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네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술호근미학 Aug 22. 2015

김영하의 「말하다」, 그리고 '쇼미더머니'

#김영하, #말하다, #show me the money, #벽, 

나는 지적 열등감 때문에 책을 읽을 때가 있다.


김영하

"저는 김영하씨를 좋아해요."


순전히 김영하를 읽게 된 것은 저 말 때문이었다. 대학교 2학년일 적에 독서토론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긴 생머리에 하늘하늘 거리는 쉬폰 스커트를 입은 우리조의 국문과 여학생은 대뜸 나에게 김영하가 좋다고 말했다. (왜 나는 아니고?) 그러면서 자신이 읽었던 김영하의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읽어본 적 없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 하니 마치 내가 그녀보다 지식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어찌나 고깝던지...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구입했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김영하의 책은 나를 그녀와 같은 지적수준으로 만들어줄 도구라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밑줄 하나 그을 새도 없이 책에 푹 빠져 한 권을 뚝딱 읽었다. (사실 이 책은 굉장히 얇다) 그의 책은 재미있었다. 지적수준을 올리고 자시고 그냥 재미있었고, 남들이 쓰지 않을법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신선했다. 그 이후로 김영하라는 이름은 책을 사는 지표가 되었다. 그가 어떤 장르와 제목, 출판사에서 책을 내던 상관치 않았다. 그의 이름은 나의 지갑을 여는 열쇠였다.

이번 책도 다른 이유 없이 김영하라는 이름때문에 구입했다. 책이 어떤 내용인지 장르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않았다. 물론 작년에 나온 김영하의 「보다」에서 작가가 앞으로 시리즈를 낼것이라 밝혔던 것은 기억한다. '보다, '말하다', 그리고 '싸다'였었나?...


김영하의 「말하다」


김영하의 신작 「말하다」


김영하의 신간 「말하다」는 작가의 인터뷰, 대담, 강연 등을 문서화하여 주제에 맞게 배열한 책이다. 작가는 삶, 문학, 글쓰기라는 주제를 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힐링캠프, TED 등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내용도 있고 작은 잡지사에 실린 인터뷰 또는 외국 학교에서 했던 강연내용 등 독자가 접하기 힘든 내용들도 담겨 있다.

김영하는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살으라 충고하지 않는다. 그는 삶은 빡빡하고, 바쁘며, 갑갑한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다는 것도 동의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필요한 자세는 비관적 현실주의라 말한다.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비관적 현실 가운데서 쓰러지지 않게 자신을 지탱해줄 기둥이 필요한데 작가는 그 기둥이 책이었다고 고백한다. 책은 다른 세계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주고 그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책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날만한 일들을 미리 겪음으로써 타인을 이해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 빡빡한 삶에서 책이라는 기둥을 붙잡고는 살지만 그 갑갑한 마음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김영하에게 있어 그 유일한 방법은 글쓰기이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가장 잘하는 것이며 유일하게 김영하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길이다. (글로 살아가는 분이시니)


나는 어떻게 살지?


이 책을 읽으면 꼭 모두가 책을 읽고,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우리는 김영하와 동시대를 살아간다. 그가 이야기 하는 존엄이 없고, 희망의 총량이 사라졌으며, 세대의 갈등이 있는 빡빡한 그 시대.  우리는(적어도 나는) 그 시대를 어떻게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 지 모른다. 그리고 어떻게 이 갑갑한 마음을 풀어야 할 지 모른다. 김영하는 그것을 책이라는 기둥을 붙잡고 잘 버텨나갔고 글쓰기를 통하여 갑갑한 마음도 풀었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도 글을 쓰면 이 갑갑한 마음 좀 나아지려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김영하 말고 여기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또 있다.


랩이라는 기둥을 붙잡으며 마이크로 풀어내는 가슴, 

'쇼미더머니'


블랙넛, 송민호, 베이식, 이노베이터 (좌측부터)


방송이 지속될수록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권을 휩쓸고 음원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가 바로 그것이다. 실력있는 랩퍼들을 선별하고 그들을 경합시키는 이 tv프로그램은 올여름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화제이다. 비록 시청률은 2~3%밖에 나오지 않지만 (케이블 방송이 이정도이면 꽤 높은 편이지) 이 프로그램이 10대와 20대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아이러닉하게도 이 대중적이고 자극적인 소스를 사용하는 TV프로그램에서 나는 김영하처럼 살아가는 인물들을 발견한다. 8월 21일 방영되었던 세미 파이널에서는 베이식, 이노베이터, 송민호, 블랙넛 네 명의 래퍼가 경연을 펼쳤다.  우연히도 이 날은 네 명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랩을 했다. 자신이 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 꿈을 내려놓고 살다가 다시 꿈을 위하여 시작한 이야기, 일찍이 들여놓은 연예계에서 느낀 실질적인 감정,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는 고백 등등. 경연에 참여한 래퍼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갑갑한 마음과 감정, 철학을 마이크를 통하여 비트에 맞춰 토해냈다. 정말 구역질이 날 때처럼 멈출수 없어 어쩔수 없이 토해낸 것처럼 그들은 랩을 했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래퍼들은 빡빡한 삶을 랩이라는 기둥을 붙잡고 살았으며 마이크를 통하여 그들의 갑갑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들이 랩을 끝냈을때 승패에 상관 없이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해했고 만족스러워했다.


나에게도 벽(癖)이 있었으면


 모두에게는 벽이 있다. 도벽, 주벽, 정리벽 등등... 

이 벽들은 과하면 병이 되지만 어느 정도는 자신의 삶을 미적지근하지 않게 만들며 만족케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김영하의 신작 「말하다」에서 작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분명 작가가 살고 있는 세상과 똑같은 시간과 제도안에 사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붙잡고 어떤 채널을 통하여 나의 갑갑한 마음을 풀며 살고 있을까? 한 편으로는 랩을 붙잡고 마이크로 자신의 마음을 풀어내는 '쇼미더머니' 속 래퍼들이 부러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