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있으면 나도 김승호 회장이 될 줄 알았지
"이게 바로 킵초게가 신었던 신발이야~!"
"우와~"
현존하는 최고의 레이싱화 '나이키 알파플라이 3'을 샀다. 러닝을 시작하고 나니 이전보다 더 잘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잘 달리려면 당연히 신발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존하는 가장 좋은 마라톤화를 알아봤고 알파플라이 3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세계적인 마라토너 킵초게가 이 신발을 신고, 비공식 기록이지만 2시간 이내에 풀코스를 뛰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인지, 신발의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그 신발을 신으면 나도 킵초게처럼 빨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신발을 50만 원에 구입했다. 신발은 가벼웠고 지면에서 나를 밀어주며 통통 뛰게 만들었다. 이 신발만 신으면 기록 단축은 순식간일 것 같았다.
생애 첫 마라톤을 뛰는 날 나는 알파플라이 3을 꺼냈다. 그리고 30km가 지날 무렵 다리에 쥐가 났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걷기조차 힘들었고 결국 나는 중도포기를 했다. 호송차량에 실려가며,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고민했다. 후에 알고 보니 알파플라이 3을 비롯한 카본 플레이트가 있는 신발들은 초보들이 신는 신발이 아니었다. 카본의 탄성이 좋아서 운동화가 추진력과 반발력이 좋지만,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근력이 없으면 몸에 무리가 생긴다. 나는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근력이 없는 상태에서 그 신발을 신고 마라톤을 뛴 것이고, 당연하게도 몸에 무리가 생겼다. 아무 신발이나 신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마라톤은 각자의 발달 속도와 근력에 따라 신는 신발들이 나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전혀 몰랐다.
사업을 하면서도 같은 일을 겼었던 경험이 있다. 사업을 시작하고, 어떻게 하면 사업을 더 확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장님들의 필독서들을 찾아서 읽었고, 그중에서 스노우폭스를 8000억에 매각한 김승호 회장의 '사장학 개론'을 읽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장사와 사업은 다르다"라고 이야기한다.
장사는 오늘의 매출, 당장의 수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반면 사업은 ‘내가 빠져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나는 1인 기업으로 시작을 했다. 덕분에 모든 사업 구조가 내가 빠지면 안 되는 구조였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내가 하는 것은 장사에 머무르는 단계다. 그래서 직원을 뽑고, 내 일들을 위임해야겠고 생각했다. 그럼으로써 내가 일하지 않고 빠져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직원을 뽑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직원을 통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일단 채용부터 진행했다. 수많은 스타트업의 신화처럼 직원들과 시스템은 만들어나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직원이 있으면 김승호 회장이나 다른 사장들처럼 나도 훌륭한 사업구조를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적중하지 않았고, 결국 1년 만에 모든 직원들이 그만두거나 해고당했다. 내 사업에 쥐가 난 것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사업에도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단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업의 구조를 만들려면 직원을 먼저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 시스템 안에 어떠한 사람을 집어넣어도 사업 구조가 굴러갈 수 있어야 한다. 시스템은 마라토너의 근육과 같다. 근육이 받춰져 있는 사람은 어떠한 신발을 신어도 잘 달린다. 하지만 근육이 없는 사람에게 너무 좋은 신발은 오히려 독이 된다. 사업에서 신발은 직원들이다. 아무리 좋은 직원들이 들어오더라도 시스템이 잘 받춰지지 않으면 오히려 무리가 생긴다. 반면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다면 누가 들어와도 사업은 굴러간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아직 사회 경험이 없는 상태임에도 매뉴얼이 잘 되어 있으니 금세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고 일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에는 내가 일을 잘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라톤 신발에 근육 발달에 따라 단계가 있듯이 사업에도 단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