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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프레임 (Unframe)

인생과 달리기는 프레임 짓고 부수는 행동의 연속이다

by 예술호근미학

우리 회사의 이름은 언프레임 원격 학원이다. 언프레임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프레임은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그 프레임을 부서 버리는 행동이다. 굳이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왜 그 프레임을 부수냐고? 이 이름이 생긴 게 된 계기가 있다.


2023년 12월 달리기를 시작했다. 살면서 언젠가는 풀코스를 1번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지 6개월 도 안 돼서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다. 그모습을 보고 같이 달리기를 시작했던 아는 형이 그러다 ‘세계 7대 마라톤 뛰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나는 ‘해외 마라톤은 나중에 5년 후나 뛰워 보지 않을까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 2025년 나는 벌써 세 번의 해외 마라톤을 뛰었고 앞으로 세 번의 해외 마라톤을 더 뛴다.


나도 사실 이렇게 마라톤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달려 보니 그 기분이 정말 좋았고 다음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니 이전에는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트레일 러닝을 하고 왔다. 예전에 제주도에 아는 대표님들과 놀러 갔을 때 트레일 러닝 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중에 호근이도 저렇게 뛰고 있는 거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유, 제가 저런 분들을 어떻게 따라갑니까? 저 사람들은 완전 다른 종족인 거 같아요’.라고 대답을 했던 내가 30킬로가 넘는 거리, 산 3개를 뛰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기록을 재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나의 한계를 정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 한계들을 극복하는 달리기를 했다. 예를 들어 십 킬로를 뛰고 너무 힘들었을 때 ‘나는 십 킬로까지야 하프는 힘들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계속 뛰다 보면 그것은 적응되고 어느 순간 하프를 뛰고 있다 하프를 1번 뛰고 나면 다리도 아프고 굉장히 힘들어서 풀코스는 도무지 못 들 거라 말한다. 하지만 또 막상 뛰어 보면 풀코스도 뛰게 된다. 풀코스를 1번 뛰고 나면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못하고 몸이 너무 아프다. 그런데 8번의 풀코스를 뛰고 나니 아침에 풀코스를 뛰어도 오후에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같이 달리기를 시작한 친구들은 여전히 십 킬로를 못 뛰는 친구도 있고 하프를 못 뛰는 친구도 있다. 그중에서 풀코스를 다 뛴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심지어 그 무리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친구들과 나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풀코스를 뛰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대단한 사람들이 라고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은 무리야’ 라고 미리 한계 짓는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점점 그러한 프레임들을 깨보니. 어느 순간 그들과 다른 러너가 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이 내 삶의 한계였다. 부모님이 벌어 들이는 월급이 내 미래의 월급의 기준이었다. 돈을 버는 방법 또한 학교와 부모님이 알려 주는 회사의 일 원이 되는 것이 한계였다. 하지만 그 프레임을 벗어나 외국에 나가 보고 새로운 직업을 경험하고 회사원이 아닌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도 사업을 하고 있다. 나의 삶은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을 깨부수는 행동의 연속이다.


최근 금강경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금강경에서는 상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상을 짓지 말라’는 말은 단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건 결국 우리가 스스로 만든 한계를 의심하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늘 ‘상’을 만든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건 불가능해. 이건 나와 안 맞아. 그 생각 하나가 삶의 벽을 만든다.


나 또한 그랬다. 부모님의 삶이 내 미래의 기준이었고,

학교가 알려준 길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그 안에서 ‘나’라는 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만 꿈꾸었다.


그런데 그 상을 하나씩 부술 때마다, 세상은 달라졌다.

해외에서 새로운 직업을 보고, 직장 밖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상은 현실이 아니라, 믿음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걸.


결국 금강경의 ‘무상(無相)’은 ‘아무 틀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네가 만든 틀을 의식하고 벗어나라’는 초대다.


나는 그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언프레임(Unframe)’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무엇이든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시 정의되는 삶. 그게 내가 말하는 언프레임의 시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이승택이라는 작가가 있다. 이 작가는 기존에 캔버스라는 프레임 안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캔버스 자체를 활용한다. 캔버스의 한쪽 면이 왜곡되거나 캔버스를 줄로 묶었을 때 그 줄에 의해서 그것이 찌그러지는 모습 등의 조소 작품을 만든다. 완전한 프레임에서 벗어난 언프레임 작품인 것이다.


예술의 발전은 언프레임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있지만 그 프레임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고 그 프레임을 벗어났을 때 나는 성장하고 발전한다. 오늘도 기대가 된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프레임 웨이 어떻게 깨지게 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더 성장할까 기대가 되는 하루다












언 포프레임

무한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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