 약점과 욕망들이 드러났던 것에 대해 실수라고 여기며 사과한다. 그 사과의 대상은 맨정신이었던 나다. 


가만히 있었는데 만취한 그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선다. 만취헀던 자들은 도덕적인 이성으로 잘 가리고 있던 약점과 욕망이 드러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스스로를 낮춘다. 나는 그들을 비난한 적이 없음에도, 그들은 스스로 죄책감을 가졌다. 얼마나 코미디 같던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청중들은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고, 우스꽝스러움의 원천은 추함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웃음은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들을 보며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토마스 홉스는 갑작스러운 득의양양함이 웃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무언가 추한 것을 보고 그것을 자신과 비교해 자신을 갑작스럽게 칭찬할 때 웃음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어제까지만해도 나는 그들이 열등하고 우스꽝스러우며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술과 분위기를 즐기는데, 나만 물과 콜라를 마시고 있으니 잘 어울리지 못하나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3번의 연락을 받으며 그들은 스스로를 열등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가만히 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사과를 받음으로써 우월함을 가지게 되고, 이는 웃음으로 연결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