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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Oct 14. 2021

내가 4차원이 된 이유

성장하면서 자주 바뀐 환경 때문이다.

나는 가끔 4차원이라는 말을 듣는다. 친한 사람은 대놓고 앞에서 말하고, 직장상사 중 한 명은 그 윗선에 보고할 때 나의 성격을 그렇게 적어서 보고했다. 나는 왜 4차원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자다 일어나자마자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일단 ‘4차원’이라는 뜻을 짚어보고 시작하자. 사람의 성격에서 말하는 ‘4차원’은 이런 뜻을 가진 수식어이다. '3차원에 사는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라는 뜻이다. '4차원 소녀' 등으로 사용되며, 이 경우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생각을 하는 소녀라는 뜻이다. 0차원부터 점, 1차원은 선, 2차원은 면, 3차원은 입체를 말한다. n차원은 초입체, 초부피를 말하게 된다.


4차원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나무 위키에서 4차원과 관련된 인물로 소개된 아래 두 분을 찾아보자. 물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분들이다. 나는 내가 4차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왜 남들이 왜 나를 4차원이라고 부르는지 정리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리처드 파인만[19]

알버트 아인슈타인[20]



1. 국가공무원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공무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 국가직과 지방직이 그것이다. 어릴 때는 국가직 공무원이신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방직은 작아 보이고 국가직이라고 하면 더 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게 되었다. 국가직은 육아에 도움이 안 되고 지방직이 육아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도 일찍 공무원의 안정적인 직업에 눈을 떠서 지방직 국가공무원에 정착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2. 이사를 2년-3년마다 다녔다.


앞서 언급한 우리 아빠는 국가직 공무원이다. 그 말은 진급을 위해서는 진급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새로운 곳으로 발령이 나는 시스템이다. 아빠는 진급을 해서 월급을 올려야 했다. 우리 가족은 국가공무원의 가족이라서 이사를 거의 3년마다 다녔다. 아빠는 방학 무렵이면 발령을 받았다. 여름방학 또는 겨울방학이면 우리는 이사를 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우리는 국가공무원이신 아빠 회사, 즉 나라에서 제공하는 집, 관사에서 살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남의 집이었지만 아빠가 그 도시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우리 집이었다. 관사는 어떤 아파트의 한 집에 살기도 하고, 다 쓰러져가는 연립 같은 곳이기도 했다.


정확하게는 2-3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를 4군데나 다녔다. 사실 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이었다. 광주 문화초등학교-광주 경양초등학교-청송 진보초등학교-수원 지동초등학교이다.


중학교는 다행히 한 군데를 다녔다. 아빠가 발령이 났지만 지방으로 가지 않으려는 엄마의 의지로 우리 부모님은 처음으로 주말부부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중2였다. 하지만 내가 고2 때 우리 가족은 다시 뭉치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고2의 마지막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전학을 가게 된다. 그때 전학 가기 싫어서 밤새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전학을 자주 다니다 보니 아이들과 친해질 만하면 이사를 간다. 그 동네 분위기를 알만하면 이사를 간다는 뜻이다. 덕분에 첫 느낌이 매번 생생하다. 이 거리를 처음 올 때의 느낌, 그때의 분위기 등이 떠오른다. 남들은 어릴 적부터 매번 다니던 길이라 첫 느낌이 생각나지 않을 거리도 나는 생생하다. 2-3년마다 새로운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나의 4차원적인 성격 형성에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항상 새롭다. 뭐든 새롭다. 이건 남편이 나에게 매일 하는 말이다. 그래 난 다 새롭다. 그래서 뭐!


사람들과 있을 때 어릴 적 미묘한 분위기, 뭔가 싸한 감성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참 복잡했다. 그 상황에 다시 놓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을 무시할 수 있는 곳에 내 마음을 뒀다. 그건 그 도시에 처음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난 ‘전학 온 애’라서 잘 몰라. 이 도시 사람들이 그곳을 터부시 하는지, 그런 걸 안 한다는 걸 모르니까 가보고 해 보는 거야. 이런 생각에 어디든 거리낌 없이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새로움을 느꼈다. 남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내 눈으로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신념이 생겼다. 백문이 불여일견을 깨닫게 된 것이다.




3. 첫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4남매 중의 맏이로 태어났다. 장남이신 아빠의 첫 번째 딸이다. 아빠의 첫 정, 엄마의 첫 정을 온몸으로 받으며 자랐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모르겠지만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살아계셨다면 더 기고만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사실을 결혼 후 조카가 태어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여동생의 딸이 우리 딸보다 몇 개월 먼저 태어났다. 우리 집안에서 처음 태어난 첫 조카는 친정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조카 없이 만나도 친정엄마는 조카의 이름을 계속 말했다. “조카가 요즘에 옹알이를 그렇게 잘한단다.”


여동생과 가까이 살았던 엄마는 조카의 성장을 일거수일투족 전했다. 덕분에 여동생과 통화하지 않아도 첫 조카의 최근 발달상황과 일상을 꿰뚫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딸이 태어나자 친정 엄마의 그런 관심은 우리 딸에게 옮겨가지 않았다.


조카가 처음으로 옹알이를 시작한 날, 걸음마를 뗀 날, 이유식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한 날을 생생히 전했던 친정엄마에게 나도 최근에 태어난 귀여운 우리 딸도 옹알이를 시작했다고, 걸음마를 떼었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친정엄마는 조카도 하던 거니 우리 딸도 당연히 하는 거라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우리 딸은 조카에게 외할머니의 첫 정을 빼앗겼다. 내 동생은 첫째인 나에게 엄마의 첫 정을 빼앗겼던 것이다.


우리 딸은 조카가 하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라서 우리 친정엄마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조카가 첫 정을 빼앗아 버렸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엄마의 첫 정을 take it for granted 했구나. 너무 당연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하지만 첫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첫 조카의 잘못도 아니다.


첫째와 첫 손주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그냥 세상에 태어나보니 첫째였고, 첫 손주였던 것이다. 그 사랑을 주니 받았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남을 보고 그걸 깨닫게 된다. 타산지석이라고나 할까. 그런 상황에 놓인 적이 없으면 그걸 깨닫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런 미묘한 분위기,  그런 것을 나는 너무나 늦게, 첫 조카가 생긴 30대 후반에 깨닫게 된 것이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여직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떤 일을 하는데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첫째이시죠?”

“네, 맞아요. 어떻게 아세요?”

“첫째는 테가 난다니까.”

“???”


그녀는 여기까지만 하고 말을 줄였다.

말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미묘한 분위기를 그녀는 잡았던 것이다. 무엇일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릴 적 내 아래의 두 여동생들도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옷은 맨날 새 거잖아.”

“엄마는 큰언니부터 챙기잖아.”


첫째라서 엄마의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겪기만 했고, 물려받을 옷이 없어 항상 나에게 큰 치수의 옷을 사준 엄마인데 여동생들의 시선은 달랐다.




이렇게 해서 나의 4차원적인 성격은 형성되었다. 덕분에 나의 시선은 남들과 다르다. 대한민국의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 경북 청송, 전남 광주, 다시 경북 청송 그리고 다시 경기 수원으로 또다시 전남 광주에서 서울로, 이렇게 전학 다니며 자란 나의 성격은 어느 누구도 같을 수가 없다. 함께 이사를 다닌 내 동생들도 이사를 다닌 그녀와 그의 나이가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도시의 느낌도 다르다. 아마 스무 살 성인이 되어 도시를 바꾸며 사는 것과 성장기에 도시를 바꾸며 산다는 것은 참 다른 의미일 것이다.


앞으로 나는 이사를 다니며 몰랐던 학군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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