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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8월에 가볼만한 전시'라는 글을 썼더니만 다음 메인페이지에 떴어!"
주목받아 흥분된 마음에 A에게 자랑질을 했다.
"아 그래? 가볼 만한 전시가 뭐뭐였는데?"
"모딜리아니, 이쾌대,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앤디워홀"
"야 앤디워홀 빼고는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A의 지식에 놀라고 말았다. 당연히 앤디워홀도 모를줄 알았는데... 나는 그에게 다섯 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전시회에 가야 하는 이유들을 설명했다. 그러자 A는 나의 지루한 이야기를 끊고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앤디 워홀전은 가보고 싶네. 나 그 사람 그림은 뭔지 알고 있거든.
마돈나 그림이잖아."
"호근아. 그런데 나는 앤디 워홀이 왜 유명한지 이해가 안돼. 그냥 마돈나의 얼굴을 그린 거잖아. 이상한 색으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이유가 있긴 있어. 그리고 마돈나가 아니라 마릴린 먼로야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은 앤디 워홀이라는 화가를 안다. 그의 그림은 여러 광고에도 등장했고 한국에는 매년마다 전시회가 열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앤디 워홀의 그림이 '왜' 유명한지 알지 못한다. '예술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거야'라고 치부하기에 앤디 워홀의 그림은 난해하다. 물론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겠지만 (나는 그래도 스토리가 있어야 더 즐겁더라) 만약 누군가 워홀의 그림을 보고 '붓의 터치가 살아있고 그의 그림에서는 분노와 절망이 느껴져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 대~~단한 감성을 지닌 감상자일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시인들 중 크게 주목받는 두 명의 시인이 있다. 한 명은 윤동주이고, 다른 한 명은 이상이다. 두 시인 모두 우리 문학사에 있어 훌륭한 업적을 남긴 시인인데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은 사뭇 다르다. 먼저 윤동주의 시는 읽기만 해도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시들이 대부분이다. 윤동주의 시는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하면 된다.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전해 오는 감동이 있다. 반면 이상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어와 행들에 숨겨져 있는 기호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이전의 화가들은 시각만으로도 감상이 가능했지만 현대 화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알아야만 한다.
앤디 워홀이 유명해진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그의 기이한 행동도 있었고 작품을 생산(?)해내는 방법의 특이한 점들도 한 몫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앤디 워홀이 유명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시뮬라크르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브런치니까 내 맘대로). 그의 그림에 시뮬라크르에 대한 개념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는 그저 기이한 화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뮬라크르는 무엇일까?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자신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의하면 '시뮬라크르는 존재하지 않지만 아니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것들을 말하며,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가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 동사이다.'라고 하는 한마디로 굉장히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다. 뭐라는 거야 대체..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히 인식이 된다고?
이 어려운 개념을 단순화 하기는 힘들지만 앤디 워홀의 작품을 설명하는데 있어 나름대로 말하자면 "복제를 복제한 복제"와 "미디어라는 필터를 거쳐진 이미지로써의 원본"이라고 말하고 싶다. (쓰고 나니 좀 어렵네) 앤디 워홀의 그림 중 상당히 유명한 그림인 코카콜라를 한번 보자. 그림에는 녹색의 코카콜라병들이 Ctrl+c, Ctrl+v 되어져 있다. 대체 이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기계가 발달함에 따라 이제 더 이상 '원본(Original)' 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똑같은 규격을 가진 똑같은 물질의 복제품들만이 생산될 뿐이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마시는 코카콜라와 라스베이거스 MGM 호텔에서 마시는 코카콜라의 맛과 향은 똑같다. 그 이유는 세계 곳곳의 공장에서 "같은 레시피"의 콜라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마시는 코카콜라를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코카콜라의 복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코카콜라는 존재하는가? 그것은 없다. 코카콜라라는 개념만 있을 뿐이다.
앤디 워홀의 그림 중 가장 비싼 그림은 무엇일까? 답은 '8명의 엘비스'이다. 가격은 무려 1200억 원이 넘는다.
워홀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사진 또는 유명인의 사진들을 작품으로 많이 남겼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디어가 발전함에 따라 시뮬라크르는 비단 제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람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엘비스를 이해할 때 엘비스가 실제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어떤 차를 몰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tv 속에 나타난 엘비스의 옷차림, 역할, 성격을 가지고 '이미지'로써의 엘비스를 이해하려 한다. 앤디워홀은 이렇게 실재보다 더 실재같은 이미지로 이해가 되는 슈퍼스타의 모습을 작품으로 옮겼고, 당시 시대의 모순을 작품에 담아냈다.
한 인물이나 스토리가 구전되는 과정에서는 '과장'이나 '축소'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일대 다수를 상대로 하는 미디어로 옮겨진다면? 이중 삼중의 과장이 생기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럴수록 한 인물은 자신의 모습과 다른 이미지 때문에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존재로 상정된다. 그 가운데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어 파멸되기도 하고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이 아닌 가면을 벗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연예계에서 흔히 일어나고 성인들의 정치세계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워홀의 '리즈'와 '마오', 그리고 '체 게바라'; 미디어 필터에 의해 걸러진 스타들과 정치인들은 '그들의 삶'을 살까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살고 있을까? 마릴린, 엘비스와 함께 이들은 굉장히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의 그림은 아직까지도 사랑받는다. 시대를 대변하는 그림이라면 시대를 지나고서는 인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여전히 인기가 높다. 그 이유는 그의 그림이 현시대를 오히려 더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60, 70년대 매스 미디어의 권력은 SNS라는 거대 필터로 바뀌었다. 미디어가 스타들과 정치인들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필터였다면 SNS는 개인이 대중에게 본인을 드러내는 필터로 자리잡았다. 워홀이 이야기 한것처럼 지금은 15분 안에 모두가 유명해 질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문제는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뮬라크르가 지속해서 일어나고 스타와 정치인 뿐 아니라 개인들도 자신이 아닌 이미지로써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개인은 SNS의 '좋아요'를 받기 위하여 대중을 만족시키는 사진과 글을 SNS에 게재한다. 주목 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자신의 영상과 앵글에 나타나는 미장센들을 편집한다. 어라? 그런데 이 미장센들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것은 '복제'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입었던 옷, 등장하는 배경 등 어디선가 익숙한 것 우리 안에 거북함 없이 긍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미장센으로 등장한다. SNS 유저들은 매스미디어에서 보여준 익숙함을 이장센으로 삼고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낸다. 그럼으로써 오리지널의 내 자신은 사라진다. 내가 입는 옷, 내가 가는 배경은 없다. 점점 '좋아요'를 획득할만한 인물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SNS에서뿐만 아니라 실재에서도 시뮬라크르는 일어난다. 사람들은 옷차림과 미의 기준을 복제한다. 자신이 진짜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미디어에서 아름답다고 하기에, 공장에서 찍혀나오는 콜라병처럼 똑같은 미의 기준을 갖게 된다. 심지어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사랑을 규정하고 포르노를 통해 섹스를 배우기까지 한다. 나의 내면을 인정하는 아름다움이 없는 시대. 복제되어진 삶이 내 이미지가 되어버리는 시대. 그렇기 때문에 앤디워홀의 그림이 더욱 각광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앤디워홀의 전시회 관련 게시글: 8월에 가볼만한 전시 https://brunch.co.kr/@hogeunyum/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