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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May 18. 2018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성 혐오 사회, 여성 인권

몰래카메라 사건과 강남역 사건 2주기


얼마 전 여성 유저들이 많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남성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한 영상이 게재되었다. 이 영상에는 남성의 성기를 비롯하여 얼굴까지 적나라하게 녹화되어 있었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돌입하여 게재자를 적발하고 구속한다.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과 수사 이후의 반응들이다. 그 사이트의 유저들은 게시물의 남성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악성 댓글들을 서슴지 않고 달았다. 그 정도는 본인이 수치심을 넘어 존재감을 상실할 정도로 심각했다. 또한 수사가 이뤄지고 사건이 종결되자 남자가 피해자이기에 수사가 빨리 이뤄졌다는 비판이 생겨났다. 몇몇은 여자였으면 피의자를 잡을 생각도 안 했을 거고 수사도 늦게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억측을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강남역 사건 2주기 행사라는 것도 열렸다. 2016년 서초구의 상가 화장실에서 어떠한 괴한이 아무 이유 없이 여성을 살해했다. 피의자는 1시간 30분 동안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6명의 남성이 지나가는 동안 아무 일도 벌이지 않다가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후에 취조 과정에서 처음부터 화장실에 들어오는 여성을 살해할 목적이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담당 프로파일러가 피해자는 여성에 대해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자, 사건은 여성 혐오자에 의한 사건으로 해석되었다.


이에 여성들은 분노를 공분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자이기에 당했다는 포스트잇과 촛불들이 설치되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강남역 사건'으로 불리게 된다. 올해 사건 이후 2주기를 맞이하여 강남역 사건 2주기 행사가 열렸다. 많은 시민단체와 여성단체가 이에 참석하여,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나는 너다, 우리가 서로의 용기다”, “여성 혐오 없는 평등한 세상” 등의 피켓을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집회에서 한 발언자가 강남역 사건과 앞서 언급한 몰래카메라 사건을 엮는다는 점이다. 발언대에 선 유승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차장은 “2년 전 경찰은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했는데, 홍대 누드모델 불법 촬영 범죄자에게 남성 혐오가 목적이냐는 질문을 한다”며 “경찰은 그동안 여성들을 불법 촬영한 가해자 구속 수사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성(性) 혐오 사회와 『82년생 김지영』


어느 순간 사회에서는 여혐과 남혐이라는 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사용된다. 혐이라는 것은 혐오를 뜻한다. 여혐과 남혐은 각각의 성(性)을 혐오한다는 뜻이다. 사랑하기에도 너무 바쁜 사회에서 서로의 성을 혐오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서로의 성을 혐오하는 것은 정당치 못하다. 성에 대한 무비판적 혐오 의식이 있으면, 개인을 성이라는 큰 범주로 놓고 이해하고 대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든 간에 저 사람은 남자니까, 저 사람은 여자니까 하는 식으로 먼저 판단하고, 과도한 긴장과 견제로 타인을 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발간이 되면서 많은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소문을 통해 여성 인권 주의자들의 책이라고 소개가 되었고, 인기를 끌게 되었다. 2016년에 초판이 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현재에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다. 그 이유는 성 혐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 책이 언급되고,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참을 미루어두고 있다가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제목 그대로 82년생 김지영 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지영 씨는 어느 날 갑자기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일으킨다. 갑자기 불안정한 기억이 변질되어 본인의 어머니, 남편의 이전 여자 친구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이 증상이 단순히 어떠한 커다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꾸준히 쌓여온 거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김지영 씨의 과거가 소개된다. 아마도 책의 후반부를 읽어보면 김지영 씨와의 상담을 통해 비친 정신의학과 의사의 기록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김지영 씨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성 인권 보고서 같은 소설


저자는 소설 속 김지영 씨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 수준을 신랄히 비판한다. 저자는 자신이 풀어놓는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보인다. 그는 김지영 씨가 겪는 상황들 뿐만 아니라 그 상황과 가장 어울리는 수치를 가져오기도 한다.

김지영 씨가 졸업하던 2005년,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여 개 기업을 조사함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품이 거세다고들 했다. 96p
출산한 여성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사용 하는 비율은 2003년에 20퍼센트를... 또 2006년에 10.22 퍼센트던 여성 관리자의 비율은 꾸준히 그러나 근소하게 증가해 2014년에 18.37퍼센트가 되었다. 아직 열 명 중 두 명도 되지 않는다 98p.


이런 점들 때문에 책은 문학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떠한 사실에 대해 소설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고발하는 리포트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그 때문에 문학성이 없다는 비평을 받기도 하지만 저자는 아마도 이미 이런 비난은 받을 작정을 하고 소설을 쓴 듯이 보인다. 소설은 다분히 여성 인권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때문에 여성 인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공감 차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인 『시학』에서 비극은 보통의 인물보다 뛰어난 도덕심과 노력하는 사람, 즉 어떤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도 될만한 사람에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 가운데,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연민이 일어난다고 한다. 비극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너무 멀리 있으면 그것에 연민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춰볼 때 『82년생 김지영』은 여성들에게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지나치게 충분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은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든지 겪을 수 있을만한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자들도 과연 연민을 느낄 수 있을까?이다. 남자들에게 이 사건들은 충분한 이해로 다가오지만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겪지는 않을 일들이기에 공포심을 갖지도 그로 인한 연민도 갖지 않는다. '아, 여자들은 불편하겠구나', '사회가 개선되어야겠네' 정도의 반응을 가질 순 있지만 여성으로서 겪는 심리적 압박과 두려운 감정, 불편은 공감할 수 없다.



여혐과 남혐이라는 성 혐오 사회에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식, 경제 수준 발달 정도에 비교해 보았을 때,  현재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 수준은 비정상이다. 그 사실이 남성이기에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해 왔다는 점을 부끄러워하고 미안해야 한다.


남성이 알고 있는 여성의 압박과 공포는 생각보다 크다. 그것을 인식하고,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여성의 상황을 이해하는 성숙한 의식이 심겨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학성이 있다고 느끼진 못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성 혐오를 조장하는 책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억압받고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을 향한 차별과 사회적 압박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책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것이 저자의 의도였을 테니. 그때서야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때 여혐이니 남혐이니 하는 담론으로 몰고 가지 않고 사건을 보고, 개인을 범주로 보지 않고 개인 자체로 볼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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